예화: 찌꺼기 인생의 대역전
당신의 진로는 하나님과 상의하라 시99:1-9
눈보라 몰아치는 동부의 철로 위로 기차는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기차 안에는 아기 안은 한 여인이 그녀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칠까 봐 불안한 표정으로 서성이거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한 신사가 그 길목을 잘 안다면서 내릴 정거장을 일러 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이윽고 한곳에 기차가 섰습니다. 빨리 내리라고 일러준 그 신사에게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고 여인은 하차했습니다. 조금 가다 그 차는 다시 정차했고 차장이 안내를 하는 것을 들으니 그 여인이 내리려고 했던 그 정거장이었습니다. 신사가 몹시 당황해서 알아보니 그 여인이 내린 곳은 정거장이 아니라 기차가 고장 나서 잠깐 섰던 무인지경이었습니다. 후에 그 여인은 아기를 품은 채 동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친절한 그 신사는 정성껏 길을 일러주다가 선의의 실수를 저질어 남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누가 잘못했습니까? 여자가 잘못했습니다. 바른 정거장을 찾으려거든 차장한테 물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감사의 마음 시10:1-9
어느 날 신앙심이 돈독한 어떤 성주가 식사를 하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신하들의 자세를 고치기로 하고 한 거지를 식탁에 초청했습니다. 거지는 분에 넘치는 식사를 마음껏 한 후 성주의 배려에 한마디 감사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가 버렸습니다. 이 모습을 본 신하들은 "저런 은혜도 모르는 놈 같으니라구"하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성주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대들도 거지와 똑같소. 그대들도 모든 것을 거저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고 있잖소"
나는 누구일까요? 시101:1-8
어떤 숲에서 올빼미가 동물의 왕으로 당선되었습니다.이유는 올빼미가 신통력이 있는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올빼미는 시력이 아주 나빠서 밤에만 행동하는 나약한 동물입니다. 그런데 올빼미의 '투'(TWO)하는 울음소리가 다른 동물의 귀에 '둘'로 들렸던 것입니다. 길을 지나던 두더지 두 마리도, 잠을 청하던 뻐꾸기 두 마리도 모두 자기를 부르는 소리인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발톱 두 개를 접고 날아가던 독수리까지 올빼미를 두려워하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올빼미는 만장일치로 모든 동물의 왕이 되었고 취임식이 끝난 뒤, 동물을 이끌고 차가 다니는 차도를 향해 걸었습니다.
올빼미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어서 자신의 무리 사이로 달려오는 차를 의식하지 못했고 다른 동물들은 올빼미를 따라 차에 치여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가진 특별한 은사 때문에 그 사람을 추종하기 시작하면 멸망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분별하여 참된 인도자를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
무릎 꿇는 나무 시102:1-28
록키산맥 해발3,000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 지대가 있습니다.이 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곧게 자라지 못하고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이 나무들은 열악한 조건이지만 생존을 위해 무서운 인내를 발휘합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는 나무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인생의 절묘한 선율을 내는 사람은, 아무런 고난 없이 좋은 조건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온갖 역경과 아픔을 겪어온 사람입니다. 꿈꾸는 자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찾아오는 매서운 바람 때문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내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듯한 감격 시 103:1-22
독일 출신의 위대한 작곡가 헨델은 초기에 왕을 위한 곡을 썼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듣는 수상곡이 그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최고의 영감을 준 곡은 이 세상을 초월한 가장 위대한 왕, 메시야였습니다.
불후의 명곡 메시야 중 할렐루야는 그에게 있어 영감의 극치였습니다.
그는 할렐루야를 작곡했던 당시의 감격스러운 상황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앞에 펼쳐져 있는 하늘나라와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본 듯한 감격 속에서 이 곡이 만들어졌다.
이상하고도 놀라운 일 시 104:1-35
우리가 먹는 소금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음식의 맛을 내고 방부제도 되고 우리가 먹지 않으면 죽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소금이 극히 나쁜 독소 두 가지로 구성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소금은 소디움과 크로라이드라는 두 가지 원소가 합하여 된 것인데,
사람이 이 소디움과 크로라이드를 각각 따로 먹으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물도 참으로 이상합니다.
