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모음

긍정과 부정의 차이

열국의 어미 2010. 6. 24. 01:34

 

 

 

 

 

묵상하는 복 - 출처: 이성희 목사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이 신비롭지 않은 것이 없지만 낙타의 창조는 더욱 신비롭습니다.

 낙타를 사막에 살기에 적합하게 지으신 창조의 신비는 하나님이 계심을 알게 합니다.

 낙타의 머리는 사막의 모래바람을 견딜 수 있도록 눈썹과 눈두덩이 길고 두껍게 되어 있습니다.

 허파를 보호하기 위하여 코에 예민한 근육이 있어 모래가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두꺼운 가죽과 털이 있어 낮의 태양과 밤의 추위를 견디게 합니다.

넓은 발굽은 뜨거운 모래 위를 걸을 수 있도록 합니다. 낙타 등의 육봉은 물주머니가 아니라 지방을 저장하는 곳입니다.

낙타 한 마리가 평균 45킬로그램의 지방을 육봉에 가지고 있어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낙타의 소변은 요소의 농도를 높여 수분의 배출을 최대한 줄입니다.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물을 되새김질합니다. 낙타 곁에 가보면 끄르륵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막의 밤낮의 일교차를 쉽게 견디게 하기 위하여 체온이 가변적으로 낮에는 41도로 올라가고

 밤에는 34도로 내려옵니다. 물이 부족하면 주위의 조직으로부터 수분을 공급받아

 체중의 25퍼센트까지 수분을 혈액에 빼앗기고도 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낙타는 종일 무엇인가 입안에서 어물어물하며 다닙니다.

 이것이 낙타가 뜨거운 사막에서 견딜 수 있는 비결일 것입니다.

되새김질하는 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일 여물을 입에 넣고 씹으면서 다닙니다.

 이것이 열심히 일하는 힘의 원천일 것입니다. 이렇게 되새김질하는 짐승들의

일반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 되새김질하는 짐승들은 순합니다. 그래서 주인의 말을 잘 듣습니다.

그런 까닭에 순한 되새김질하는 짐승들이 가축이 됩니다.

둘째, 되새김질하는 짐승들은 일을 열심히 하고 튼튼합니다.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씹고 다니기 때문에 힘이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셋째는 주인의 사랑을 받아 주인과 함께 먹고 주인보다 먼저 물을 마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매일 묵상하는 삶도 그러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성경을 읽습니다.

아침에 읽은 말씀이 종일 내 말씀이 되게 하기 위하여 열심히 씹어야 합니다.

말씀을 종일 되새김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묵상입니다. 성경 말씀은 한 번 읽음으로 만족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계속 씹고 묵상하여야 합니다.

 

아직도 불같은 내 성격이 죽지 않았으면 말씀을 묵상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순해집니다. 아직도 사회 속 내 삶의 현장에서 부지런하지 못하고 게으르다면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지런해집니다. 아직도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을 받습니다. 사람은 밥값을 해야 하는데 묵상하는 사람은 자연히 밥값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는 "복 있는 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영성적 그리스도인은 묵상하는 즐거움을 맛봅니다.

그리고 복 있는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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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있는 기도법


 -출처/기도 / 리차드 포스터 / 도서출판 두란도


마음의 참 본향인 하나님께 나아올 때까지 우리는 추방자요 타국인이다.

교만과 두려움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저항감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역사로 극복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갖기 위해 위를 향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 사역할 힘을 얻게 된다.

 

레오 톨스토이가 어떤 섬에 살았던 세 명의 은둔자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사랑에 대한 그들의 기도는 그들의 단순함만큼이나 단순했다.

 "우리도 셋이요, 주님도 셋이오니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그들이 이런 식으로 기도했을 때 종종 기적이 일어났다.

은둔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당시의 주교는 그들에게 바르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줄 필요가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주교는 그들이 있는 작은 섬으로 갔다. 그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후 주교는

 그 단순한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쳐 주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 본토를 향해 배를 타고 떠났다.

