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교실

[스크랩] 선교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

열국의 어미 2008. 7. 15. 10:31
선교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   
(The Historical Understanding of Mission) 

  시작하면서

 선교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선교 역사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관심과 그분의 생명에 대한 열정이 이 세상에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선교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서 살펴보았듯이 선교 역사의 시작은 살아 계신 삼위일체 그 하나님이심이 분명하다. 과거 구약을 통해 인간 타락으로부터 놓여진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노아와 아브라함 그리고 족장들에게 계승되었고, 율법시대를 통해 선지자들에 의해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의해서 계속되어 왔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사실상 세계 선교 역사와 그렇게 큰 차이가 있지 않다.

 구원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로 인해 많은 나라들이 복을 받게 될 것이다(창12:1-3, 18:18)라고 말씀하셨다. 모세를 통해서는 모든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하였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될 때 제사장 나라가 될 것임을 약속하셨다(출19:4-6, 신28:9-10). 이사야 역시 구원의 역사가 모든 육체에게 임할 것(사40:5)과 이스라엘이 이방의 빛이 될 것임을 선포하였다(사49:6, 사56:6-7).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은 이방의 빛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방인들에게 옮겨졌다(마21:43, 행13:46). 지금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그들은 완악하게 될 것이요, 결국은 남은 자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롬11:25-27). 결국, 이 구원의 역사는 선교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땅의 모든 족속"에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은 그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가지고 있는 그 관심과 같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땅 끝까지 증인되라고 그분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 명령했지만 종교 개혁 이전의 사람들은 그 명령이 사도 시대의 명령으로 마쳐진 것처럼 이해했다. 1517년 이후 계속되어진 100여년의 종교 개혁 시대에도 그들은 로마 카톨릭과의 종교적 대립으로 인해 이 명령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믿음의 참된 의미를 찾는 성경신학적인 논쟁의 문제들로 가득차 있었다. 17세기의 경건주의 운동 역시 주님의 대위임령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세속과 구별된 삶을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1800년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변하게 되었다. 드디어 선교에 대한 관심을 몇 명의 사람들이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계속하여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1800년대 이후 오늘까지의 선교 역사를 시대에 따라서 그리고 확장의 단계에 따라서 간략하게 정리하여 선교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고자 한다.



1. 1800년대 이후에 발생한 선교의 세 시대

1) 해안 중심의 시대

 해안 중심의 시대를 연 사람은 인도 최초의 선교사 윌리암 캐리였다. 그는 목사들이 모이면 언제나 질문했다. "왜 당신들은 대위임령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까?" 그들은 대답했다. "하나님이 이교도들을 구원하기로 하신다면 하나님은 당신이나 우리의 도움 없이 그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캐리와 달리 하나님께서 선교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믿었다. 그러나, 캐리는 이 선교 방식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도들의 회심을 위해 수단을 사용해야할 의무에 대한 연구'라는 글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윌리암 캐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직접적인 선교방식보다는 그분께서는 "수단의 사용 하신다"는 "수단의 방식"을 믿었다. 그는 이 사실을 실천으로 옮겼다. 그와 뜻을 같이 하는 몇 명의 사람들은 선교 기관을 만들었고, 그는 이 기관을 통해 필요한 최소한의 후원을 받았다. 그가 만든 이 방식은 세계 선교 운동의 시작이며, 기초가 되었고, 그의 책은 개신교 운동의 대헌장이 되었다.

 물론 캐리가 최초의 선교사는 아니다. 오랜 동안 모라비아 교도들은 그린랜드와 미국, 아프리카에 사람들을 파송했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력에 비해 캐리의 '수단의 사용'에 대한 영향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거의 모든 지역에서 그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영국에는 세 개의 선교회가 세워졌고, 스코틀랜드에 두 개, 네덜란드에 하나가 세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방식은 유럽의 여러 나라로 계속해서 확산되어 갔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선교 활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교회 형식의 조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는 다섯 명의 대학생이 그의 책에 영적 도전을 받았다. 그들은 선교를 위해 함께 모여 기도했고, 그 후에 이 모임은 "건초더미 기도회"로 알려졌다. 이 모임의 성격의 더 중요한 요소는 이들로 인해 대학생들을 중심한 선교 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캐리의 작은 책자 한 권은 이제 유럽과 미국에는 12개의 선교회를 만들게 하는 힘이 되었다. 캐리의 선교적인 영향은 특히 미국의 여성들에게 큰 도전을 주었다. 몇 명의 여성들은 캐리의 방식에 따라 여자 선교 기도 모임을 만들었고, 그들은 선교적 지식과 선교를 하기 위한 욕구에 불타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1865년 미혼 여성들로 조직된 여자 선교회를 만들었다.

