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책

[스크랩] 내가 만일 - 박 목월

열국의 어미 2018. 2. 19. 07:06

      내가 만일 - 박 목월 내가 만일 너라면 따분하게시리 책만 읽고 있을 줄 알아. 도마뱀을 따라 꽃밭으로 가 보고, 잠자리처럼 연못에서 까불대고, 물 위에 뱅글뱅글 글씨를 쓰고, 그렇지, 진짜 시(詩)를 쓰지. 아침나절에는 이슬처럼 눈을 뜨고, 풀밭에서 낮잠을 자고, 나무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매미가 되어 숲으로 가지. 내가 만일 너라면 따분하게시리 책상 앞에 붙어 있을 줄 알아. 책에 씌인 것은 벽돌 같은 것. 차돌 같은 것. 그렇지, 살아서 반짝반짝 눈이 빛나는 그런 것이라곤 한 가지도 없지. 내가 만일 너라면 조잘대는 냇물과 얘기를 하고, 풀잎배를 타고, 항구로 나가고, 무지개가 뿌리 박은 골짜기로 찾아가 보련만. 이제 나는 도리가 없다. 너무 자라버린 사람이기에. 어른은 어른은 참 따분하다. 그렇지, 내가 만일 어린 소년이라면 나는 따분하게시리 책만 읽고 있을 줄 알아. 2018/02/07/블루로즈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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