갑자기 그는 배 뒤편에서 큰 공처럼 생긴 불빛이 바다를 가로질러 미끄러지듯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세 명의 은둔자가 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주교에게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주교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을

그만 잊어버렸습니다. 다시 한번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주교는 손을 내저으며 부드럽게 대답했다.

"내가 당신들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다 잊어버리시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그냥 계속 기도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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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일과 내 일 -- 출처/<믿음의 싸움>, 존 화이트, 생명의 말씀사

 

"내버려 두어 하나님이 하시게 하라"라는 말을 살펴보자.

이것은 19세기 후반부터 내려온, 그 기원이 분명하지 않은 표어였다.

한 대학생이 "하나님이 하시게 하라"(LET GOD)이라는 글자를 여섯 개의 종이 카드에 써서

 방 벽에 붙여 두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D"자가 떨어져 버렸다. 이 순간 그 학생은 벽에 붙어 있던 "LET GO"라는 문장을 보고,

 자신의 삶을 그대로 내버려둠으로써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다스리도록 한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성화의 비결을 깨닫게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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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파월의 생활신조 13가지

 

첫 번째, 좋지 않은 일이 생기더라도 생각만큼 나쁘지 않다.

아침이면 더 좋아질 것이다.

두 번째, 화나는 일이 있으면 우선 화를 내라.

그런 다음 이겨내라.

세 번째, 자기 주장에 너무 가까이 자신을 밀착시켜

주장이 무너질 때 자신도 함께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네 번째, 하면 된다!

다섯 번째, 선택은 신중히 하라.

일단 선택한 것은 얻을 수 있다.

여섯 번째, 좋은 결정을 내리는 데

불리한 사실들이 방해를 하지 않도록 해라.

일곱 번째, 다른 사람의 선택을 대신해 줄 수 없듯이

다른 사람이 당신 대신 선택하게 해서는 안된다.

여덟 번째, 사소한 일을 점검하라.

아홉 번째, 공적을 나누어라.

열 번째, 침착하라, 친절하라.

열한 번째, 비전을 가져라. 이 비전을 스스로에게 요구하라.

열두 번째, 두려움을 갖거나 반대자들과 너무 상의하지 말라.

열세 번째, 지속적인 낙천주의로 매사에 임하라.

낙천주의가 당신의 힘을 증가시킨다.

-『콜린 파월의 자서전』, 요셉 E. 퍼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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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복종

 

프랜시스는 참 복종하는 자를 시체에 비유한다.

"시체는 반항이 없다. 옮기는 이가 맘 내키는 대로 아무 데나 갔다 놓아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는다. 한 장소에 오래 계속 두어도 불평이 없고

또한 장소를 옮겨 다른 데로 가져간다 해도 저항하지 않는다.

강단에 올려놓으면 위를 향하지 않고 아래를 향할 것이다.

 그것에 자색 옷을 입힌 대도 한층 더 창백해진 얼굴일 뿐이다.

보시니좋았더라 2001.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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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대장

 

한 아이가 글방에서 공부 시간에 질문을 많이 하였다. 아이는 천자문에 나오는 첫 글자 '하늘 천'자를 배웠다.

그러자, 그 아이는 하늘에 관한

온갖 것을 다 물었다.

가령, 하늘에 있는 해는 얼마나 크냐? 해는 땅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

햇빛은 왜 눈이 부시고 뜨거우냐? 해는 왜 뜨고 지느냐?

달과 해는 어느 쪽이 크냐? 달은 왜 밤에만 보이느냐? 초승달과 반달과 보름달은 왜 생기느냐는 등

 하늘에 관한 온갖 것들을 일일이 다 물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아는 대로 다 대답을 해주다보니 이 '하늘 천'자 한 글자를 다 배우고 났을 때,

자그마치 십 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둘째 글자인 '따(땅) 지'자를 배우게 되었다. 그러자, 이 아이는 이번에도 많은 질문을 했다.

땅은 왜 생겼느냐? 땅의 넓이는 얼마나 되느냐? 땅 속에는 무엇이 있느냐? 바다는 왜 땅 위에 있느냐?

바다의 넓이는? 바다의 깊이는?

