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난을 이기는 자세 벧전4:12∼19
골프의 여왕이라고 명성을 얻었던 박세리 선수가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성적이 그리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떤 신문 스포츠란에 보니까 '박세리 선수의 스윙 폼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다른 이유 때문에 박세리 선수의 성적이 저조한 것이 아니라 그 스윙, 공을 치는 폼 자세 때문에 박세리 선수의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박세리 선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밥만 먹으면 골프를 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밥만 먹으면 골프를 쳤던 그런 사람도 자세가 흔들릴 수가 있고 또 그렇게 자세가 흔들리면 좋은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자세 문제는 골프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서 다 그렇습니다. 스포츠에서는 기본자세가 바로 되어있지 않으면 아무리 힘이 있고 노력을 해도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세가 중요하다 그 말입니다. 또 이런 자세는 운동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간사의 모든 일들도 다 그렇습니다. 어떤 일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것에 대응하는 자세가 참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유명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태도가 환경보다 중요하다' 환경이 무엇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가 어떤 일을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은 우리 인생사의 모든 면에서도 그렇고, 저 또한 고난이 올 때 우리 인간의 모든 사람들의 자세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고난을 만나게 되는데 그 고난을 만날 때 어떤 자세로 그 고난을 받아들이고 맞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고난이 복이 되기도 하고 실패와 저주가 되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근거해서 우리 성도들이 고난을 만났을 때 취해야 될 네 가지 자세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을 복으로 바꿀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고난이 있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자세를 우리들은 가져야 됩니다.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들은 고난이 오는 것을 절대로 이상한 일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12절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험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일 당하는 것처럼 여기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고난이 있는 것은 우리 인생살이에서 힘들고 어렵고 아픈 일이 있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아주 정상적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아주 복잡하고 어렵고 또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여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 복잡하고 어렵고 무서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이 병들고 사업에 실패하고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건강을 잃고 인간관계가 악화되고 이런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정상적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쓴 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30살이 넘으면 병이 없는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서른이 넘어서면 다 사람에게는 하나씩 고장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장기가 나쁘다든지 신경통이 있다든지 코가 안 좋고 눈이 안 좋다든지 무슨 병이든지 사람이 서른이 넘어가면 다 하나씩 병이 생기는데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사 말이 재미있는 것은 완전히 건강한 사람보다도 차라리 병이 하나 있는 사람 즉 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하나있는 병이 치명적이지만 않으면 그 병 보듬고 조심조심하면서 무리하지 않고 아주 주의하기 때문에 오히려 병 하나 있는 사람이 병 하나 없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고 그 의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옳습니다. 우리 사람에게 병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 몸 어디가 아픈 것은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이 세상이 얼마나 강퍅하고 얼마나 무섭습니까? 이런 세상을 우리가 살아가는데 이 세상에 살다가 우리가 고장 나고 문제가 생기는 것은 너무나도 우리 인생에는 당연한 것이라 그 말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만 아무 일 없이 살아야겠다는 것은 사실 축복이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과욕이며 교만한 생각일수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렇게 복잡하고 무서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는 더욱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무 문제없이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고난이 많습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에 보면 '우리에게 고난이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고난도 아무 문제도 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은 절대 우리에게 좋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친자식이 아니라 그 말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12절에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과 고난을 받으리라'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속했다는 것이고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그 말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해서 바르게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고난과 시험이 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 믿는 사람에게 도리어 고난이 많다는 이유는 뭐겠습니까? 왜 고난이 많겠습니까? 여러분, 고난에는 유익함이 있습니다. 고난에는 우리가 모르는 엄청난 고난 속에 들어있는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래서 고난을 당할 때 어려운 문제를 우리가 만날 때 우리의 자세만 바르게 해서 그 고난을 잘만 받아들이게 된다면 우리는 고난 속에서 엄청난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중 두 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첫째 고난이 있을 때 우리는 깨끗해집니다.