 이 해안 중심의 시대는 놀라운 선교의 성장을 이루는 시대였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자마자 폭발적으로 유럽과 미국에 영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시대였다. 특히, 이 시대는 크게 두 가지의 매우 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파송된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의 모범이다. 1775년 이전의 아프리카 선교는 완전히 실패였다. 카톨릭의 모든 노력도 실패했으며, 모라비아 교도들의 모든 노력도 실패였다. 첫 번째 시대 직전에는 아프리카에 어떤 형식의 선교사도 남아 있지 않았다. 1970년 이후 수십 년간 거의 모든 선교사들이 질병에 시달렸고 죽어갔다. 이 해안 중심의 시대인 60년 동안 아프리카에 파송된 선교사 중 2년 이상 살아 남아 있는 사람은 극 소수였다. 20명의 선교사 중 19명은 선교지에 도착하자마자 죽었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은 선교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선교 전략에 대한 수준 높은 통찰이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이 운동을 통해 선교학이 신학자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고, 선교의 방식 역시 선교사 중심의 선교에서 현지인이 지도자가 되는 현지인 중심의 선교 방식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러한 선교학의 변화는 매우 중요한 세계 정세의 변화를 가져왔다. 왜냐하면, 당시의 선교지는 대부분이 제국주의의 식민지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선교정책의 변화로 인해 교회의 지도자들은 외국 선교사에서 자국 내의 현지인으로 대체되었다. 결국, 교회들은 이제 민족의식을 자각하는 민족 교회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2) 내륙 중심의 시대

 1865년에 이르게 되자 미대륙과 유럽의 선교사들은 이제 본국으로 귀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첫 시대의 선교 전략은 선교사들이 들어가기 쉬운 해안 중심 지대를 집중 공략했고,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다가 그들이 세운 교회들의 지도자들이 거의 자국내의 지도자들로 수가 차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선교사들은 해안 중심에서 내륙 중심으로 그들의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선교의 두 번째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 시대의 출발점은 허드슨 테일러였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 내지 선교회(China Inland Mission)을 설립하였다. 이 선교회는 중국 내륙지방에 있는 6천여명 이상의 선교사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섬겼다. 중국 내지 선교회는 지금까지 있었던 선교회 중 가장 협조적이고 잘 섬기는 기관이 되었으며, 기타의 선교회들은 20년 정도가 지나서야 테일러가 강조한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내륙 변경 지방을 대상으로 선교 사역을 시작했다.

 첫 번째 시대보다 두 번째 시대는 성장이 빠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많은 선교회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더 많은 선교회가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d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테일러는 기존의 모든 기관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연안 지방이나 태평양 섬 지역에 국한되어 사역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기존의 방법 외에 새로운 선교적 방식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에게 계속해서 물었다. "해안에서도 일을 채 완수하지 못했는데 왜 내륙 지방으로 가는가?"

 두 번째 시대에는 두 가지 면에서 도전을 받았다. 첫째는 새로운 비전의 문제이며, 둘째는 새로운 선교 기관들의 지속적인 필요였다. 테일러는 자신의 뜻이 관철되도록 영국 변방 선교회를 시작했고, 그들에게 스칸디나비아와 유럽대륙으로 가서 새로운 선교 기관들을 만들도록 도전했다. 그 결과 40개 이상의 새로운 선교 기관이 생기게 되었다. 그의 도전을 받아 발생한 내륙 선교회는 중국 내지 선교회(China Inland Mission), 수단 내륙 선교회(Sudan Inland Mission), 아프리카 내륙 선교회(Africa Inland Mission), 중앙 아프리카 선교회(Heart of Africa Mission), 미전도 지역 선교회(Unevangelized Fields Mission), 미개척 선교연맹(Regions Beyond Missionary Union) 등이 있다.