바다 속에 있는 것은? 이처럼 땅 위에 있는 온갖 것들과 바다 속에 있는 온갖 것들을 일일이 다 물었다.

선생님이 이 질문에 다 대답해 주다보니, 또 십 년이 걸렸다.

그러니까 이 아이는 '하늘 천'자와 '따지'자 두 글자를 배우는 데 자그마치 이십 년이나 걸린 것이다.

그러나, 이 아이는 더 이상 글을

배울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하늘에 관해서 다 알고, 땅 위, 물 속의 이치까지 다 알았으니 그 이상 더 배워야 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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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뮬러의 기도 원칙

 

1. 축복에 대한 모든 주장의 근본 되시는 예수님의 공로에 대한 확신.

2. 알려진 모든 죄로부터의 분리(마음에 죄를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않으신다).

3.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실한 믿음.

4. 우리의 정욕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함.

5. 하나님을 신뢰하고 끈기 있게 기다림.

6. 세부적인 일까지도 일일이 기도함(펜을 고치는 일도 기도하고, 열쇠 잃어버린 것도 기도하며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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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웃음

 

내 안에 '이해와 용서'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사람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일 때마다 가끔 들여다보는 시집이 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욱 더 마음 절이는 것은 작은 웃음이다」

나의 약한 부분을 자주 건드리거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볼 때 미소를 잃어버릴 때가 참으로 많다. 잦은 부딪침이 일어날 때면

 '왜 하나님은 하필 저 사람과 함께 일을 하도록 하셨을까?'라는 푸념과 불평불만이 쌓여간다. "이렇게 자존심 구겨 가면서 해야 하나,

 아휴!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 거야."

평소에는 고요히 쉬고 있던 죄의 공장이 가슴에 상처를 입히는 가시 돋친 말이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을 들을 때면 힘차게 발전기를

가동시킨다. 어느새 상대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겨놓고 정죄의 화살을 수없이 꽂는다. 그리고는 그의 결점을 하나둘 들추어내며 나의

 정당함을 변호하기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웃의 눈 속에 있는 티는 크게 보이고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이지 않기에(마 7:3-4).

그러나 선하신 주님께서 사람들과의 부딪침 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고 석공이 돌을 다듬듯 모난 부분을 깨뜨려 다듬어 가심에 감사하다. 또한 그 속에서 겸손과 인내를 배우게 하심에 감사하다.

 

며칠 전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아 함께 일하는 사람과 마찰이 있었다. 겉으로 그다지 표현하는 성격이 아니기에 외형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을 향한 미소는 잃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나의 모습은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 딱딱한 말씨로 변해가고 있었다. 애써 숨기려고 했지만 조금씩 가까운 사람에게 그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일터에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듯했다.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그렇지만 마음의 부대낌은 저녁까지 계속 남아 있어 괴롭히고 있었다.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책꽂이 정리를 하는데 책 속에 끼여 있는 종이쪽지가 살며시 빠져 나왔다. '사랑하면 용서가 되고 용서를 하면 평화가 온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언젠가 국내 성지순례를 할 때 어느 분께 들은 말씀을 적어 놓은 글이었다. 그 글귀가 가슴을 시리게 했다. 먼저 용서의 손을 내밀지 못하고

 먼저 이해하지 못한 나의 옹졸함으로 인해 사무실의 평화를 깨뜨렸구나!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얼마 후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주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깨를 짓누르는 십자가, 수없이 던져지는 모욕과 멸시, 주먹만한 돌이 날아오고, "퇘! 퇘!" 하면서 침을 뱉고 있다.

머리에 쓴 가시면류관 밑으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고통으로 인해 입술은 점점 더 검붉게 변해 간다.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애절하게 부르짖는 간구의 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주님,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히려 저의 가시 돋친 말과 행동으로 이웃에게 더 많은 상처를 안겨주었습니다. 깨닫지 못한 이 무지한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당신의 사랑을 부어주소서. 그래서 강퍅해진 저의 심령을 녹이소서. 저의 교만함을 깨뜨려 주소서." 방안에는 어깨를 들썩이는

작은 아이의 흐느낌만 남아 있었다….

