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쟁 & 찬양과 경배 |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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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 [삼하6:13-15] “우리의 능력 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할찌어다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할찌어다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찌어다” [시81:1-2]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고전13:2]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 고백이다. 다윗은 다소 낡은 장막안에서 36년간 365일 24시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했다. 오직 하·나·님 만 구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찌어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중에 선포할찌어다”[대상16:23-24] 이 말씀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담긴 귀한 말씀이다. 크리스천의 삶은 삶 자체가 찬양과 경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을까? 우리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혹은 가정이나 직장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다. 또한 잠잠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할 때, 우리는 그분의 임재 가운데서 주님을 높이는 찬양을 할 수 있다. 찬양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선포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드릴 수 있는 많은 찬양들 중에서도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찬양이 있다. 바로 ‘전도’이다. 전도를 할 때 우리는 무엇을 선포하는가?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분이신지 선포한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고 구원의 큰 은혜를 주신 사랑을 선포한다.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 희생을 통해 영 죽을 우리 죄인들이 죄사함의 은택을 얻게 된 것을 선포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지금도 한결같이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넘치고 있음을 선포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든 찬양곡들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시편 96편의 말씀처럼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宣播)하며 주님의 기이한 행적을 열방 만민에게 선포할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까지 두루 다니며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곳곳에 선포하기 원하신다.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몸된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합2:14]. 그러기 위해서는 외치는 자의 소리가 사람들의 귀에 들리도록 크고 분명해야 하며, 좋은 소식을 전하는 보내심을 받은 자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전해야 한다[롬10:15]. 우리가 기쁨과 감사함으로 구원의 소리를 외칠 때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을 행하시는가?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시118:15-16] 우리가 우리 입술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를 외칠 때 하나님께서는 큰 권능을 베풀어 주신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이 증거하다는 말의 원어 의미를 보면 ‘자백하다, 시인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우리의 입술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입술이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예수 증거의 영’이시다. 전도는 다름 아닌 예수를 증거하는 우리의 신앙 고백인 셈이다.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 위대한 이름을 만민들에게 선포하며 구원을 주신 놀라운 사랑을 증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과 경배이다. 여기에는 능숙한 악기 연주, 완벽한 목소리, 해박한 신학적 지식이 없어도 된다. 단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진실한 사랑’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광을 홀로 받기에 합당하시고, 구원의 귀한 은혜를 받은 우리는 쉼없이 이 놀라운 사랑을 증거하고 경배할 의무가 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
영적 전쟁 & 찬양과 경배 -제2편- | ||||
