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게 삽시다.
선교하며 삽시다.
1부 삼수생의 인생살이
청년들이 호출해 놓고 둘러앉아서 나를 공격했다. 교회에 분란이 생기면 대화와 이해하려는 태도보다는 바로 사탄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의 마음에는 7가지 자증한 것이 있다.(잠 26:25)는 말씀대로 맹수보다 무서운 생각이 매복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그 교회에 부임하기 전 나의 일생에 가장 긴 기간의 기도시간을 가지도록 하신 하나님은 그 시험을 대비케 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사람들과만 계산했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한 가지라면서 저쪽은 99가지가 된다고 생각했다. 수평적으로 계산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수직적으로 계산하셨다. 나와 따지자는 계산이시다. 목 놓아 회계했다. 주님이 울리시는 울음은 상쾌함 그 자체요 축복이요 위로였다. 수직적 관계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하게 된 후 수평적 관계로 저절로 해결되었다. 주님 의견을 무시하고 목이 곧은 일을 더 많이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으로 고비를 넘겼다.
삼수생 인생
교회 장벽을 나만큼 허문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해외 선교도 교파 따지지 않고 필요하다면 누구나 지원했고, 농어촌선교도 미자립교회 협력관계 맺는 일도 전혀 교파 따지지 않았다. 삼수생이다 보니 지능이 형평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장애인 예배 설교를 준비하면서 정신지체가 IQ 70 이하라는 기록을 보고 깜짝 놀랬다. 재가 70에서 조금 넘지 않기 때문이다. “오! 주여, 하마터면 정신박약자가 될 뻔했는데 아슬아슬하게 넘기게 하셨습니다.” 그렇다. 나는 미숙아다.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 달도 못 채우고 난 팔삭둥이다. 지나놓고 보니 어리석은 일만 골라했다.
군대에서 자동차 휘발유 공급을 맡고 있을 때다. 휘발유를 공급받으러 차량을 가지고 어느 군인이 왔었다. 드럼통 속에 휘발유가 얼마나 들었는가 보기 위해 마침 캄캄한 밤이기에 성냥불을 그어 드럼통을 비쳐 보았다. 불이 빨리 꺼져서 다행이었다. 불이 부ㅌ엇으면 어떠했을지 생각해 보라. 지금도 아슬아슬하다. 휘발유와 성냥불!
다 좋게만 해주시는 주님, 삼수 덕분으로 일정 때 신사참배를 모면케 해주신 하나님의 배려, 2학년부터 신사참배를 시켰는데 1학년 때 해방되어 신사참배는 구경만 하도록 했다. 이런 멍청이가 선교를 이끌어가다니 내가 생각해도 한참 웃기는 일이다. 바보가 하는 선교를 사람들이 그런데도 박수하다니... 삼수생의 수모까지 용납하시는 하나님이 좋기만 하다.
울보 예수
욥 때문에, 바울 때문에, 프란시스 때문에 웃으시던 예수님께서 요사이는 울보 예수님이 되신 것 같다. 나의 처참한 모습을 보시고, 한국 교회의 패역한 발걸음을 보시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포악스런 상태를 차마 볼 수 없어 애통해 하시는 우리 주님의 얼굴에 눈물이 줄줄 흔른다.
세계 최대 빈민국 71개 국가가 거의 아프리카에 있다. 기독교적 배경을 둔 서구인들의 동양의 신비 사상에 깊숙이 빠져 들어가 범종교적인 대세를 이뤄가고 있다. 예수의 유일성이 옹고집으로 비춰지고 있다.
짐승처럼 잡아다가 무자비하게 팔아먹는 노예장사들이 주일에는 모여서 아마 제일 좋은 옷을 꺼내 입고 경건하게 예배 드렸으리라.
세계 곳곳에 저지른 용서 받을 수 없는 치욕들이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이 행해졌는가! 속죄하는 뜻에서도 선교의 사랑을 마음껏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둥그런 지구를 가슴에 껴안고 한없이 엉엉 우시는 예수님의 환상이 멈추어지지를 않는다.
나도 모르게 예배당 지어?