가룟 유다, 은 30냥에 스승을 팔아 버린 배반자. 주님은 되어질 일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가시와 같은 그를 제자로 받으셨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가 돌이키기를 기다리시며 끝까지 사랑으로 대하셨으리라.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사랑하라고 온몸으로 보여주셨는데, 나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해주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뜻에 나는 얼마나 성실히 반응했던가.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래, 이제 가시 같은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는 것은 나의 몫이야. 예수님의 생명을 찾아 나선 순례자, 주님과 하나 되기를 꿈꾸는 자.

그러기에 사람들로부터 날아오는 수많은 가시가 가슴에 박히더라도 온전히 기뻐해야지. 이제는 사람들의 칭찬과 위로를 찾기보다는 빛으로

 조명하는 책망(엡 5:13)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아직은 나를 무시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제는 주님의 십자가에서 공급되는 사랑을

힘입어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아닌 작은 웃음으로 대하고 싶다.

"주님, 가시 같은 이웃에게도 언제나 작은 웃음을 잃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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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감독과 황제-김귀춘

 

암브로우스(340-397)는 34세 때 밀라노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 그는 감독직에 있으면서 재산을 모두 팔아 교회 가난한 이들에게 주었다.

그는 권좌에서 내려와 가난한 자들과 하나가 되어 평생을 금욕하며 살았다. 그의 영향력은 황제의 칙서까지도 바꾸어 놓을 정도였다.

경건한 신자인 데오도시우스 황제는 성질이 급한 군인이기도 하였다. 390년 데살로니가의 시민들이 난동을 일으켜 치안군의 장교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데오도시우스는 복수를 명하였고 결과적으로 집단적인 학살이 벌어졌다. 황제는 명령을 취소하였으나 그 명령이 도달하기 전에 일은 끝났다. 시민들은 경기장으로 몰아 넣어졌고 군인들은 출입문을 잠갔다. 그리하여 7천 명의 사람들이 살해되었다.

 

이 소식이 들려지자 암브로우스는 황제에게 회개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수도인 밀라노에 있던 황제는 이 말을 듣지 않았다.

주일 아침 황제는 성전에 예배하러 나갔다. 암브로우스는 감독의 복장으로 교회 현관에서 그를 만났다. 큰 소리로 황제를 꾸짖으며

돌아가 회개하라고 외쳤다. 몇 달간 데오도시우스는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돌이켜 말하기를 "하나님의 교회가 노예와

거지들에게는 열려져 있지만 내게는 닫혀졌다. 그리고 하늘의 문도 닫혀졌다"고 하였다. 그는 모인 회중 앞에서 땅에 엎드려 하나님과

사람에게 용서를 탄원하였고 회중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위대한 감독과 위대한 황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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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번과 65번, 현석범

 

오래 전 일입니다. 내 나이 열 넷, 순진했던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중학교에 입학하여 들뜬 마음으로 학교에

등교했습니다. 키순서로 번호를 정했는데, 난 약간 큰 키라 약 70명 중 64번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번호 순서로 각자의 책상을 지정해주셨습니다. 번호가 뒷번호였던 난 맨 뒷자리나 앉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짝은 당연히 65번이었습니다. 그런데 새 반, 새 친구들은 남자아이들 뿐이라

 서로 누가 주먹이 세냐는 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자신을 드러내려고 주먹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난 여느 아이들처럼 순진하고 유치했던 것 같습니다. 남자아이들은 가끔씩 치고 받고 했습니다. 저 역시 덩치도 크고 키도 컸기에 반에서

 힘 좀 쓰는 녀석들의 무리에 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도 별로 세 보이지도 않는 녀석과 시비가 붙었는데 때려주기는커녕

 무지 맞았습니다. 졸지에 난 반에서 가장 약한 아이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녀석, 저 녀석 모두 날 무시했고

난 어쩔 수 없이 참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내 짝 65번과 시비가 붙었습니다. 내 짝은 싸움을 잘 안 했지만 나름대로 반에서