 첫 번째 시대의 초기 단계와 유사하게 이 내륙 선교가 진척되면서 하나님은 학생 운동을 일으키셨다. 이 운동은 해외 선교를 위한 학생 자원 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으로서 다른 것에 비해 대규모 운동이며,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선교 기관이었다. 1880년대와 90년대의 대학생은 오늘날 37분의 1 정도 였으나, 놀랍게도 그 시기에는 10만 명의 선교 헌신자를 대학에서 배출하였다. 그 중의 2만 명은 선교사로서 해외로 갔고, 8만 명은 고국에 남아서 선교 활동의 토대를 재건했다. 이들이 일으킨 운동이 평신도 선교 운동(Laymen's Missionary Movement)이며, 그들은 또한 기존의 여자 선교회를 강화했다.

 그러나, 이들로 인해 선교지에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새로 부임한 선교사들은 첫 번 단계의 선교사들의 정책을 무시하거나 간과하였기 때문이었다. 대학 교육을 받은 이들은 옛 선교사들의 노력과 수고로 얻어진 선교지의 낮은 교육 수준에 놀랐다. 그들은 선교사들이 어떻게 이 낮은 교육 수준의 현지 인들에게 선교지를 넘겨주거나 교회를 넘겨주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많은 선교사들이 현지 교회의 지도자들을 내 몰거나 물러날 것을 강요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태도로 인해 선교 전략은 크게 후퇴하게 되었다. 따라서, 첫 단계가 마쳐지기 시작한 1865년을 시작으로 1910년에 이르는 45년의 기간은 연안 지역 시대의 성숙한 선교 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인 내지 선교 시대를 향한 과도기였다고 할 수 있다.

 1925년에 이르자 그들이 무시했던 그 초기의 선교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그들은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내륙으로 들어가지 시작했고, 내륙 지방에 새로운 교회를 새워가기 시작했다. 1940년이 되자 사람들은 자신의 시대에 세계 여러 곳에 "어린 교회"들이 있다는 이 사실에 만족했고, 현지의 교회 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은 전세계에 있는 교회들이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하면 남아 있는 미개척 지역까지 완전히 복음화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때 이른 선교사들과 교회들의 생각이었다.

 1910년 에딘버러(Edinburgh)의 세계 선교 대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가 열린 직후 세계는 혼돈의 시대로 들어갔다. 세계 대전이 두 번 있었고, 세계 식민지 조직은 와해되었다. 이렇게 되자 1945년을 중심으로 해외에 있는 식민지 세력 아래 있었던 교회들은 철수를 준비해야 했고, 선교사들은 본국으로 들어가는 상황에 대비해야 했다. 1967년에는 미국 출신의 선교사들의 구는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오늘날도 그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새로운 선교 전략이 필요한 시기가 된 것이다.

 3) 미전도 종족 중심의 시대

 이 시대는 학생 자원 운동 출신의 두 젊은이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 두 사람은 카메론 타운젠드(Cameron Townsend)와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이었다. 타운젠드는 너무나도 선교사가 되고 싶어했다. 마침내 그는 대학 공부를 포기하고, 두 번째 시대의 선교사로서 과테말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과테말라의 대다수 사람들이 스페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과테말라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스페인어로 번역된 성경을 나누어주었다. 스페인어로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23살이 되면서 "원주민인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인디언의 언어로 전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타운젠드는 윌리암 케리와 허드슨 테일러 처럼 미전도 부족들이 세계에 흩어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의 이 발견은 새로운 선교전략을 세워야 함을 깨닫게 했다. 그는 이 때 미전도 종족들을 위해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 번역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이 미전도 종족들을 위해 위클리프 성경 번역 선교회(Wycliffe Bible Translator)를 만들었다. 그는 세계에는 500여개의 미전도 부족이 있을 것이라고 초기에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는 5천 개에 가까운 미전도 부족이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타운젠드가 언어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도날드 맥가브란은 인도에서 언어 장벽의 문제가 아닌 너무나도 큰 사회적인 장벽으로 인해 고민하고 있었다. 맥가브란은 그곳에서 선교를 위한 두 가지 부류의 선교 집단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첫째는 "동질 집단(Homogeneous units)"이요, 둘째는 "종족 집단(People groups)"이었다. 현대의 선교학자 폴 히버트는 각각 독자적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부족들에 대해서는 "수평적 분할"이라는 용어를, 그리고 엄격한 사회적 차이에 의해 구분되는 집단들에 대해서는 "수직적 분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두 종류의 집단이 선교지에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따라서, 이러한 집단을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선교 전략이 필요하며, 다양한 전략을 통해서 "하나님의 다리"(the Bridge of God)가 형성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이 다리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이 다리가 열려질 때까지는 복음 전도와 교회 개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에 의해서 이미 복음이 전파된 집단들 안에서는 교회를 확장시키는 일에 힘을 쓰게 되었고, 미개척지에서의 선교는 아직 복음이 침투하지 않은 남은 집단들과의 다각적인 관계를 통해서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일에 힘을 쓰게 되었다.