여러분, 고난이 있는 사람은 타락하지 않습니다. 오늘 12절 말씀에 보면 '너희를 시련 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그랬습니다. 시련이란 말과 불 시험이란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느냐하면 용광로를 생각합니다. 이 시련이라는 말은 연단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여러분, 용광로가 뜨거운 불이 타고 있는 용광로 속에 필요 없는 고물들 잡철들 다 거기다 집어넣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 뜨거운 불에 더러운 찌꺼기가 다 빠져나가고 아주 새로운 쇠, 곧 깨끗한 쇠가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오고 엄청나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옴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의 삶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깨끗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저는 목회자이기 때문에 이런 고백을 자주 듣습니다. "고난이 오기 전에는 멋대로 살았습니다. 고난이 오기 전에는 세상 속에서 타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이 오기 전에는 술도 마시고 바람도 피우고 도박도 하고 예수 믿는 집사라고 하지만 그런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엄청난 고난 무서운 고난을 만났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 무서운 고난을 만나면 사람의 마음은 어린애와 같이 작아지고 눈과 같이 녹아지고 물처럼 낮아집니다. 여러분, 그래서 하나님은 그 고난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버릴 것을 버리게 하고, 끊을 것을 끊게 하고, 우리가 당연히 가야할 길을 가지 않을 때 고난을 통해서 우리들이 길을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해서 우리 인생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종교를 개혁한 루터는 고난을 '제 3의 성례'라 하였습니다. 성례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례이고, 또 하나는 성찬입니다. 천주교에서는 7성례라 하는데 7성례라 하는 것은 성경에도 없는 것을 자기들이 만든 것이지 성경에는 두 가지 뿐입니다. 그런데 루터는 이 고난을 하나의 성례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성례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큰 은혜를 주고 하나님이 그 성례를 통해서 우리들을 당신의 것으로 인치는 작업을 성례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를 주십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기를 바로 보게 됩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절대 받을 수 없는 신령한 은혜를 우리들에게 주십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것으로 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이 우리에게 있을 때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이다. 내가 복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고난이 오면 '아 하나님이 나를 깨끗케 하시려는 구나. 아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바르게 하시려는 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내가 제 3의 성례에 참여하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깨끗해진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우리 인생이 바르게 하나님 앞에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평안할 때나 평소에는 못합니다. 우리 의지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불같은 고난을 주셔서 우리들을 그렇게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또 하나 고난의 유익은 우리를 큰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능력 있게 되는 길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능력을 얻습니다. 공부하는 것은 능력입니다. 돈 버는 능력도 되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능력도 되고 특히 우리 한국에서 제일 좋은 능력을 얻는 길 하나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식들 공부를 무자비하게 시킵니다. 또 무슨 다른 방법도 있지만 어떤 빽 줄이 있어서 높은 지위를 얻는 것도 능력을 얻는 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능력들은 분명히 능력은 능력이지만 그런 것들은 한시적이고 부분적인 능력입니다. 여러분, 그것들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거나 돈 버는 능력밖에는 안됩니다. 사람에게는 그런 능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능력이 필요합니다. 돈이 있다고 다 행복한 것 아닙니다.
정말로 중요한 능력은 어디서 배웁니까? 고난의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그런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 48개국 대학생들에게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살았던 인물들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 물어봤더니 1위가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링컨에 대해 얼마나아십니까? 링컨이 어떤 사람인지는 대강은 아시죠? 어렸을 때 통나무집에서 남의 책을 빌려다보다가 책이 비에 다 젖어서 버릴 만큼 가난했던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링컨의 인생은 훨씬 더 불행하고 인생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해서 상처투성이의 인생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 어머니가 다 죽었습니다. 아버지는 철들기 전 돌아가셨고 소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너무너무 가난해 가지고 식당 청소부, 인쇄소 직공, 가게점원, 신문팔이 등 안 해본 일이 없이 인생의 가장 밑바닥 인생을 다 겪었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결혼을 약속한 사랑하는 여자가 결혼하기 전에 죽어버렸습니다. 그 후에 결혼을 했는데 아주 악처라고 소문난 여자로 소크라테스의 아내와 함께 아주 유명합니다. 가정이 너무너무 불행했습니다. 자식이 둘이나 링컨 생전에 다 죽어버렸습니다. 정말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직공생활, 점원생활, 신문팔이해서 겨우 돈 벌어 조그마한 사업을 했는데 두 번이나 파산 당했습니다. 하원의원 선거에 두 번 출마해서 두 번 낙선했습니다. 상원 의원에 두 번 출마해서 두 번 낙선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사람은 너무나도 많은 고난을 받은 그야말로 그 인생이 고난으로 점철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사람이 모든 인류 중에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고난이 없이 평안하게만 산 사람은 절대로 리더가 못됩니다. 큰 사람도 못됩니다. 참모는 될 수 있을는지 몰라도 큰 사람은 못됩니다. 고난을 당해봐야 어려운 일을 풉니다. 고난을 만나봐야 힘들고 괴로운 일들을 견뎌낼 수가 있습니다. 고난을 당해본 사람은 직장을 잃어버려도 망하지 않습니다. 더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고난 받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고난은 사람을 키워줍니다. 크게 해줍니다.
