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책

[스크랩] 시인의 수첩 - 오세영 시인 편

열국의 어미 2016. 3. 4. 21:47

      시인의 수첩


                               - 오세영 시인 편 - 

1. 1990년 봄

 고독을 두려워하는 자는 시를 쓸 수 없을 것이다.

진정한 자 기와 만날 수 잇는 것은 오직 고독밖에 없는 까닭이다.

나는 항상 홀로 있으려 노력해 왔다.

그러나 니게 고독은 아직도 두렵기만 한 존재이다.

 깨어 있지 아니한 자는 시를 쓸 수 없을 것이다.

깨어 있는 자만이 어둠의 실체를 볼 수 있는 까닭이다.

허위는 밝음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가능한 한 깨어 있으려 노력해 왔다.

그러나 항상 졸면서 맞이했던 것이 나의 새벽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詩流에 편승하는 자는 실를 쓸 수 없을 것이다.

시류는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기 때문이다.

시류가 大勢와 합류할 때 사람들은 쉽게 자기 성찰력을

잃고 그것을 普遍으로 오인하는 우를 범한다.

그러나 대세는 ㅡ 더군다나 시류는 보편이 아니다.

나는 가능한 한 시류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나는 대세보다는 보편을 택하기를 원했다.

 시대가 무엇이라고 하든 간에, 다른 시인들이 무엇을 추종
하든 간에 나는 나의 시를 써왔다.

나는 나의 시가 호사나 호기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해 왔으며

시에서 대중적인 관심을 끌려는 센세이셔널리즘과 저널리즘을

혐오해 왔다.

나는 보다 보편적인 것, 보다 본질적인 것, 보다

중심적인 것을 탐구하 고자 하였다.

그러나 의미에서 나는 고전주의자이거나 보수주의자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것이든 포즈를 싫어한다. 나에게는 포즈가 없다.
생긴 대로의 내가 있을 뿐이다.

나는 진솔해지기를 원하며 버려져 있기를 원한다.

생리적으로 내가 혐오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어딘가의 대열에 끼어

목청을 가다듬는 일이다.

 문학의 정치참여는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시가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의 위에 있다고 믿는다.

그런 까닭에 나는 지난 두 세대 동안 고독하게도 시가 이데올로기에

종속되는 것을 묵묵히 거부해 왔다.

만일 시가 이데올로기의 위에 있지 않고 그에 종속되어 있다고 한다면

이데올로기가 저지른 과오는 누가 감시 할 수 있다는 말인가.


2. 1994년 봄

 나는 참으로 고독하게 시를 써 왔다. 아니 고독하게 시를

지켜 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시류적인 이념주의자들에게 유미주의자로,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이렇
게 말하고 싶다. 언어는 먼저 그것이 있음으로써 그 다음에
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여기서 시인이란 전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자라고 ……. 시인은 언어를 만드는 자아지만
산문가는 언어를 사용하는 자인 것이다.

 나는 또한 철없는 유미주의자들에게 모랄리스트로 몰려
공격을 받아 왔다.

그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름다움에도 건강한 아름다움이 있고 병든 아름다움이

있으며 건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가 훌륭한 시라고 …….
나는 러시아의 어떤 사상가처럼 「모든 건강한 것이 아름답다 」

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건강한 아름다움 」이 가치있다고 믿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시인이란 어떻게 말을 할까 」 아니라 「어떻게 말을

하지 않을까」생각하는 사람이다. 산문은 말로 쓰는 글이지만

시는 침묵으로 쓰는 글인 까닭이다.


3. 2001. 가을

 말만이 말이 아니고 이 세상 모든 것이 '말'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인간의 말만이 아닌 사물의
말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하늘이 들려주는 말을, 땅이 들려주는 말을, 꽃과 새와

별이 들려주는 말을 ….

왜 파도는 밀려왔다 쓸려 가는지를,

왜 숲은 잎을 피우고 또 떨어뜨리는지를,

왜 강물은 쉬임없이 어디론가 흘러가는지를 ….

오세영 시인 홈에서….




        오세영 봄은 성숙해 가는 소녀의 눈빛 속으로 온다 흩날리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봄은 피곤한 청춘이 낮잠 든 사이에 온다 눈 뜬 저 우수의 이마와 그 아래 부서지는 푸른 해안선 봄은 봄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의 가장 낮은 목소리로 온다 그 황홀한 붕괴, 설레는 침몰 황혼의 깊은 뜨락에 지는 낙화.

        출처 : 한국명시낭송예술인연합회
        글쓴이 : 석랑 조윤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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