찬양할 때 가장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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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Acts2:4 Worship Group 찬양집회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드릴 때 알아야 할 것은 찬양을 받으실 주인공은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찬미의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크신 사랑에 감사하며 오직 주님께로만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찬양을 하는 사람이나 찬양을 인도하는 사람 모두가 다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집중해야 한다. 어떠한 순간이라도 특정한 사람이나 혹은 자기 자신이 찬양과 경배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나올 때, 우리는 때로 힘겹고 무거운 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올 때가 있다. 마음이 아프거나 기분이 상한 일이 있어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보다도 내가 처한 힘든 상황을 위로해 주고 달래주는 음악들이 더 마음에 와 닿을 때가 있고, 또한 찬양을 하는 순간에 우리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나 환경이 떠오르면서 주님께 집중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나 예배의 시간은 오직 하나님을 위한 시간이다. 좀더 분명히 말하면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다. 물론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이 임재 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와 기름부음을 주시고 위로를 주실 수 있다. 그러나 우선순위가 바뀌어 내가 위로받기 위해 내 심령을 만족시키는 찬양을 부르고, 나를 만족시키는 하나님을 구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찬양을 드리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영광이시다. 그리고 우리가 찬양하는 것을 멈추면 돌들로도 소리지르게 하실 것이다[눅19:40]. 단지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사실 천국의 천군천사들은 우리 보다 훨씬 완벽하고 아름다운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의 찬양 중에 거하신다. 왜 그런가? 바로 예배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자녀된 우리가 매우 특별한 만남을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왕께서는 우리를 초대하실 때 기쁨과 감사의 옷을 입고 주의 궁정에 나오도록 말씀하신다[시100:1-2, 4].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건, 우리의 기분이 어떠하건 우리는 왕을 만나러 나갈 때 기쁨과 감사의 옷을 입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찬양은 ‘뜨겁고 열정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열정을 원하신다. 즉 온전한 헌신의 제사를 원하시는 것이다[고후5:13]. 이 ‘온전한 마음’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의 많은 곳에 기록되어 있는데[대상16:23-37], [시150:2], [눅10:27], [계3:15-16], 여기에는 ‘과격하다’, ‘전심을 다하다’, ‘흥분이 극도에 달하다’, ‘몹시 기뻐하며, 기쁨이 넘쳐 흐른다’라는 의미가 있다. 또한 ‘지나치도록 소비하라’는 의미가 있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때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 뜻과 정성이 다른 어떠한 상황에 있을 때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넘쳐 나도록 드려야 하며, 지나치다 할 정도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최고의 것만을 받기에 합당하신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같이 생명을 걸고 휘장을 넘어와 하나님 만나기를 갈구하는 뜨거운 사랑과 마음의 중심을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우리의 생명을 드리는 열정이 필요하다. |
영적 전쟁 & 찬양과 경배 -제3편 | ||||
찬양과 경배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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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임재가 흘러 넘친다 “이스라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22:3]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 중에 임재하심을 말해주고 있다. 이 ‘거하시는’이라는 단어에는 ‘자리잡다’, ‘머무르다’, ‘다스린다’, ‘살다’의 의미가 있다. 즉 우리가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머무르시며 우리를 다스리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사용된 ‘찬송’이라는 단어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초래하는 자원하는 찬양’의 의미가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자원하는 심령으로 찬양과 경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즉 우리의 찬양은 만군의 여호와를 위한 처소를 예비하며 주님의 임재하심을 청하는 것이다[출15:2-3]. 2. 예언적 찬양의 기름부음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을 시작하면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권능과 계시하심이 주의 백성들에게 임하기 시작한다. 열왕기하 3장에서 우리는 거문고를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 선지자 엘리사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찬양은 엘리사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도록 이끌었다. 또한 다윗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삼하23:1-2] 예언적 찬양은 성경 곳곳에서 나오는데 모세, 다윗, 찬송 맡은 자들(레위 지파 찬양대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예언의 메시지를 선포하며 신령한 노래[대상25:1-7]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가 강력한 자리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며 주의 백성들에게 하고자 하시는 말씀들을 주신다. 