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낭송

[스크랩] 우울한 샹송(이수익)

열국의 어미 2016. 3. 26. 01:05
우울한 샹송 / 이수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
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올 사랑을 맞이할까



우울한 샹송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
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올 사랑을 맞이할까
    - <우울한 샹송>(삼애사, 1969) -

이수익(李秀翼 1942~ ) 경남 함안 출생.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고별', '편지'가 당선되어 등단. <현대시> 동인으로 활동. 제4회 신인 예술상, 부산시문화상, 대한민국 문학상, 제7회 정지용 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한국방송공사 근무. 시집으로 <우울한 샹송>(1969), <야간 열차>(1978), <슬픔의 핵(核)>(1983), <단순한 기쁨>(1986), <그리고 너를 위하여>(1988), <아득한 봄>(1991), <시간의 샘물>(1990), <지상에는 진눈깨비 노래가>(1992) 등이 있다. 대상과 인식을 같은 차원에 두고 선명한 이미지를 시화하는 주지주의적 서정시를 창작하고 있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비애와 우수를 절제된 시어로 형상화한 시를 써가고 있다.



이수익 시인은 1960년대 <현대시> 동인들의 시작 경향을 대표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지적인 상상력과 선명한 이미지, 절제된 시어, 균형 잡힌 형식으로 인간 존재의 근원적 비애와 우수를 맑고 아름다운 서정으로 형상화한 시작품을 꾸준히 창작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시는 시인의 첫 시집인 <우울한 샹송>의 표제작이다. 정제된 시 형식과 명징한 이미지로 옛사랑의 추억을 애잔하게 회고하고 있는 초기 대표작이다. 모두 4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1연과 4연이 대칭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의 ‘샹송’과 4연의 시어인 ‘도어’ 등은 이국적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시어로 이 시가 낭만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사연이 오고가는 우체국의 풍경을 시적 제재로 하여, 사랑의 사연을 전하며 기쁨에 젖어있는 사람들과 잃어버린 사랑을 추억하는 자신의 상실감을 대조하면서 시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1연은 잃어버린 옛사랑을 다시 찾고자 하는 시적 자아의 안타까움과 비애가 드러나 있다. ‘우체국에 가면/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하고 자기 독백적으로 자문하고 있는 시인의 수동적인 태도가 나타나 있다. 우체국은 사람 사이의 은밀한 사연과 대화가 오고가는 통로이다. 그 공간에서 잃어버린 옛사랑을 회고하며, 시적 자아는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하고 자신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옛사랑의 추억으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지금은 혼미하여’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다.

2연에서는 사랑의 사연을 전하기 위해 우체국을 찾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우체국을 찾으며, ‘그 꽃들은 바람에/얼굴이 터져 웃고 있다’. ‘꽃’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추억’을 상징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그리움을 전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유쾌한 웃음,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엿보인다. ‘얼굴이 터져 웃는다’는 구절은 한껏 부풀어 있는 기대와 기쁨을 억제하려고 해도 억제할 수 없는 사람들의 표정이 강조되어 나타난 구절이다.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라는 문장은 일상적 어법과는 다른 비문(非文)이다. 나도 그들처럼 다시 사랑의 기쁨에 들뜬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시적 자아의 심정이 드러나고 있다. 과거 속의 나를 현재의 내가 객관적 거리를 두고 되돌아보고 있다.

3연에서는 사람들의 ‘사랑의 환희’와 대비된 자의 ‘상실감’이 강조되고 있다. 사람들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다들 가지만’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 간다. ‘애정의 핀을 꽂는다’는 표현은 편지에 우표를 붙이는 행위 뜻하며, 한편으로 그들의 확고한 애정 표현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이때 그들의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어린다. ‘꽃불’은 사랑의 기쁨과 환희를 뜻하며, 시적 자아는 세심한 관찰로부터 사람들의 환희를 독자들의 눈에 보이듯이,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그에 대비되어 나는 돌아오지 않을 사랑을 기다리며 ‘저려오는 발등’으로 서 있다. 화자의 고립된 비애와 단절감이 나타나고 있다.

4연은 1연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기진한 발걸음’을 옮겨 옛사랑의 추억을 전해주던 우체국을 ‘노크하면’ ‘사랑이 돌아올 수 있을까’ 가정해보고 있다. 시적 자아는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올 사랑을 맞이할까’하고 예비하고 있지만, 그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옛사랑의 회복을 소망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내면적 그리움에 그치고 있다. ‘도어를 노크/하면,’에서 노크와 ‘하면’을 행 가름한 것은 1연과의 대응을 생각한 것이며, 또한 노크라는 단어 뒤에 청각적 이미지의 여운을 남겨두려는 섬세한 의도이기도 하다. 4연의 마지막 2행은 2연의 마지막 행과 같이 자신을 객관화시켜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옛사랑을 추억하는 자신의 슬픔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시인의 지성적 절제 때문에 가능한 구절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 2연에서는 과거의 내가, 4연에서는 미래의 내가 각각 객관화되어 있다. 주제는 회복할 수 없는 옛사랑에 대한 잔잔한 비애와 우울.


출처 : 현대시 천편
글쓴이 : 상징사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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