물은 수소와 산소 이 두 가지가 합하여 된 것인데
산소는 불이 붙어도 아주 뜨겁게 타는 물질(산소용접)이며,
수소도 불에 탈 수 있는 물질인데, 이 두 가지가 합하면 정반대의 물이 됩니다
자석 중에서도 아주 강력한 영구자석인 알리코 자석은
자석에 붙지도 않는 세 가지의 쇠붙이 즉 알미늄, 니켈, 코발트를 합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진로 방해죄 시105:1-45
주님께서 무슨 일을 진행시키고자 하실 때 방해가 되는 요인들 중에는 외적인 요인들도 많지만 내 안에 있는 내적인 것들이 가장 큰 방해가 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누구를 사랑하라 하셔도 내 감정이 그 말씀에 동의해 드리지 않기 때문에 주님의 일이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고 몇 년씩이나 지연되기도 하고, 누구에게 무엇을 공급하라고 하셔도 내 계산이 그 말씀에 동의해 드리지 않기 때문에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들이 막히게 될 때도 많습니다.
내 안에 있는 어떤 감정이나 의지나 고집, 계산, 경험들 때문에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 방해를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해야 할 우리가 오히려 지금까지 만왕의 왕이 되시는 주님께서 나아가시고자 하는 진로를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이 가로막아 왔는가?
왕정시대에 왕이 나아가는 길을 막는 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왕이 자비를 베풀지 않는 한 죽음이었다. 즉 왕의 길을 막는 진로 방해죄는 사형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의 복음의 마차 앞을 가로막고 고집스럽게 버티고 선 채 달리지 못하게 하는 우리의 짜증이나 싫어함, 옹졸함, 조급함, 감사치 못함 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나아가고자 하실 때마다 우리의 감정과 계산과 굳어진 생각 속을 마음껏 통과하셔서 일하실 수 있도록 내 안에 길을 내 드려야 합니다. -삼켜지고 싶은 사람/ 김찬미
아무도 안 보는 곳 시106:1-12
중세기 어느 수도원 원장이 많은 수도원생 가운데 한 사람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다른 수도원생들은 원장이 인간 차별을 한다고 뒤에서 투덜대며 그 수도원생을 미워했습니다.어느 날 원장은 모든 수도원생들에게 새를 한 마리씩 나누어주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여 오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모든 수도원생들이 새를 죽여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원장이 사랑하는 수도원생만 산 채로 가지고 왔습니다. 수도원생들은 그가 원장의 말씀에 불순종했음을 비난하며 회심으 미소를 지었습니다.
원장이 사랑하는 수도원생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왜 새를 죽여 오지 아니했나?"
"원장님, 저는 아무도 안 보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하나님께서 저를 보고 계셔서 새를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수도원생들에게) "이제 내가 이 사람을 특별히 사랑하는 이유를 알겠는가?"
용서 시106:13-48
용서는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억지로 잊거나 묵인하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잊는 것이 아니라, 내 기억에서 지워 버리는 것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의 행동과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에 새겨진 것을 지우는 일입니다.
용서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가서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용서는 조건이 없는 것이고, 다시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용서의 모범을 보여 주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말씀은
형제의 아픔을 형제의 잘못을 깨끗이 잊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용서의 자리에다 사랑을 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 시107:1-43
"왜 모두 감사하지 않을까. 당연한 사실들을 ......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다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이다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자기 발로 갈 수 있고
손을 뻗어 무엇이든 잡을 수도 있다.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나온다.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아무도 당연한 사실들을 감사하지는 않고
'당연한 걸' 하며 웃어버린다
하루 세 기를 먹는다
밤이 되면 편히 잠들고
아침이 오면 상쾌한 바람을 실컷 들이마신다.
웃다가 울다가 고함치다가 뛸 수도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무도 감사할 줄 모른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오직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뿐이다.
건강을 상실한 사람만이 건강의 고마움을 알게 됩니다.
재물을 잃어 본 사람만이 재물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무엇보다 세상의 것을 잃어 본 사람만이 하나님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알고 감사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세상의 것을 잃어 본 사람만이 하나님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알고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실패까지도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다시 힘을 얻습니다.
중보는 짐을 지는 것이다
재키 로빈슨은 미국 메이저 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 선수였다. 수많은 인종 차별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선을 다했다. 어느 날 로빈슨은 브룩클린 구장에서 경기를 할 때, 볼을 놓치는 실수를 범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백인 관중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는 그에게 야유를 보내고 욕을 해댔다.
그때 백인 선수인 리즈가 로빈슨에게 다가가서 그를 끌어안고 청중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나중에 로빈슨은 그의 어깨를 감싸준 동료의 팔이 자신의 인생을 구원해 주었다고 고백하였다. 이 모습은 중보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한 장면이다.