또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언어와 의미로 신령한 노래를 부르도록 인도하신다[엡5:18-19], [고전14:15]. 3. 구원의 역사 이 구원의 의미는 믿지 않는 자들의 영혼의 구원을 포함하여 악한 영들로부터의 자유함, 좋지 않은 환경과 상황들로부터의 놓임, 영육혼의 질병이 치유되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할 때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이루신다. [롬15:9]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로, 다윗이 수금을 타며 찬양을 할 때 사울에게 임했던 악신이 떠나고 치유되는 것을 볼 수 있고[삼상16:23],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릴 때 옥문이 열리며 매였던 것이 풀어진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행16:25-26].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의 영육혼과 환경, 질병이 치유를 받고 자유케 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4. 영적 전쟁의 강력한 무기 마지막으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 찬양과 경배가 얼마나 강력한 영적 전쟁의 무기인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대하20:22] 이는 여호사밧과 아람의 전쟁 장면이다. 이 말씀을 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유다 사람들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자비하심을 노래했다. 그런데 대규모의 전투에서 강력한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대신하여 싸우신 것이다. 또한 여리고성 전투에 참여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나팔을 불고 함성을 외치는 것만으로 강력한 승리를 거두어 여리고성을 함락한 것을 볼 수 있다[수6:13-20]. 존귀하신 하나님을 높이며 그 전능하심을 선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 싸우시고 대적을 치시며 강력한 승리를 주신다. |
영적 전쟁 & 찬양과 경배 -제4편- | ||||
영적 전쟁과 영적 찬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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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Acts2:4 Worship Group 찬양집회 하나님은 한 영혼도 멸망치 않고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 받기를 원하신다[벧후3:9]. 반면 사단은 믿는 자라 할지라도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다니며 한 영혼이라도 더 지옥에 끌고 가고자 한다[벧전5:8]. 즉 영적 전쟁은 바로 영혼을 놓고 하나님과 사단 사이에 벌어진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엡6:12]. 예수님은 이러한 영적 싸움에서 어떠한 일을 하시는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예수님께서는 큰 사랑으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먼저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물과 피를 쏟는 대속죄를 치루셔야 했다. 이것은 잠깐 동안 예수님이 사단에게 패배한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고 마귀의 일을 멸할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하셨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가진 주의 백성들을 영적 전투의 군대들로 징집하신 것인데, 이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고 예수님의 대 지상명령인 영혼 구원 사역에 함께 동참하게 된다[행1:8]. 이 군대들의 최고 사령관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출15:3], “…이 전쟁이…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대하20:15],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롬12:19],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출15:6] 하나님께서는 이 군대들에게 영적 무기를 주시는데, 영적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무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강력한 공격 무기인 성령의 검, 말씀이다[엡6:17], [히4:12]. 이 말씀은 날선 검이며, 불같고 방망이와 같고[렘23:29], 찌르는 채찍같으며 잘 박힌 못과 같다[전12:11]. 즉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능력이다. 다른 한 가지는 기도이다. 예수님께서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라 명하셨을 때,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순종하여 전혀 기도에 힘쓸 때 약속하신 성령이 임했다. 즉 영혼 추수의 시발점이 된 초대 교회는 기도로 탄생하였고, 이들은 기도로 모든 것을 준비하였다. 기도는 여러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영적 능력을 간구하여 하나님과 함께 사단의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일’을 하며,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찬양 역시 강력한 영적인 힘을 발휘하며 영적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주는 무기이다. 찬양과 경배 중에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충만하게 넘칠 때 사단은 권세를 잃어버린다. 영광의 왕이 함께 하는 곳에 사단은 발을 붙일 수 없는 것이다. 1. 찬양자들이 전쟁의 최전선에 하나님께서는 전쟁의 군사들을 배열하실 때 칼이나 활을 든 군사들 대신 노래하는 자, 악기와 깃발을 든 찬양대를 전쟁의 맨 앞에 세우신다.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게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대하20:21] 우리는 사단인 루시퍼가 하나님의 음악 천사장이었던 것을 알고 있다[겔28:13-14]. 