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방

[스크랩] 명료한 설교를 하라

열국의 어미 2009. 3. 22. 15:48

명료한 설교를 하라


 

 

한 편의 설교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이지 불분명할 때가 없지 않다. 설교에서 명료성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설교가 보다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이게 늘 골칫거리다. 나폴레옹은 사자들을 보낼 때 세 가지 지침을 주었다고 한다. 첫째, 명료하게 전하라. 둘째, 명료하게 전하라. 셋째, 명료하게 전하라.
설교자도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하고자 할 때 몇 가지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다. 첫째, 설교에서 설교자들이 성경의 본문 이곳저곳으로 배회하는 경향이 많다. 자신이 말하는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온갖 본문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저것 너무 많은 내용을 말하려다 결과적으로 청중에게 전해지는 것이 너무나 적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출발할 때는 한 마리 곰을 쫓아간다. 그러나 이내 몇 마리 산토끼들에게 마음이 끌리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그것들을 잡으려고 그것들만을 계속 쫓아간다. 결국 처음에 목표로 삼았던 곰을 놓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은 게 곧 많은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말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과제도 잘 다뤄야 한다. 구두 언어는 문자 언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몇 가지 보조 기구들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교자들은 명료한 의미 전달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글로 의견을 전달하려고 할 때 우리는 단락 구분, 구두점, 인용 부호 등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설교할 때는 이런 것들을 사용할 수 없다. 게다가 음성을 들음으로써 의미를 붙잡게 되는 설교의 경우에 그것이 진행되는 동안 어느 한 대목을 듣는 자가 이해하지 못하고 놓치게 된다면 뒤돌아가서 이를 다시 되새겨 볼 수 없다. 만일 되새겨보려 한다면, 지금 설교자가 말하는 내용까지 놓치게 된다. 따라서 설교자는 청중이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할 책임이 있다.

설교문 작성이 도움을 줄까
어떤 설교자들은 설교를 명료하게 전하기 위해 설교문을 낱낱이 작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종종 정반대 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설교 노트의 명료성과 전달의 명료성, 양자 간의 간격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우선 주제부터 명료해야 한다. 설교문을 작성할 때 두 가지 문제에 언제나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는 ‘내가 지금 무엇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가’라는 문제다. 설교의 주제 즉 설교에서 말하려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간결하고 명확한 용어로 진술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진술들이다. 우리가 왜 헌신해야 하는가? 또는 어디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섬길 수 있는가? 우리는 이것을 주제라고 부른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내가 지금 무엇에 관해 말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또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속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 것인가?’ ‘그 주제에 관해 구체적으로 진술해야 할 주장들은 무엇인가?’ 우리가 종종 실패하는 것은 강단에 올라서기 전에 이 두 가지를 못 박아 놓지 않기 때문이다.
강해 설교자라면 또 하나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설교의 목표가 무엇인가? 주제 설교자는 출발에서부터 설교 목표 설정에 이점을 안고 있다. 종종 그 목표가 주제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강해 설교자는 지금 자신이 이 설교를 왜 하고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해답도 없이 본문에서 시작해 본문으로 끝나는 경향이 있다. 주일 오전 11시 25분부터 12시까지를 설교 시간으로 채운다는 사실 하나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개요 작성의 도움을 받아라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에게 공식적인 설교 개요 원고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나가려는 경향이 있다. 설교 개요를 경시하는 이런 경향을 감안할 때, 우리가 명료성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설교 개요를 무시하는 게 과연 현명한 일인지를 질문하고 싶다. 좋은 개요는 언제나 명료한 의미 전달에 도움을 준다. 설교의 개요를 작성할 때 하나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처럼, 물 흐르듯이 각 대지를 앞의 것과 상호 연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용서에 관한 설교를 한다고 하자. 서론에서 이 주제를 꺼낸 이유에 대해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첫째 대지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용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둘째 대지는 이렇게 전개할 수 있다. “하지만 용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용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종종 경험합니다.” 그리고 셋째 대지는 이렇게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용서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설교의 이 세 가지 대지는 개별적인 세 개의 진술이라기보다 하나의 대화, 하나의 이야기와 같다. 이렇게 하면 개요대로 설교할 수 있다. 개요가 뼈대처럼 개별적으로 툭툭 튀어나올 필요가 없다. 이런 면에서 첫째, 둘째, 셋째 식의 대지 유형이 의미가 있다. 즉 명료한 의미 전달에 목적을 둔다면 그런 식의 대지가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모든 설교가 그런 형태를 취한다면, 지루함을 주기 십상이다.

핵심 개념을 반복하라
이밖에 설교에 명료성을 부여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첫째, 설교의 서론에서 곧장 청중을 본론 속으로 인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설교자는 흔히 서론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때로 기적을 행하거나 우리 안에서 기적을 행하십니다.” 하지만 청중도 이 정도는 뻔히 알고 있으므로 이게 설교자가 하고자 하는 말의 전부일 수는 없다. 이어서 설교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거나 우리 안에서 기적을 행하신다는 말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렇게 말한다면, 명료성을 확보하기가 용이하다. 회중이 이 개념 자체를 알고 있으므로 설교자는 설교의 본론에서 그 개념을 명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핵심 개념을 되풀이해 들려주는 것도 명료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컨대, 설교 서두에서 “오늘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원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러면 이 개념을 그 뒤에서도 계속해 몇 차례 들려주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잘 모를 때 우리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에 주의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설교하는 도중에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좀 번거로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주제를 상이한 방식으로 몇 차례 재진술하는 것이 교인들의 마음에 이를 각인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설교자 자신이 지금까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간단히 재진술한 다음에 후속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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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복있는 그리스도인
글쓴이 : 하나님의 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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