그래서 고난이라는 것은 우리가 다시 보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너희들만 잘 먹고 잘 살다가 천국에 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께 많은 영광 돌리고 너희들 값있게 살다가 큰일 하고 천국에 오라"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렇게 살 수 있도록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고난의 유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받을 때 아프고 괴롭지만 '아이고 나는 복이 없다. 나는 저주받았다' 이렇게 절대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 올 때 자세를 바르게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선수요 그가 연습을 열심히 해도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경기를 잘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자세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분 태도를 마음의 태도를 '아 내가 지금 이렇게 고난을 만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깨끗케 하려고 한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바르게 하려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시라 그 말입니다. 또 하나는 '아 좋다. 이 고난 지금은 내가 아프고 쓰리고 무섭고 괴롭지만 하나님이 나를 지금 새로운 큰 그릇으로 만드시고 나를 좀 더 강한 그릇으로 만드시려고 하시는구나.' 이렇게 받기만 하면 고난은 절대로 저주가 아니고 복 없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두 번째 고난이 올 때 우리는 즐거워해야 합니다.
두 번째 자세가 13절 보면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자세를 바르게 하기만 하면 고난에 유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 절대 자세를 흩트려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고난이 올 때 가지는 자세는 무엇입니까?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난이 오면 원망하고 울부짖고 술 마시고 될 대로 되라 타락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고난이 올 때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합니다. 어떻게든지 믿음으로 이것을 이겨보려고 몸부림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서 고난을 받을 때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고난이 우리에게 좌절로 온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몸은 아픈데 육신은 아픈데 육신은 괴롭지만 마음속에서 남모르는 신령한 기쁨이 생깁니다. 참 이상합니다. 그런 체험해보셨습니까? 그래서 그런 신령한 기쁨이 있으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내성이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옵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고난이 올 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즐겁게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인생을 고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인생은 고해입니다. 그러나 주안에서 생각을 바꾸면 고해가 평안이요 소망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즐겁게 살아야 됩니다. 기뻐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어떤 한 청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는 인류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직장에 취업이 되지 않거나 취직을 해도 오래 있지 못하고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좋아한 것이 음악 듣는 것, 팝송을 무지무지하게 좋아해서 이 팝송에는 박사입니다. 이것 외에는 아무 것도 취미가 없습니다. 일류대학을 나온 그가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은 레코드 가게의 점원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친구들이 "야 저놈 망했구나. 저놈 버렸다. 인생 구겼다"고 농담 같은 비난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니면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일류대학을 나왔는데 남의 조그마한 레코드 가게의 점원으로 취직을 했다고 생각하면 성공자라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실패자라고 생각할까요. 그러나 그 친구는 레코드 가게에 취직하고부터는 신이 났습니다.