이처럼 중보 기도란 다른 사람을 지탱해 주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없애 주는 행위이다. 그것은 마치 구약의 어린 양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 제물이 되는 것과 아사셀 염소가 백성의 죄악을 대신 지고 광야에 버림받는 것과 같은 역할이다. 그리스도가 이루신 중보 사역을 우리 중보자가 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질 뿐만 아니라 그 짐을 주님의 능력으로 없애 주는 것이 바로 중보 기도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중보자로서 다른 사람에게 나아가자. 그 사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기도하자. 그 사람의 연약함을 지탱해 주자. 그 사람의 어려움과 문제의 짐을 없애 버리자.
가장 가치 있는 선물
혜빈이는 백혈병으로 투병하다가 하늘 나라에 갔습니다. 그런데 혜빈이가 선교 저금통을 여섯 개나 남기고 갔습니다. 혜빈이는 병상에서 늘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모르는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에게 보낼 선교 헌금을 모았습니다.
?어린이 성경 마을?에서 지구본 모양의 선교 저금통을 어린이들에게 나눠 주고 헌금을 모으기 시작한 이후에 많은 어린이들이 기쁨으로 선교 헌금을 모아서 드렸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부모님에게서 헌금을 받아 오는 어린이도 있었습니다.
선교 저금통을 가득 채워서 오는 친구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혜빈이는 선교 저금통을 여섯 개나 가득 채웠습니다. 혜빈이는 문병 온 친지나 이웃들이 주는 용돈을 가지고 선교 헌금을 모았던 것입니다. 아마도 혜빈이는 선교 저금통을 채우면서 이렇게 기도했을 겁니다.
?예수님, 제가 드리는 이 선교 헌금이 예수님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쓰여지게 해 주세요.?
혜빈이가 하늘 나라에 간 후에 선교 저금통이?어린이 성경 마을?에 전달되었습니다. 선교 헌금 저금통이 담겨 있던 가방을 받아든 순간 저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선교 헌금보다도 이 헌금은 가치가 있습니다. 이 헌금에는 혜빈이의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순수한 믿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헌금은
혜빈이를 오랫동안 믿음으로 키우시다가 태국으로 선교를 떠나신 서양숙 선교사님 가정에 전달될 예정입니다.
혜빈이의 선교 저금통에 감격하면서 -송한호 목사
선한 사마리아인
한 신학교 교수가 설교에 관한 강의를 좀 특이한 내용으로 준비했다.
그는 한 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주제로 설교하라고 하면서, 매 강의 시간마다 한 사람씩 각자에게 정해진 강의실로 가서 설교하도록 시간표를 편성했다. 어떤 학생들에게는 그 강의실까지 가는 데 10분 정도의 시간을 주었고, 또 다른 학생들에게는 서둘러야만 하도록 그보다 짧은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정해진 강의실까지 가는 길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랑자가 서 있도록 하였다.
그 부랑자를 도와 주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춘 '선한' 학생들은 매우 적었다. 주어진 시간이 짧을수록 부랑자들을 돕기 위해 멈춘 학생들의 수가 적었다.
당신은 그 실험 결과가 장래 영적 지도자가 될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설교를 하기 위해 서둘러 가면서, 그들은 그 설교의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쳐 간 것이다.
잘 알려진 다음의 글을 보라! "내가 배고플 때 당신은 인도주의 클럽을 만들어 내 배고픔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습니다. 내가 헐벗었을 때 당신은 마음속으로 내 벗은 모습의 도덕성에 대해 논쟁을 벌였습니다. 내가 병들었을 때 당신은 무릎을 꿇고 당신이 건강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내가 집 없이 떠돌아다닐 때 당신은 내게 하나님의 사랑의 은신처에 관한 설교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외로울 때 당신은 나를 위해 기도하려고 나를 홀로 있게 했습니다. 당신은 너무나 거룩하고 하나님과 너무나 가까이 있지만, 나는 여전히 춥고 배고프고 외롭고 고통스럽습니다."
