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책

[스크랩] 그 빈 자리 - 유하

열국의 어미 2018. 1. 28. 20:57




그 빈 자리 - 유하

 

 

미류나무 앙상한 가지 끝

방울새 한 마리도 앉았다 날아갑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바로 그 자리

방울새 한 마리 앉았다 날아갑니다

문득 방울새 한마리 앉았던 빈 자리가

우주의 전부를 밝힐 듯

눈부시게 환합니다

 

실은,지극한 떨림으로 누군가를 기다려온

미류나무 가지의 마음과

단 한 번 내려앉을 그 지극함의 자리를 찾아

전 생애의 숲을 날아온 방울새의 마음이

한데 포개져

저물지 않는 한낮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도 미세한 떨림을 가진

미류나무 가지 하나 있어

어느 흐린 날, 그대 홀연히 앉았다 날아갔습니다

그대 앉았던 빈 자리

이제 기다림도 슬픔도 없습니다

다만 명상처럼 환하고 환할 뿐입니다

먼 훗날 내 몸 사라진 뒤에도

그 빈자리, 그대 앉았던 환한 기억으로

저 홀로 세상의 한낮을 이루겠지요

 

 

(Soledad - Amy Sky)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방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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