날마다 팝송을 들으면서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녁 9시에 퇴근하는데 퇴근하지 않고 뭐 12시 1시까지 혼자 레코드 가게 열어놓고 하니까 주인이 얼마나 좋아라하겠습니까? 레코드 가게에 누가 디스크 사러오면 이 사람은 손님들에게 어떤 노래가 좋고 어떤 노래는 어떻고 하며 재미있게 세세하게 조사까지 해서 차트까지 만들어주고 손님들에게 신나서 이 음악 들어보라고 하고 자기 혼자서 흥이 나서 이 음악은 이렇게 좋다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레코드 가게 점원으로 취직을 했지만 굉장히 즐겁게 월급은 쥐꼬리만 하지만 굉장히 재미있게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뭐가 된 줄 아십니까? 큰 레코드 회사 사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이 가십니까?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으면 우리는 성공하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성공의 비결을 하나 가르쳐드린다면 “여러분이 하시는 일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한 사람은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성공의 비결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이를 악물고 죽기를 각오하고 일하는 사람하고, 다음으로는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성공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죽기를 각오하고 일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시겠습니까? 이왕이면 즐겁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성공하는 길을 택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성공의 비결입니다. 그렇게 해야 됩니다.
어떤 일이던지 즐거운 마음으로만 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몸이 아픈 줄도 모르고 허리 아팠던 사람 허리도 나아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하기 싫은 공부를 하면 책상에 한 시간만 앉아 있어도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다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좋아하는 소설을 읽거나 시를 읽거나 컴퓨터를 하면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다섯 시간이 한순간에 지나가버립니다. 그리고 아팠던 허리도 나아버립니다. 똑같이 앉아 있어도. 참 이상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해보셨습니까? 경험해보신 분들은 고개를 끄덕이시거나 아니면 빙그레 웃으실 것입니다. 이 말은 즐거운 일로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라 그 말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면 기쁨으로 하면 다 성공합니다. 아무리 하찮은 일도 하찮게 생각하지 말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해야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하면 반드시 성공합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느헤미야 8장 10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쁨을 가질 수만 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능력이 됩니다. 사실 우리는 그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한번 하나님 앞에 나와서 내 마음 깨뜨려서 드리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해 보십시오.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오히려 어떤 사람은 "아 기도할 마음이 안 납니다."라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기도할 마음이 없을 때 더욱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됩니다. 그럴 때 정말 이상한 기쁨이 있습니다. 정말로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바위가 하나 깨지고 샘물이 솟아나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 기쁨만 우리가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큰 능력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이 올 때 사실 저절로 감정적으로 기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기뻐할 수 없으면 의지적인 면으로라도 기뻐해야 됩니다. 기뻐하자. 기뻐하자! 여러분, 거울을 보고 웃어보고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감사하다! 나에게는 아직 남아있는 것이 많이 있다! 나는 지금부터 시작한다!" 여러분, 이렇게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감사하면서 나를 이끌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성공의 비결입니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비결입니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고난 중에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있음을 믿어야 됩니다.
14절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특별히 우리가 고난 받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가까이 우리를 더 붙들어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시 같은 단상을 읽을 때 굉장히 충격을 받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쓴 작자 미상의 “모래 위의 발자국”이란 글이 있는데 '바닷가를 내가 돌아다보니까 발자국 둘이 나란히 났네. 하나는 주님의 발자국. 하나는 내 발자국. 둘이가 나란히 바닷가 저 멀리서 발자국이 났는데 폭풍이 몰아치고 큰 어려움을 내가 겪었을 때 발자국이 하나만 보이네. 그래서 나는 주님께 물었네. 주님 내게 폭풍우가 밀려올 때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 발자국이 없어졌는데 주님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셨습니까? 나와 늘 함께 하신다는 주님이 어디로 가버리고 나만 홀로 이 고독한 곳 이 무서운 곳에 버려두셨습니까? 이렇게 주님 앞에 물었더니 주님이 얘야 둘이 있다가 하나 된 발자국은 네 발자국이 아니라 내 발자국인데 네가 가장 어려웠을 때 내가 너를 엎고 걸어갔단다.' 여러분 우리가 고난의 때에 주님이 우리를 버린 것 같지만 아닙니다. 주님이 지금 우리를 엎고 있는 때입니다. 어린아이가 아파서 열이 펄펄 나는데 엄마가 혼자 놔두고 어디 갑니까? 못 갑니다. 어린 아이 곁에 늘 붙어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 받을 때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를 보십시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브갓네살이 만든 신상 앞에 절하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느브갓네살 왕이 보니까 타 죽은 줄 알았던 그들이 불속을 거닐고 있는데 네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분명 세 사람을 던졌는데 넷이라면 하나는 누구입니까? 성경이 말합니다.