- 내 인생을 바꾼 100가지 이야기 / 앨리스 그레이 편저
하나님은 여전히 다스리신다. 시110:1-7
윈스턴 처칠 수상이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같은 금세기를 이끈 위대한 지도자 두 사람이 전쟁이 발발되기 전 거의 생명을 잃을 뻔하였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1931년 12월에 처칠은 뉴욕 5번가를 건너다가 차에 치었습니다. 그리고 1933년 12월 마이애미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쏜 총알은 그를 비켜 옆에 서 있던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 두 지도자는 그때에 죽을 수도 있었으나 살아남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나는 하나님께서 이 두 사람이 살아서 각각 자기 나라를 이끌어 적을 이기고 승리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나라들과 지도자들의 흥망을 주장하고 계신다고 가르칩니다(단2:21, 4:32-35, 5:21) 우리도 우리의 때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어떤 재난도 이기십니다.
하나님이 너무 오래 참으셨어요 시111:1-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어떤 목사에게 갑작스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교회의 한 집사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어서 병원 응급실에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놀란 마음에 서둘러 병원에 달려가 보니 그 집사는 응급실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었습니다.
다른 곳은 별로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얼굴 부위는 붕대를 휘감아 알아보기조차 힘든 지경이었습니다.
실눈을 뜨고 겨우 목사를 쳐다보는데 목사는 민망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셨어요.."
"괜찮습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 너무 오래 참으셨지요"
집사의 짧은 한마디에 목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셨다는 말속에 이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럽게 닥친 재난 앞에서 "그래 하나님께서 참 오래 참으셨지"라고 말할 수 있는 믿음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하지만 더욱 소중한 것은 재난이 닥치기 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계곡의 종려나무 시112:1-10
미국 애리조나 주 코화 산맥에 있는 붉은 화강암으로 된 높이 2,500피트의 계곡에는 자생 종려나무들이 장엄하게 솟아 있습니다. 수년간 식물학자들은 어떻게 열대식물인 이 나무들이 어둡고, 가파르고, 경사진 좁은 협곡 뒤편에서, 그것도 하루에 2시간 동안만 햇빛을 볼 수 있는 곳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마침내 학자들은 계곡의 암벽이 충분한 햇빛을 반사해 주고. 또한 그 암벽이 하루 동안의 따뜻한 열을 알맞게 저장해 주고 있어서 열악한 입지 속에서도 이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그리스도인들 중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아무도 누려보지 못한 충만함을 발견합니다.
그리하여 풍성한 간증과 찬양으로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그들은 햇빛이 거의 비치지 않는 좁은 틈바구니 같은 여건에서도 아름다운 의의 나무들로 버티어서 믿음의 거목으로 성장합니다.
불평입니까? 찬양입니까? 시113:1-9
불평거리가 없으면 아주 실망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작은 문제점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큰 복을 보지 못합니다.
자신들의 병에 대해 불평하기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진찰결과 전혀 이상이 없었는데도 그들은 애처로운 소리로 울며 불평합니다.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쑤시다. 안 아픈 곳이 없다......"
의사 소견으로는 모두 상상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만일 그들이 받은 복을 세어보기 시작하면 곧 그들의 병을 잊어버릴 것 같습니다.
연세가 드셨고 가진 것이 없으며 몸이 약한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건강이 어떠세요?"
"아, 나는 감사할 것이 너무 많아요. 나는 이가 두 개만 남아 있지만 다행히도 그 둘이 아래 위로 마주 보고 있거든요"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아버지의 자랑 시114:1-8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맏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거듭남을 약속하십니다.
거듭남이란 예성품이 다시는 그 추악한 고개를 들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까?
어떤 유혹이라도 계속해서 거절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난 사람을 새로 태어난 아기와 비교해 보십시오.
새로 태어난 아기가 걸을 수 있습니까?
아이가 스스로 젖을 찾아 먹을 수 있습니까?
노래하거나 책을 읽거나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아직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성장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분만실에 있는 부모가 아기를 부끄럽게 여깁니까?
이제 태어난 아기가 글씨를 쓰지 못한다고 해서, 걷지 못한다고 해서, 말을 못한다고 해서 당황하는 엄마가 있습니까? 물론 없습니다. 부모는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녀들을 자랑스러워 합니다. 부모는 시간이 흐르면 아이들이 성장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역시 우리를 자랑스러워 하십니다. -맥스 루케이도 / 형통한 날의 은혜 중
찌꺼기 인생의 대역전 시115:1-18
미국 시카고에 있는 어느 한 교회에서 세 살짜리 여자아이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먹지 못해 굶어 죽은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불쌍한 여자아이의 장례식에 남루한 옷을 입고 충혈된 눈으로 찾아온 알코올 중독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틈을 타 죽은 아이의 신발을 벗겼습니다. 그걸 팔아 술을 마신 그 사람은 죽은 아이의 아버지였습니다.