 힘 깨나 알아주는 녀석이었습니다. 약간 겁이 났지만 용기를 내 냅다 주먹을 몇 번 날렸습니다. 65번은 맞더니 당황해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조금 있으면 그보다 약한 난 무수히 그 녀석에게 맞을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움인지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그 녀석은 주먹 한 번 못 날리고 억울하게 몇 대 맞기만 한 거죠. 그 녀석은 억울하고 분해서인지 수업 시간 동안 '너 죽었다'는 듯이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더군요. 솔직히 전 몹시 떨었습니다. 수업 종이 울리면 보나마나 맞을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어떻게 수업 40여분이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종이 울리자 65번은 천천히 일어섰습니다. 난 속으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손을 내밀더군요.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우리 사이 좋게 지내자." 의외였습니다. 그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전 맞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십여 년이나 지난 지금, 전 가끔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 나에게 피해를 주었고, 나에게 상처를 주었으니까요.

그런데 내 마음에 분이 가득하고 억울함을 느낄 때면 가끔 65번이 생각납니다. 65번이 무슨 이유로 그렇게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상처 준 사람들에게 손 내밀지 못하는 나로서는 지금도 나에게 손을 내밀던 짝의 그 용기가 부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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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순수 - 오인숙 '어린아이와 같이 아니하면'

어린아이들은 작고 보잘것없는 미물조차 사랑한다. 낮고 비천한 것을 대할수록 더욱 더 큰 동정심을 갖는다. 어른은 쓸모 없는 것을 경멸하고

 비천한 것을 멸시한다. 낮은 자, 약한 자 앞일수록 높은 자의 우월감을 갖고, 더욱 강한 자 앞에서는 약한 자의 비열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성품은 그렇지 않다. 다리 다친 병아리 한 마리로 인해 밤잠을 못 이루고 병든 친구에게 한 송이 꽃을 사주기 위해

 애지중지하던 돼지저금통도 아낌없이 깨뜨린다. 비가 쏟아지는 밤에 앞마당 나무 위의 까치가 비를 맞을까봐 우산을 들고 나갔다가

독감에 걸려 앓아 눕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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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어렸을 때 난 아빠 없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던 딸이었다. 아빠가 학교에 출근하시려고 양복 입으실 때부터 대문에 지키고 앉아

서럽게 울며 아빠를 못 가게 했던, 아빠 따라 간다고 버스 정류장까지 징징 울며 갔던 나였다. 아빠는 내 낮은 코를 걱정하시면서

 빨래집게로 집어주시기도 했다.

그러던 우리 사이가 나빠진 것은 사춘기 무렵. 수학 교사인 아빠와 수학을 제일 싫어하는 난 당연히 대립할 수밖에. 아빠는 내가 창피했는지

"누가 네 아빠 뭐 하시냐고 물으면 시장에서 야채 판다고 해"라고 하셨다. 수학 점수를 불러줄 때마다 난 창피를 당했고 애들은 네 아빠

수학 선생님 맞냐며 놀려댔다. 아빠는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면 피곤하다며 피하셨고 아예 대답조차 안 하셔서 상처를 주셨다.

그 후로 난 아빠의 질문에 답하는 것 외에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살다가 머리 커진 대학생이 되었고 학교가 멀어 할머니 계신

 이태원으로 옮긴지 2년.

어렸을 땐 아빠가 최고인줄 알았는데 철들면서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아빠는 키가 작으시고, 사업 실패로 집을 몇 채 날리시고, 늦게 교사가

되어 호봉도 낮았다. 내가 가장 싫어했던 것은 아빠의 술주정이었다. 아빠는 내성적이라 평소에는 거의 표현이 없다가 술만 드시면 꾹꾹

참았던 걸 다 터뜨리셨다. 자는 식구들을 다 깨워서 새벽 2시가 넘도록 한 소리를 또 하고, 또 하고. 아침이 되면 자신이 가족에게 어떻게

했는지 기억 못하셨다. 표현력이 부족한 아빠는 엄마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생긴 문제의 중재자로 꼭 나를 내세우셨다. 아빠의 말을 전하러 갔다가 아빠 대신 싫은 소리를 듣거나 눈물 쏙 빠지게 혼나는 억울함을 당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아빠가 미웠다. 그래서 점점 더 아빠를

 피하게 되었고, 거실에서 재미있게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아빠가 오시면 내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대화의 단절 이후 내게 아빠의 위치는

 용돈 주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렸다. 어쩌다 입을 열면 용돈 떨어졌다는 말 밖에 .