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느브갓네살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을 꺼내 놓고 보니 머리카락 하나 타기는커녕 그을리지도 않았습니다. 믿음대로 살려다 보면 우리들도 고난의 풀무불 속에 던져질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던져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풀무불 속에 던져져 있지만 하나님은 고난의 때에 우리를 지켜주시고 함께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고난은 성령 받을 기회입니다. 어떤 분들 제가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래해도 하나도 뜨거움이 없고 십자가의 은혜도 못 느끼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어서 습관은 됐는데 내 가슴에 진실한 하나님의 영이 임재 하는 체험을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때 그런 체험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떤 때 정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체험할 수 있습니까? 평안할 때는 안 됩니다. 영혼이 내게 임하는 문이 있는데 그 영혼의 문은 내가 고난을 당했을 때, 내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서 하나님 앞에 탄식하며 부르짖을 때, 내 교만이 다 깨져버릴 때에 내 영혼의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 영혼의 문이 한번만이라도 열려본 사람은 '초막이나 빈 들이나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송하는 그 맛을 아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의 고난을 이길 수 있고 세상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을 때 우리는 영혼의 문이 열릴 수 있는 큰 축복의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이 있으면 "옳다 내가 내 영혼의 문을 열어야 될 때다. 내가 이 고난을 기회로 삼아 내 영혼의 문을 열리라" 이런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한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그야말로 세상이 주지 못할 큰 기쁨 속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체험을 다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43장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야곱아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우리가 넘실거리는 물을 지납니다. 우리가 무서운 불길을 만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분명히 믿고,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확실히 믿고 그 빛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단코 하나님의 지키심과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고난 속에 있습니까? 그 고난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고난 중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6절을 보면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실패한 것을 부끄러워할 것 없습니다. 실직한 것도 부끄러울 것 없습니다. 가난도 병든 것도 부끄러울 것 없습니다. 배반당한 것도 부끄러울 것 없습니다. 오히려 그럴 때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겠습니다. 고난 받은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부자만 돼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유명한 대학교에 합격해야만 영광 돌리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조건이라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다 일류대학 가야하고, 다 돈방석에 앉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애통하는 자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돈 많이 벌어 부자 되고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때도 영광 받으시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운 가운데 하나님께 찬송하고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것을 통해서 더 크게 영광 받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고난 속에서도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 한 집사님이 계셨는데 그 집사님은 동네 깡패였습니다. 동네 깡패였는데 큰집 조카가 예수 믿기 때문에 제사를 안 지낸다고 하니까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쳤다고 교회 전도사님을 도끼로 찍어 죽인다고 술을 잔뜩 먹고 장작 패는 도끼를 가지고 교회로 왔다가 그만 몸이 마비되어서 쓰러지는 놀라운 일을 만나가지고 이 사람이 그 일로 인하여 즉시 예수를 믿었습니다. 조카가 제사 안 지낸다고 전도사님을 도끼로 찍어 죽인다는 사람이 예수 믿었으니 핍박과 시험과 조롱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 잘 믿었습니다. 그런데 시련이 왔습니다. 딸을 낳아서 이름을 한나라고 지었는데 그 한나가 한 너 댓살 되었을 때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아무개 집사 아무 교회 다니다가 딸 죽어버렸다네. 교회 다니면 그렇게 한 번에 망할 수도 있어" 하면서 난리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마귀가 더 역사를 합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믿음을 굳게 해야 됩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위로는 못할망정 비웃고 조롱하고 핍박이 더 심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목사님이 교회를 들어가는데 누가 짐승처럼 울부짖다가 노래를 부르다가 하는데 꼭 실성한 사람 같았습니다. 어떤 노래냐면 "천국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 길 되나니 은혜로다" 짐승같이 울부짖으며 노래합니다. 그 사람은 딸을 잃은 한나의 아버지였습니다. 목사님은 그 장면을 목격하고 그와 같이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그 누가 깡패인 저를 그렇게 변화시킵니까? 어떤 거룩한 은혜가 어떤 신령한 은혜가 말입니다. 그 때 목사님이 느낀 것은 '아 예수는 저렇게 믿어야 되겠구나. 죽어도 저렇게 믿어야 되겠구나. 저것이 진짜 믿음이구나. 저것은 슬픈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저것이 훌륭하구나.' 그렇게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내가 받은 고난이 있지만 그 고난이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은혜와 도전과 새로움을 얼마든지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을 통해서도 고난 속에서 웃고 있는 사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고난을 당했지만 묵묵히 자기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얼마나 거룩합니까?