 그들의 이러한 생각은 20년이 지난 1950년이 되어서야 사람들이 서서히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들의 영향으로 오늘날은 다각적인 접근 방법으로서 여러 선교회들이 일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부족 선교회(New Tribes Mission), 복음 음반 선교회(Gospel Recordings), 항공 선교회(Mission Aviation Fellowship) 등의 선교회들이 나타났으며, 이들은 선교 기관의 이름 안에 부족들과 세계의 다른 고립된 종족들을 전도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과학 기술을 언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잊혀진 사람들이 부족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들은 놀랍게도 기독교 화된 지역에도 있다. 오늘날 선교학에서는 복음이 전달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며, 이 미전도 종족은 현대 선교학에서는 인종적 또는 사회학적인 특징으로 나누고 있다. 이 점에서 미전도 종족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문화 밖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사회적인 집단과 인종적인 집단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선교의 대상인 미전도 종족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2. 선교사와 현지 교회의 네 가지 발전 단계



 대부분의 선교활동은 네 가지 발전 단계를 거쳐 정착하게 된다. 그 네 가지 단계란 개척자 단계, 부모 단계, 협력자 단계, 참여자 단계이다. 각 단계에 대한 내용과 교회와의 관계는 아래와 같다.

  

개척자 단계(Pioneer)
- 다른 은사들과 함께 지도력의 은사가 필요

- 신자가 없음으로 선교사 스스로가 많은 일을 지도하고 담당해야 함

씨뿌리기

부모 단계

(Parent)
- 가르침의 은사가 필요

- 어린 교회는 선교회와 성장기 자녀 관계

- 양육하는 부모는 '온정주의'를 피해야 한다
양육하기

협력자 단계

(Partner)
-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성인대 성인의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 필수

- 양측은 모두 변화에 힘이 든다

- 교회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단계임
협력하기

참여자 단계(Participant)
- 완숙한 교회가 지도력을 갖는다

- 선교회는 교회를 강하게 키우면서 재생산의 목표를 설정한다

- 교회는 다른 지역에 제 1단계을 위한 계획을 실행한다.
재생산

 각 단계에서 선교사와 교회는 자신들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곳에서 부모는 양육하는 선교사나 교회를 의미한다. 특히, 부모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결단이 있다면 양육되고 있는 선교지의 교회에서 언제 손을 떼고 성숙한 어른으로서 그들을 독립시킬 것인가에 있다. 선교지의 교회가 성장하게 되면, 그들에 대한 관심은 필요하나 부모로서 잔소리나 간섭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교지를 독립적 존재로 인정하는 것은 선교사들과 교회들에게 있어서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부모의 단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들을 인격적인 성숙한 어른으로서 독립 시키려고 하지 않고, 계속해서 선교사들과 교회들이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온정(溫情)으로서 이끌어 가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온정주의는 선교하는 교회나 선교사 그리고 선교지에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부모로서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와 선교사는 되도록 그들이 하나의 독립된 교회로서 독립하여 선교사와 협력 관계로 우선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이 관계에서 더욱 발전하여 선교지의 교회가 완전한 분리를 통해 하나의 독립된 교회로서 다른 교회를 세우고 양육해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위의 네 단계는 지난 선교 역사 속에서 두 번의 전환기가 있었으며, 앞으로도 선교의 새로운 정책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역사적인 전환기가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다음의 표는 역사의 전환기가 일어났던 시기와 전환기의 성격을 나타내 주고 있다.