아빠는 상담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대학원 공부를 하고 계시는데 리포트 편집을 내게 부탁하셨다. 난 속으 웃었다. 자기 자식 상담도

못 하면서 남의 자식 상담을 하신다니. 요즘 내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아실까? 학교에 도착해 아빠가 계시는 상담실로 들어갔다. 아빠는

내가 온 게 그렇게 반갑고 기쁘셨는지 밝게 웃으셨다. 그리고 간혹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에게 딸 자랑을 하셨다. 나는 컴퓨터 앞에서

 하루종일 많은 리포트를 세심히 읽으며 편집에 열중했다. 아빠의 리포트 중 자신의 진로 결정 과정에 대해 쓴 것을 보고 난 아빠에 대해

 객관적인 눈으로 보게 되었다. 성공하기 위해 애썼지만 실패했고, 그 속에도 좌절하지 않고 가족을 위해 다시 일어난 아빠. 나처럼 수학을

 못한 아빠가 사업실패 후 대학원에 들어가 취직이 잘된다고 억지로 선택한 수학과, 그리고 수학 선생님. 당신이 겪으신 그런 시행착오를

학생들은 겪지 않게 도와주고 싶다는 그 맺음말에 내 시선이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남들보다 10년 늦은 교직 생활. 동년배들은 교장, 교감인데 평교사이신 아빠. 수업 종이 끝나고 들어오시는 아빠의 소매에 묻어있는 하얀 분필가루. 아빠보다 덩치 크고 반항적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힘들까? 그 이마와 눈가의 주름살이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날 우리는 늦게까지 이야기를 했다. 다 큰 딸과 늙은 아버지 사이의

깊은 골짜기가 평지로 변하던 날이었다. 아빠가 행복해 하시며 내 어깨를 토닥이셨다. 즉석에서 나는 아빠에게 전자우편 주소를 만들어 드렸다. 아빠의 함자와 급할 때 거는 전화 번호 119를 더해 기억하기 쉽게 만든 ID 'yongjin119'.

요즘 내 전자우편함에는 아빠가 와 계신다. 이젠 부쩍 늙으신 아버지, 자식에게 이해받길 원하시는 아버지를 예전처럼 마음에서

밀어내지 말아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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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남을 먼저 - 이은경

 

작년 여름 가족과 함께 호주 여행을 다녀온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감동을 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그러한 정신은 눈에 잘 보이는 곳에서도 보이지 않은 곳에서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는 공원이 아주 많은데 공원마다 바비큐를 해먹을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 갈 때마다 전에 온 사람이 음식을 먹었던 흔적이 남아있거나 지저분한 것을 본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 자기가 먹은 자리는 깨끗이 치우고 남이 치우지 않은 것까지도 다음 사람을 위해서 치우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다. 시드니와 캔버라를 잇는 긴 고속도로 중간에 있는 누구하나 손볼 사람이 없을 것 같은 화장실도 너무나 깨끗했고 화장지도 10개나 걸려 있었다. 얼핏 생각하면 참 사소한 일인 듯싶으나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지만)은 혼자 쓰는 것은 잘 간수하고 깨끗하게 관리하지만 함께 쓰는 것은 아끼지 않고 마구 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공중 화장실' , '공중 전화', '공중 도덕' 이런 것을 생각하면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호주인들은 기독교적 정신으로 산다고 한다. 비록 교회에 출석하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역사적 배경이 기독교적이기 때문에 그러한 삶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이라 자부하는 우리의 모습은? 나는 자신 있다고 당당히 나설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제 이런 생활 속의 작은 실천에서부터 기독교인들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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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다이아몬드

 

스페인의 아라곤 왕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왕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보석상을 찾아갔다. 그가 주인과 값을 흥정하고 있는 동안, 신하들은 보석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이 가게를 나섰을 때, 보석상이 당황한 얼굴로 뒤쫓아 나왔다. 아주 비싼 다이아몬드 하나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왕은 신하들 모두에게 보석가게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왕은 보석상에게 소금을 가득 채운 항아리를 가져오도록 했다. 그러고는 신하들에게 각자 소금 항아리에 주먹을 넣었다가 꺼내도록 했다. 그렇게 한 후에 항아리의 소금을 탁자 위에 쏟아냈더니 과연 소금 속에서 다아아몬드가 나왔다.