어떤 권사님이 큰 병이 들어서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에게 "목사님 병상에서 성경을 못 읽겠으니까 성경을 읽어줄 아르바이트 학생 하나 구해주세요. 그런데 한 시간 성경을 읽어주는데 만원씩 주겠는데 석 달 이상은 안 됩니다. 그리고 또 예수 잘 믿는 학생은 안 되고 예수 안 믿는 학생 믿어도 시원찮게 믿는 똑똑한 학생으로 아르바이트생 하나 구해주세요" 그래서 목사님이 그런 학생 하나 골라서 보내줬습니다. 안 믿는 학생인데 한 시간 성경을 읽어주면 만원씩! 그 권사님께서 "요한복음부터 읽으라고" 합니다. 그 학생이 요한복음을 또박또박 읽습니다. 하루 세 시간씩 읽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은 읽으면서 은혜로운 구절이 있으면 "학생 또 한 번 다시 읽어주세요. 또박또박 읽어주세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이렇게 또박또박 읽습니다. 은혜로운 구절은 또 한 번 읽어주세요 이렇게 하다가 하루 이틀 삼일 째 되던 날 학생이 갑자기 요한복음을 읽다가 엉엉 울면서 "너희는 마음에∼" 이어 읽지를 못하고 “근심하지 말라 ---” 하면서 엉엉엉 눈물을 흘리면서 성경을 읽더라는 것입니다.
권사님은 그런 그에게 반복해서 "한 번 더 읽어주세요" 그러다가 서로 대화를 하고 권사님의 간증을 통해 전혀 예수를 안 믿는 학생이 성경을 하루 세 시간씩 며칠간 읽다가 마음이 깨져가지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를 믿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해서 이 권사님은 한 학생만이 아니라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돌아가실 때까지 여러 명의 학생을 전도해서 예수 믿게 만들었습니다. 참 기막힌 전도입니다. 여러분,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길이 우리가 생각하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의 때에 부패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도전과 거룩함으로 비춰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고난은 분명 우리에게 힘들고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우리 인생에 크고 작은 고난이 있습니다. 작게는 자식이 내 마음대로 안 되고 부부끼리 사이가 안 맞아 트러블이 생기는 것 고난이고 문제이지요. 몸에 병들고 교통사고 난 것도 고난이지요. 직장에서 쫓겨나고 재산을 잃어버린 것도 고난이지요. 이런 많은 고난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크든 작든 어떤 고난이든지 우리가 자세를 분명히 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자세 문제입니다. 자세를 오늘 고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고치란 말입니까? 당연한 것으로 여기십시오. 교만하지 마십시오. 나만 평안하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아 인생에는 고난이 다 있는 것이다' 하는 자세를 먼저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즐거워하시고. 즐겁게 사십시오. 즐겁지 않으면 감정적인 즐거움이 없으면 의지적인 즐거움으로 기도하고 열심히 찬송해서 내 가슴에 즐거움의 샘이 터지도록 만드십시오.
그리고 고난의 때에 '옳다 성령 충만하게 받을 기회다. 신령한 내 영혼의 문이 열릴 기회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고난의 때에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릴까? 이렇게만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분명히 그 고난은 복으로 바꾸어집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엄청난 세상의 돈과 명예와 세상의 지식과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축복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갈 것입니다.
고난을 바른 자세로 맞이하십시오. 우리의 크고 작은 문제 앞에서 바른 자세를 취하십시오. 바른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결코 이 고난을 바르게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바른 자세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자세만 바로 취하면 우리에게 고난은 엄청난 축복이 되어서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고난을 은혜와 축복으로 바꿀 수 있는 세계로열린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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