 1792-1910
전 환 기
1865-1980
전 환 기
1934- ?

개척자->부모
협력자->참여자

개척자->부 모
 
협력자->참여자

개척자->부 모
협력자->참여자

연안 중심 시대
 
내륙 중심 시대
 
미전도 종족시대


 위 도표에서 보듯이 선교 역사의 전환 시기는 언제나 협력자에서 참여자로 그리고, 개척자에서 부모의 단계로 동시에 선교지의 교회가 옮겨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이동은 반드시 개척된 선교지의 교회가 또 다른 선교의 참여자로서 독립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선교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후원하는 교회 또는 선교회는 적극적으로 이 과정이 일어나도록 도와야할 것이다.


 3. 선교 역사에 남아 있는 과제들

 예수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선교 역사의 남아 있는 큰 과제가 있다. 그것은 모든 사도들이 그렇게 했고, 지금도 선교사들이 이 명령을 시행하는 것처럼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으로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에는 기독교와 대적할 만한 강력한 종교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무슬림권, 힌두권, 불교권이 있고, 아직도 몇 개의 나라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복음이 저지되고 있다. 아프리카와 여러 지역에는 강력한 부족의 단합에 의해서 다른 종교를 거부하고 있다.

 아래의 도표는 현재 지구의 인구 중에서 복음이 필요한 종족이 얼마나 되는 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 랄프 윈터, 브루스 코크, "임무를 완수함: 미전도 종족들의 도전" (미션퍼스펙티브, 예수전도단), 291.을 참조하여 재 구성. 미전도 종족
종족 집단과 그 수

12억의 명목상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 10,000종족 집단(20억 7,000만)

3700 미전도 종족
무슬림 4,100종족(11억)

2000 미전도 종족

(1억 2,000만)
부족민 3,700 종족 집단(2억 2,000만)

2700 미전도 종족

(5억 3,600만)
힌두교도 3,400 종족(8억 8,600만)

150 미전도 종족

(9,000만)
중국 민속종교 350 종족 집단(3억 4,000만)

1,000 미전도 종족

(2억 2,500만)
불교도 1,300 종족집단(3억 4,000만)

50억 미전도 종족

(2억 2,500만)
무종교인/무신론자 250 종족 집단

(8억 7,500만)

400 미전도 종족

(2,900만)
다른 종교들 900 종족 집단

(2억 5,900만 - 유대인 포함)


  토드 M. 존슨의 자료에 따르면 복음이 전파된 종족은 14,000에 이른다. 그러나, 그 중의 50%는 비그리스도인들이며, 복음이 전파된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명목상 그리스도인은 19.9%에 이르고, 제자 훈련을 통해 양육 받아 헌신된 그리스도인은 11.2%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결국, 선교 역사를 통해 남은 과제가 있다면 첫째는 명목상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제자 훈련을 통해 복음으로 변화시켜 증인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둘째는 지속적으로 현재 설립되어 있는 교회를 중심으로 동일 문화권에 속해 있는 지역을 복음화시키도록 해야 하며, 셋째는 타문화권에 속해 있는 미전도 종족들을 향한 복음 전파의 전략이 다양화되어야 함을 말해 주고 있다.



 글을 마치며

 선교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현재 선교를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 가야할 것인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현대의 시대는 "미전도 종족 시대"이며, 그 선교 방법은 다양하게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현시대가 다원화 된 사회라는 사실과 전문화 된 사회임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 헌신했던 몇 명의 선교사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던 선교 방식은 이제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전문적인 여러 사람들의 도움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에 그리고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미전도 종족들이 원하는 것은 복음만이 아니다. 그들은 이제 복음 전달에 앞서 기술과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다양한 욕구와 그들의 문화와 기술 문명을 원하고 있다. 또한, 미전도 종족은 단순히 저 멀리만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미전도 종족에 포함되어야 한다.
출처 : 행복충전소♥대명
글쓴이 : DMpasto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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