완벽한 찬양 천사였던 루시퍼가 하나님께서 더럽게 여기는 존재가 된 것은 바로 하나님 보다 높아지고자 했던 교만 때문이었다[사14:12-15], [겔28:16-18]. 하나님의 찬양자들은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서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이러한 사단의 존재를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준다. 즉 모든 영광, 찬양, 존귀, 능력, 권세는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만이 홀로 높임을 받으실 만왕의 왕이시라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기선 제압이다. 그리고 이들의 찬양이 울려 퍼지면 여호와의 복병들이 일어나 적들을 치기 시작한다[대하20:22]. 즉 영적 전쟁은 하나님이 싸우시는 싸움인 것이다. 2. 시편149편에 숨겨진 영적 전쟁의 비밀 시편 149편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대적들을 어떻게 심판하시는가에 대한 말씀이다. 우선 6절 말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6절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에 ‘하나님의 존영’을 두시는데, 이 ‘존영’은 히브리어 ‘로맘’이라는 단어로 ‘영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흠정역본(King James Version)으로 보면 ‘존영’은 ‘높은 찬양(high praise)로 기록이 되어 있다. 즉 주의 백성들의 입에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차원 높은 찬양’을 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 주어진 것은 ‘두 날 가진 칼’이다. 이것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이는 전형적인 이스라엘의 전투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전쟁의 대장이 되시고,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날선 검을 들고 적군을 향해 나가는 것이다. 역시 여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먼저 시작되었다. 7절 “이것으로 열방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보수하며’라는 말은 ‘복수’, ‘원수갚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복수와 심판은 먼저 전쟁의 배후에 있는 사단에게 임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만한 자들은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즉 악행한 열방과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8절 “저희 왕들을 사슬로, 저희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이 구절을 히브리어 문자대로 해석하면 ‘그들의 왕들을 화살들로 묶고 또 그들의 귀한 자들을 철의 족쇄들로 결박하고’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말씀도 암시적인데, 먼저 우리는 사단의 군대에도 계급과 질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활동을 할 때 자신의 계급에 맞게 분담하여 역할을 하고 있다[엡6:12]. 최고 사령관은 당연히 ‘사단’(루시퍼)이다. 그 아래 단계는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인데 이들은 사령관급 악마들이다. 이들의 역할은 국가와 국가 지도자를 억압하고, 국가간에 적대감을 형성시키며 귀신들을 통솔하고 언론들을 교란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사람을 해치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 권위에 대한 순종을 가로막기도 한다[마25:41]. 다음은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이다. 이들은 도시와 지역을 누르고 어둠의 권세로 통치하는 세력이다. ‘권세’는 권위와 능력이 주어져 있어서 이 권세로 지도자 층을 공격한다. 통솔하는 자를 억누르고 사로잡으며, 믿음의 사람들이 기도를 못하도록 방해하기도 한다. ‘정사’는 일반인들과 신실하지 못한 크리스찬들을 공격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악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흑암 세력의 왕인 사단과 그 아래 속한 하위급 악의 영들이 우리의 찬양을 통해 결박이 되는 것이다. 찬양은 사단을 쇠사슬과 쇠족쇄로 묶는 무기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그들의 계략들이 중단되며, 그들의 계략들은 방해받고 마비가 되어 버린다. 9절 “기록한 판단대로 저희에게 시행할찌로다 이런 영광은 그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어둠의 세력을 밟는 마지막 단계인 ‘판결의 시행’을 끝으로 사단은 패배를 당한다. 전쟁의 승리 후 그 전리품을 모으며 기쁨을 만끽하는 군사들과 같이, 이 전쟁에 함께 하는 믿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판결과 복수를 흑암의 세력들에게 시행하며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우리 입술에서 선포되는 찬양은 참으로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시작이 우리 입술에 담겨진 ‘높은 찬양’에서 부터 시작됨을 알아야 한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우리가 칼을 휘두르고 치열한 접전의 현장에서 피를 흘리며 싸울 필요가 없다. 우리는 전열을 가다듬고 깃발을 높이들고 만왕의 왕이신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면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군대가 하는 일이다. |
영적 전쟁 & 찬양과 경배 -제5편- | ||||