시민이 보는 교회당 건축은 상당한 부분에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결국 종교 자체 안에서 뛰고 놀고 제 일만 한다는 미움이 쌓여진 것 같다. 반면 교인들은 넓게 생각을 못하고 교회 속에 파묻혀 교회 밖의 요구를 모른다. 사단은 개인을 공격한다. 개인이 떼지으며 반항하는 거센 세력으로 쓴 뿌리가 되고 포도원을 허는 여우가 된다. 하나님은 선교의 총수인지라 그 낡은 교육관에 불을 지르셨다. 체육대화 한답시고 본당 저편 마당에서 운동경기 하는 도중 연기 기둥이 치솟아 삽시간에 다 태워 버렸고 철거되었다. 화재의 원인을 전기 누전으로 결론지었지만 자세한 원인은 모른다. 그 자리에 지금 있는 베델관이 보기 좋게 서 있다. 하나님은 앞당기셨다. 불평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다. 앞으로 건물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지만 선교에 유익되는 한에서만 짓기로 하리라. 선교와 구제는 불신자들도 역시 박수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
선교지에 들르면 “이곳에 선교사를 더 많이 보내주셔야 합니다.”하는 선교압박, 문명선진국가가 저지른 우민 정책으로 인한 식민지 노예 생활을 지금까지도 이어가는 후진국들의 몰골을 볼 때 느끼는 연민의 압박, 내게는 모두 즐거운 압박이다. 바울선교사가 300명 이상으로 불어나는 수적 증가도 내가 책임져야 할 압박으로 밀려온다. 월말마다 지출해야 되는 과중한 선교비도 달마다 누르는 압박이다. 이 민족 교회가 갈수록 이방인의 비평의 대상이 되어 가는 흉한 모습도 가슴 찢어지는 눌림이며 설움이다. 사랑의 압박, 선교의 압박이 모두가 내게는 즐거운 일이요 건강의 비법이다. 거룩한 고민이 있어야 나는 성장하기 때문이다. 동족의 구원을 가슴의 압박과 숙제로 삼았던 바울의 심장을 똑같이 나눠 가지고 싶다.
고정관련 껍질 버리기
40년 전만해도 선교사가 우리를 돕는 피선교지였다. GNP도 100불 정도였고, 7%의 크리스천만이 있었고, 굶는 사람이 많았다. 이제는 딴 세상에 산다. 경제는 선진국 수준이다. 교육도 선진국 수준이다. 교회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한국의 무역은 규모 면에서 12대국이다. 받아먹고 사는 시대가 아니다. 모든 면에서 세계와 경쟁하면서 살아야 하는 강국이다. 복음의 빚을 갚는다는 차원에서 주는 교회로 빨리 바꾸어야만 교회가 본 모습을 찾는 것이다. 세계 모든 곳이 우리와 격차가 엄청나게도 크고 우리가 앞서있다는 현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을 도와야 하는 책무가 저절로 실려지는 법이다.
선교여행지에 동행하시는 하나님
집회일정에 맞춰 잘 마치고 왔다. 주의 솜씨라고 믿을 뿐이다.
천사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라고 믿는다. 내 선교 여행엔 하나님이 꼼꼼히도 챙겨주시는 것 같다. “아프리카에서는 보통 3시간에서 4시간 연발이 보통입니다.”하면서 전송하는 선교사님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정확한 시간에 출발하고 도착하고 해서, 꽉 찬 스케줄 속에서 숨 가쁘게 움직이는 나의 여행 계획에 언제나 차질을 허락지 않으셨다. 외국여행은 반드시 선교에 관한 것이 아니면 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오늘까지 지켜져서 선교에 직 ․ 간접적인 일만을 위해 탑승해 왔다. 선교를 빙자한 여행 중심의 나들이는 하나님의 재산을 축내는 일이라는 것을 깊이 알았으면 한다. 만물의 찌꺼기 같은 볼품없는 나까지도 쓰시는 하나님이 신기하려니와 세계 곳곳에서 그래도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손짓은 세계의 영혼이 목말라 허덕이고 있다는 증거다.
'예화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편하게 삽시다 -이동휘 (0) | 2010.05.13 |
---|---|
이동휘 목사님의 불편하게 삽시다 2 (0) | 2010.05.13 |
* 불구자가 되었기에 * (0) | 2010.05.13 |
복숭아에게 들려준 찬송 (0) | 2010.05.13 |
무릎인의 10가지 신조 외 (0) | 2010.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