왕은 관대한 사람이었으므로 다이아몬드를 훔친 사람이 창피를 당하지 않고 잘못을 뉘우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에게 이런 기회를 배려해주셨다. 즉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죄의 고백을 통해 항상 그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을 바꿀 100가지 이야기, 피에르 르페브르, 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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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기본

 

서로 대화를 하는 경우에,

이해성이 많고 유쾌해 보이는 사람이 아주 드문 이유의 하나는,

사람이 십중팔구까지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정확한 대답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가 말하고자 마음 먹고 있는 것에

생각을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특출하게 수단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또 특출하게 상냥한 사람일지라도

다만 주의 깊은 듯한 표정을 보이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러한 사람의 눈 속 마음속에는

그저 멍하니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자기가 말하고자 생각하고있는 것에

한 순간이라도 빨리 이야기를 되돌리고 싶어하는

조바심이 엿보이는 것이다.

대저 그러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고자 조바심하는 일이

남을 기쁘게 하거나 남을 설득하거나 하는 데에는

하나의 졸렬한 방법이요,

잘 듣고 대답하는 것이 대화를 주고받는 경우의

훌륭한 태도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 라로시푸코의 <잠언과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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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신앙의 차이

 

눈은 한 가련한 거지를 보여주지만, 신앙은 그 안의 예수를 보여준다. 귀는 모욕과 박해의 소리를 들려주지만, 신앙은 ?기뻐하고 춤추라?는 노래를 읊조린다. 피부는 얻어맞은 돌의 아픔만을 느끼게 하지만, 신앙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언가 아픔을 느끼게 된 것을 기뻐하라?고 말해준다. 혀는 누룩 없는 빵을 맛보게 하지만, 신앙은 사람이면서 하나님이신 주님의 몸과 영(靈)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코는 향기를 맡게 하지만, 신앙은 참된 향기는 ?모든 성인의 단식과 절제?임을 가르쳐 준다.

오관은 피조물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그러나 신앙은 창조되지 않은 분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피조물의 아름다움이란 한낱 허무요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 / 김수환 / 도서출판 사람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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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과 부정의 차이

 

사무엘은 수년간 시베리아에 유배되었다가 가까스로 석방되어 고향에 돌아왔다.

친구들이 동정하며 그를 위로하였다. "참 애썼네. 그 동안 고생이 많았지?"

그런데 사무엘은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아니야, 그렇게 고생스러웠다고는 생각지 않아. 아침 7시에 기상, 조반은 빵과 차 한잔, 그 차가 좀더 뜨거웠으면 더 좋았겠지만 말야.

그러고는 자동차에 실려 통조림 공장에 가서 거기서 상표를 붙이는 일을 하였지.

12시에는 또 자동차로 점심을 먹으러 가고, 점심이 좀 싱겁기는 했지만 그런 대로 괜찮았어. 그 뒤에는 낮잠 자는 시간이 좀 있었고

티타임에는 빵과 커피가 나왔고, 그러고 나서 카드놀이 등을 하고 있으면 저녁 식사시간이야. 물론 메뉴는 보잘 것 없지만 사람의 욕심 자체가

한이 없쟎은가. 그 다음엔 다음날 분의 담배를 배급받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끝나지. 밤 10시나 10시 반에는 모두 잠자리에 들게 되고."

친구들은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그래? 정말이야? 아이젠슈타프도 역시 시베리아에 갔었는데 네 이야기와는 딴판으로 무척 고생스러웠다던데!"

그는 대답했다. "그야 그렇겠지. 그러니까 그 녀석은 다시 시베리아로 되돌아 갈 수밖에."

 

                               출처: 예화 500 제1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