영적 전쟁과 영적 찬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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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춤추며 찬양하는 모아실 페레이라 목사(올림픽역도경기장 성회) 3. 원수의 머리를 쳐! 우리가 부르는 찬양 중 ‘뱀의 머리를 밟아라’는 찬양이 있다. 뱀은 곧 마귀, 용으로 칭해지는 사단이다[계12:9]. 이들의 운명은 이미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해졌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3:15]. 예수님은 사단의 머리를 밟으신다. 또한 사도 바울도 사단의 최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롬16:20] 단순히 손과 발이 잘리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밟힌다는 것이다. 이는 곧 그 생명이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단의 운명은 완전한 패배이다. 우리는 찬양과 경배를 할 때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하고[시30:11], [시149:3], [시150:4], 걷고 뛰면서 찬양하며[삼하6:16], [행3:8], 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시135:2], [시134:1]. 이 때 사단은 우리 발 밑에 짓밟혀 부수어지며 땅 위에 재가 된다[겔28:18]. 물론 우리는 꼭 사단을 밟을 목적으로 춤을 추지는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우리 마음을 우리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그 보좌 앞으로 나가는 발걸음은 극도의 흥분 상태가 될 수 밖에 없다. 기쁨과 흥분과 즐거운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웃고 소리를 지르며 춤추며 즐거워한다. 만왕의 왕 예수님을 맞이할 때 어떻게 가만히 앉아서 무표정한 얼굴로 있을 수 있겠는가?이렇듯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분을 위해 춤을 추며 찬양할 때, 그 찬양으로 인해 사단은 힘을 잃고 그 머리는 우리의 발 밑에 힘없이 부서진다. 특별히 구약에서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요제의 제사[레9:21]를 바쳤는데, 이 요제는 제물을 흔들어 바치는 제사법이다.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롬12:1]. 우리가 우리 몸을 흔들어 요제의 찬양의 제사를 드릴 때, 그 몸과 땀과 희생의 제사는 하나님께 열납되는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 우리는 결코 희생의 대가를 치루지 않고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 열납된 아벨의 제사는 ‘생명의 피’가 있는 희생의 제사였다. 하나님께 생명을 드리는 예배라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사가 된다. 4. 바울과 실라의 찬양 바울과 실라의 찬양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왜냐하면 이 두 사도가 처한 상황이 하나님을 찬양할만한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매를 아주 많이 맞았고, 몸에는 피가 고여 맺혀 있었고, 손과 발은 착고에 채워졌으며 차갑고 어두운 감옥에 갖힌 것이다. 그것도 범죄하다가 받는 형벌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당한 일이다. 우리도 살면서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동서남북이 다 막히고 도저히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힘들어 질 때가 있고, 때로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사방이 다 막혔다 해도 막히지 않은 한 곳이 있다. 바로 하나님이 계신 ‘위’이다. 가장 절박하고 어려운 순간, 우리는 기도, 예배, 찬양, 말씀이라는 추상적인 것 보다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찾기 원하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뭔가 행동할 수 있는 해결책이 제시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 하나님은 가장 절박하고 어려운 순간 우리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하기 원하신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표현’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지금 제가 처한 현실은 단지 눈에 보이는 현상에 불과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위대한 능력을 믿고 의지합니다. 저에게 있는 이 어려운 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 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최고의 위기 상황이 왔을 때도 ‘평강’을 잃지 않는다.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을 굳게 지켰고,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여전히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좋으신 하나님이셨다.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큰 지진이 나고 옥터가 흔들렸으며 감옥의 문이 열렸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바울과 실라는 단지 하나님을 찬미했을 뿐인데, 하나님의 응답은 매우 구체적으로 그들에게 이루어졌다. * 맺는 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솔직히 그 사랑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이고 감당하지 못할 정도이다. 세상 어느 누가 ‘나’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속죄의 제사를 대신할 수 있겠는가? 그 큰 사랑을 입은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를 불러 예수 그리스도 통해 죄사함의 은혜를 주시고 구원을 주시며, 천국 백성의 삶을 지금도 조금 맛보게 해주셨다. 바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찬양하는 삶이다. 천국에서 우리는 어떻게 예배를 드릴까? 사업을 걱정하고 자녀들을 염려하며 하나님을 찬양할까? 아니면 당장 밀려있는 부채의 문제나 진로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한숨을 쉬며 찬양할까? 뭔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찬양을 할까? 찬양을 해야 된다고 하기 때문에 억지로 찬양을 할까? 아니면 요란스럽게 노래하고 손을 드는 것이 성격에 잘 맞지 않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할까? 아니다. 그곳에서는 단 한 가지 마음만 있을 것이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 생각, 뜻과 정성이 온통 하나님을 향해 집중될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기쁨과 환희에 젖어서 최고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드려야 할 찬양이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그 사랑에 더 깊이 빠지며 매일 그 사랑을 고백하자! |
