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와 나타샤는
눈이 푹푹 샇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시골로 가자 출출이(뱁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막살이집)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백석(백기향)이 사랑한 김진향(김영한}에게 쓴 시..
자야는 김진향의 애칭
기생으로 대원각 주인..지금의 길상사..
경남 일부를 제외하고 한반도 전역에 엄청나게 많은 눈이 그의 표현대로 푹푹 내렸다.
1번 그의 고향 정주 (한반도 최고의 명당이다) 2번 그의 사랑 '자야'를 처음 만났던 함흥이고,
3번 여간 눈이 내리지 않는 내가 사는 구미이다. 4번 그의 첫 번째 연인 '란'의 고향 통영이다.
올해 백석탄생 100주년이다. 마치 큰 눈을 뿌리며 "나를 잊지말아 달라" 며 투정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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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 그의 시를 아니 읽을 수 없다.
그의 시 한줄의 값은 천억 (물론 그의 사랑 자야가 평가하는 값이지만 ) 보다 더 비싸다 .
오늘 詩중의 詩로 알려진 백석 불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의 매력에 빠져 봅니다.
잘 알려진 내용들은 간략하고, 후반부에 자야의 혼은 빼앗은 시 해설에 치중해 볼까 합니다.
백석은 일본에 유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하고, 국내로 돌아와 시 문학 활동즈음에 '란'이란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당시 이화여고에 다니는 신여성으로서 통영이 고향이다.
'통영' 이란 시를 발표하며 그녀를 만나려 통영까지 갔지만 만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난다.
그 사이 운명이랄까 백석의 친구 신현중과 결혼한다. 이때 백석은 "여우에게 홀린 것 같다"
고 하며 못내 아쉬워하고 실의에 빠지고 만다.
그 후 ~
백석은 함흥에 있는 영흥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여 근무하던 중 동료의 송별회를 하는데..
요리집 함흥관에 마침 관기로 있던 기생 김진향이 그 송별회에 오게 된다.
이때 그는 첫눈에 반하여 그의 손을 꼭 잡고는 이렇게 말했다.
" 당신은 내 마누라야 ~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기 전에 이별은 없다"고 홀딱 빠지고 만다.
그뒤 진향이가 지닌 이백의 시집의 '자야오가' 라는 시에서 딴 자야 라는 애칭을 지어준다. 그러나 ~
부모는 그들의 사랑을 갈라 놓기 위해 서둘러 결혼을 시킨다.
이를 알고 진향이는 그녀의 고향인 한성으로 오게 된다. 그리하자 백석도 학교를 그만두고
한성으로 온 진향에게 같이 만주로 떠나지고 종용하면서 지은 시가 바로 아래의 시다.
기생 진향이는 만주로 함께 떠나자는 백석의 간곡한 애원을 거절한다.
그리고 부터는 죽는 날(1999년) 까지, 백석의 사랑을 가슴에 안고 한많은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뒤에 대원각 과 길상사 부분에서 다시 살펴 봅니다.
위 시에 등장하는 '출출이' 와 '마가리'는 평안도 방언으로 뱁새와 오막살이 이다.
위 좌측은 참새로 하얀 목도리에 날개도 검고 흰 줄무늬가 있어서 깔끔하고 선명하지만,
우측의 뱁새는 목도리가 없고 붉은 머리다. 우수에 잠긴 듯한 검은 눈동자가 특징이다.
참새보다 조금 작고 13센티쯤 된다. 참새와 같이 어울려 날아다니고 모이도 같이 먹고 논다.
새소리는 작고 가늘지만 맑고 경쾌하다. 아마 자야의 목소리가 맑고 귀여웠을 것이라 짐작한다.
1968년 영화 ' 전쟁과 평화' 에서 나타샤로 열연한 오드리 햅번.
시에 등장하는 '나타샤' 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전쟁과평화' 에 등장하는 여인이다.
만주어, 러시아어에 능통했던 백석과, 시를 사랑했던 자야는 그 소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훗날에 백석은 50년 전쟁 이후 북에 살고 있어서 영화를 보았는지 모르지만, 남쪽에 살았던
자야는 아마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그 후 ~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백석은 만주의 행정(만주국)에 정착하면서 생활하다,
6.25 전쟁으로 백석은 북쪽에 자야는 남쪽에
서로 만나지 못하고 영영 생이별을 고하게 된다.
북한정부에서 조만식의 비서로 잠시 있었다는 소식 외에는 근황을 알수 없었다.
백석이 1962 년경 사망했다는 아련한 소식이 잊혀저갈 무렵, 위의 사진 한장이 공개된다.
1980 년대 중반, 백석이 70 대 중반무렵 북한에서 촬영한 가족사진이다.
그는 1995년까지 살다 죽은 것으로 최종 확인이 된다.
위 사진에서 백석 옆은 부인 이윤희(둘째부인)씨, 뒤는 둘째아들 (중축 씨) 와 막내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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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경(추정) 에 백석23세때 백석이 최정희에게 보낸 연서의 원본이 공개됐다.
아마도 백석은 '란' 과 '최정희' 두 여인에게 구애한 흔적이 확연하게 남아있다.
그렇다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염두에 두고 쓰여진 시이고 5 명 정도의 여성들에게
전해졌을 거라고 생각되나, 원본은 '자야'라는 여인이 가지고 있던 마농지종이 일것으로 본다.
그의 시들을 읽노라면 어린시절로 돌아간 착각을 일으킬 만큼 순수한 동질감에 감동이 절로다.
과연 현대시 100년사에 '최고의 시집' 으로 뽑히는데 이의를 제기할 자 없다.
그의 시가 발표되자 그동안 점점 알려지던 김소월을 한수 아래 시인으로 추락시킬 만큼 강력했다. 그러하니, 보통 시인들이야 기가 죽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100년전 일상을 숨소리조차 느낄만큼 자세하고 셈세하게 표현하는 시인중의 시인이었다.
아마도 남북통일이 되면 그의 일대기가 가장 먼저 극화로 다뤄 질것이라 생각한다.
백석 백기행과 자야 김영한(진향) 은 그렇게 꽃다운 나이에 생이별 해서,
40 여년 세월을 흘려보내고 난후 70대 중반에 사진으로나마 팬들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백석은 북한의 통제된 사회에서 살다가 (1995 ) 죽었기 때문에 아직 그가 남긴 말은 알수 없다.
그러나 자야는 대원각 이라는 큰 요정을 경영하다가 죽기 일년전에 법정스님에게 시주한다.
당시 1,000 억대 재산을 시주하면서 그가 한 말은 "그게 백석의 시 한줄 만도 못하다"고 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19(白石)의 작품이다. | |||||||
해금이후 그의 작품이 소개되면서 그는 한국사 최고의 시인중의 한명으로 평가 받는다. | |||||||
이 시에서도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 사랑'이다. | |||||||
출처: 다음 까페 '음악소리나는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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