20년 후, 시카고 제일 장로교회에서는 수천 명의 성도들 앞에서 한 사람이 외치고 있었습니다.
"죽은 딸의 장례식에서 신발을 훔쳤던 파렴치범은 바로 저였습니다. 만물의 찌꺼기 같은 나를 다시 살려 주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분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바로 시카고의 부흥사 멜 트라더 목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볼 때 폐품 같고 불량품 같은 그를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다시 드러내는 놀라운 창조주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뜻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시116:1-19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숲속 오솔길을 걸어가던 중 두 갈래의 길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뜻대로 갈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의 길을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지팡이를 중앙에 놓고 쓰러뜨렸을 때
지팡이가 왼쪽으로 쓰러지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쓰러지면 오른쪽으로 가겠습니다"
할머니가 지팡이를 쓰러뜨렸습니다. 그러자 지팡이가 오른쪽으로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마음은 왼쪽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다시 지팡이를 쓰러뜨렸습니다.
하지만 역시 지팡이는 오른쪽으로 쓰러졌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지팡이를 쓰러뜨렸고 여러 번을 거친 후에 왼쪽으로 지팡이가 쓰러지자
할머니는 "역시 하나님이 왼쪽 길로 인도해 주시는군"하면서 왼쪽 길로 유유히 걸어갔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아가겠다고 하면서 기도를 하면서도
내가 생각한 뜻이 아니면 다시 기도하고 다시 기도하고 하면서 끝내 나의 뜻대로 행동하지나 않나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예쁜 꽃자리 시117:1-2
한 소녀가 정원을 거닐다가 작은 흙구덩이에 심겨진 아름다운꽃 한 송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꽃은 다른 꽃들과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 외로이 피어 있었습니다.
"어머나 이렇게 예쁜 꽃을 왜 이렇게 더러운 흙에다 심어놨을까? 내가 예쁜 화분에 옮겨줘야"
소녀는 꽃의 뿌리까지 모두 뽑아서 자신의 화분에 옮겨 심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꽃은 시들어 죽었습니다.
소녀는 울면서 정원사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당신이 관리를 잘못해서 그래, 내가 더 깨끗한 곳으로 옮겨줬는데도 곷이 죽고 말았잖아?"
그러자 정원사가 대답했습니다.
"아가씨가 꽃을 옮겨준 일은 무척 아름다운 행동이었어요.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꽃을 위하는 방법은 아니었답니다.
그 꽃은 제가 심어놨던 그 장소에서만 잘 잘랄 수 있는 꽃이었거든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계십니다. 불평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당신에게 최고의 자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아래로 가는 사람들 시118:1-29
지난 여름 오사카 역 뒷골목에서 노숙자들을 위해 밥 짓는 일을 하고 있는 한 일본 목사님을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대화 중에 나에게 하나의 그림을 보여 주셨습니다. 한 끼의 밥을 얻어 먹기 위한 노숙자들의 행렬 속에 예수님이 남루한 옷차림으로 빈 깡통 그릇을 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예수님이 바로 노숙자들의 행렬 속에 서 계신 모습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숙자들을 위해 밥을 지어 제공하는 사역을 죽을 때까지 하겠노라고 서원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은 그 그림의 제목을 '아래로 올라가는 사람'이라고 붙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래로 내려가기보다는 위로 향하여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출세와 성공, 부와 명에를 좇는 것을 인생으 목표로 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 종으로, 철저히 아래로 내려가셨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 수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아래로 올라가는 노력을 필요합니다. - 교육교회/장신대 기독교교육연구원
복음의 능력 갈1:1-10
톰프손이라는 목사가 부흥집회를 인도하면서, 마지막에 이제 그리스도를 모시고 새로운 인생으로 살 사람은 앞으로 나와서 주님을 영접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한 사람이 말씀에 순종하여 두 아들의 손목을 양편에 잡은 채로 중앙 통로를 걸어서 강단 앞으로 나왔습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 사람은 품에 품고 온 권총을 꺼내서 목사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오늘 밤에 한 사람을 쏘아 죽이려고 총을 품에 품고 나온 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은 나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새롭게 살렵니다.
오늘 이후로 나는 권총을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들고 나름 감옥에 보냈던 사람을 계속 찾아 다니겠습니다
출처: 예화 500 2집 . 주워 모으고 편집한 사람 최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