원어를 통해 살펴보는 찬양과 경배의 의미 | ||||
자료제공 : Mahanaim Ministries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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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드려지는 이러한 찬양과 경배는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희생의 제물이 되며, 이를 통해 놀라운 축복과 은혜가 우리들에게 쏟아지게 된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찬양과 경배를 할 때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들을 지시하시며 하나님을 높이라고 하셨다. 이처럼 찬양과 경배는 하나님께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 믿음의 백성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히브리어 용어* 1. 할랄(halal) 할랄은 ‘찬양하다’, ‘기뻐한다’, ‘칭찬하다’, ‘자랑하다’, ‘밝음의 큰 감동으로 찬양하는 것’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우리에게 주신 구원과 큰 사랑을 기뻐하며 찬양을 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삼하6:13-16], [대상16:4], [시22:23], [시63:3-7], [시56:3-4], [시104:35], [시113:1], [시115:18] 2. 야다(yada) 야다는 손을 뜻하는 의미에서 출발하여 ‘손을 들다’, ‘두손을 들어 경배하다’, ‘고백하다’, ‘선언하다’, ‘감사하다’의 의미가 있으며, 이 단어에는 우리의 의지적인 결단도 내포되어 있다. 즉 우리의 감정 상태나 기분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빈 손을 주께 맡기는 의미이며, 두 손을 들고 하나님 앞에 항복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두 손을 높이 듦으로 인해 우리의 갈급함을 표현하는 의미도 함께 들어 있다. [창29:35], [시63:4], [시106:1], [시138:1], [시143:6] 3. 바락(barak) 바락은 ‘송축하다’, ‘무릎을 꿇다’, ‘경의를 표하다’는 의미로 바락의 명사형은 ‘바라크(축복)’이다. 이는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송축하는 의미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과 인자와 긍휼에 감사할 때 바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시31:21], [시72:18-19], [시96;2], [시106:48] 4. 토다(todah) 토다는 ‘감사하다’, ‘찬미의 제사’, ‘예물을 드리기 위해 손을 내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감사가 없는 찬양은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는다. 우리가 주님의 존전에 들어갈 때 감사함으로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야 한다. 감사할 때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은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신다. [시100:1-5], [시50:14] 5. 테힐라(tehillah) ‘빛내다’, ‘노래하다’, ‘칭찬하다’, ‘즐거운 외침’, ‘정신없이 지껄이다’, ‘여호와를 향하여 정확한 노래를 부르다’의 의미가 있으며 테힐라의 의미가 담긴 성경 말씀은 “이스라엘의 찬양(테힐라)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시여”[시22:3]이다. [대하20:21-22] 6. 자마르(zamar) ‘악기의 줄을 퉁기다’, ‘노래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악기를 사용하여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곳곳을 통하여 각양 각색의 악기들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며, 이 악기들을 연주하며 찬양할 때 강력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수6:13-16], [시92:1], [시144:9], [시149:3-4] 7. 샤바(shabah) 샤바는 ‘외치다’, ‘큰 소리로 말하다’의 의미가 있으며 소리치며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47:1-5], [시63:3], [시66:8], [시117:1], [시145:4], [시147:12] 비슷한 의미의 라난도 ‘기쁨에 차서 시끌벅적하게 외친다’는 의미로 신바람나게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시95:1], [시100:1], [시132:9] * 헬라어 용어* 1. 아이노스 ‘찬미하다’의 의미로 할랄, 야다의 의미를 가진 용어이다. [눅2:13] 2. 독사 ‘영광’을 이라는 뜻의 조사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5:16] 3. 에파이노스 ‘박수갈채 하다’, ‘칭송하다’, ‘칭찬하다’의 의미이며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자랑하고 칭찬하다는 의미이다. [행16:25] 4. 유로기아 ‘축복하다’, ‘복된’, ‘찬양받으신’, ‘복을 빌다’, ‘번영을 빌다’의 의미로 히브리어 ‘바락’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눅1:68] 5. 훔노스 ‘찬양의 노래를 하다’는 의미로 주님의 이름을 선포하고 찬송한다는 의미이다. [히2:12] 6. 프살로 ‘가락을 짓다’는 의미로 ‘영으로 찬미’하고 ‘마음으로 찬미’함으로 하나님께 영적인 노래로 찬양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고전14:15]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할렐루야’는 할랄(halal)과 야(yah)의 합성어로서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합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삶의 모든 순간 할렐루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주님 홀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천국의 삶은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할렐루야의 삶임을 알자!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새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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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Mahanaim Ministries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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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 to the LORD a new song!(Psalms98:1)” 성경의 곳곳에는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이 있다.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사42:10],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 여호와께 노래할찌어다”[시96:1]. 새 노래의 ‘새’는 새로운(New), 신선한(Fresh), 최초 혹은 초기(Original)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노래를 원하시는데, 하나님을 위한 새롭고 신선한 노래를 원하신다. 물론 이것은 기존 찬양곡들을 계속 바꿔가며 부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 새 노래 안에는 많은 의미들이 함축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아마 이 새 노래는 천국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노래일 것이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계14:2-3].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성경은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입술에 새 노래를 두셨다고 말한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40:3]여기서 ‘찬송’으로 사용된 용어는 히브리어로 “테힐라”(Tehillah)라고 한다. 테힐라란 앞서 살펴 보았드시 ‘즐거운 외침’, ‘찬송’, ‘노래로 찬송하는 것’, ‘하나님을 향해 새 노래를 부르는 것’ 등의 의미가 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를 초래하는 자원하는 찬양’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새 노래를 주셨고, 자발적인 찬양을 부를 수 있도록 기름을 부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주님의 자녀들은 누구나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작곡을 배워본 적이 없다고 해도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듣고 싶으신 찬양을 이미 우리 입에 두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새 노래는 다름아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노래이다. 성경은 이를 ‘신령한 노래들’[엡5:18-19], [골3:16]이라고 한다. 이 풍성하고 놀라운 생수의 강물은 성령님으로부터 시작된다[요7:37-38]. 그래서 새 노래는 성령으로 충만한 주의 백성들의 입술에 담겨지며,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있는 곳에서 흘러 넘치게 된다. ‘신령한 노래’의 의미를 살펴보면 이것은 헬라어로 ‘오데 뉴마티코스’라고 하는데, 뜻은 ‘찬송, 노래, 기존에 연습하지 않았던 노래,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노래’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신령한 노래와 영의 찬양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신다. 새 노래의 또 다른 의미는 하나님 앞에 나오는 우리의 심령이 매 순간 새로워져야 함을 말한다. 즉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져야 하며,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겨져 정결하게 드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 믿음을 지켜온 예배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중 하나가 바로 매너리즘인데, 매일 새로운 심령으로 정성껏 올려 드리는 찬양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희생의 제사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 전세계적으로 많은 찬양자, 경배자들을 일으키시며 새 찬양의 기름부음을 물 붓듯이 부으시고 계시다. 말 그대로 새로운 찬양 곡들이 나라마다 민족마다 교회마다 만들어져서 마지막 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새 노래는 과거 기독교의 역사를 볼 때 영적 부흥의 물결과 항상 함께 해왔다. 지금의 세대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얼마 남기지 않은 마지막 때이다. 그리고 새 찬양과 경배의 바람은 어김없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여기서 선포되는 메시지는 예배의 회복과 영혼 추수, 교회의 신부 단장에 관한 것이다. 새 노래로 찬양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 영적인 노래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출처: 크리스찬트리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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