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책

[스크랩] 당신을 기다리는 이 하루 /김용택

열국의 어미 2013. 7. 28.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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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 김용택

 

 

 

 

어제 밤에 그대 창문 앞까지 갔었네

불 밖에서 그대 불빛 속으로

한 없이 뛰어들던 눈송이 송이

기다림없이 문득 불이 꺼질 때

어디론가 휘몰려 가던 눈들


그대 눈 그친 아침에 보게 되리

불빛 없는 들판을

홀로 걸어간 한 사내의 발자국과

어둠을 익히며

한참을 아득히 서 있던

더 깊고

더 춥던 흔적을

 

 

 

 

 

꽃처럼 웃을 날 있겠지요 / 김용택


 

 

 

작년에 피었던 꽃

올해도 그 자리 거기 저렇게

꽃 피어 새롭습니다

작년에 꽃 피었을 때 서럽더니

올해 그 자리 거기 저렇게

꽃이 피어나니

다시 또 서럽고 눈물 납니다

이렇게 거기 그 자리 피어나는 꽃

눈물로 서서

바라보는 것은

꽃 피는 그 자리 거기

당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 없이 꽃 핀들

지금 이 꽃은 꽃이 아니라

서러움과 눈물입니다


작년에 피던 꽃

올해도 거기 그 자리 그렇게

꽃 피었으니

내년에도 꽃 피어나겠지요

내년에도 꽃피면

내후년,내내후년에도

꽃 피어 만발할 테니

거기 그 자리 꽃 피면

언젠가 당신거기 서서

꽃처럼 웃을 날 보겠지요

꽃같이 웃을 날 있겠지요.

 

 

 

 

 

나비는 청산가네 / 김용택


 

 

 

꽃잎이 날아드는 강가에 나는 섰네


내 맘에 한번 핀꽃은

생전에 지지 않는 줄을

내 어찌 몰랐을까

우수수수 내 발등에 떨어지는 꽃잎들이

사랑에서 돌아선

그대 눈물인 줄만 알았지

내 눈물인 줄은

내 어찌 몰랐을까

날 저무는 강물에 훨훨 날아드는 것이

꽃잎이 아니라

저 산을 날아가는 나비인 줄을

나는 왜 몰랐을까


꽃잎이 날아드는 강가에 나는 서 있네

 

 

 

 

 

 

빈들 / 김용택

 

 

 

 

밥풀 같은 눈이 내립니다

빈 들판 가득 내립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당신으로밖에는 채울 수 없는

하얀 빈들을 거머쥐고 서서

배고파 웁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 김용택

 

 

 

이별은 손 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심심한 하루 / 김용택


 

 

 

배추 뽑고 무 뽑고

빈터에 마늘 갈고 짚 덮으니

비 온다 비 온다 비가 와

웬놈의 겨울비가 이리도 자주 온다냐

사람들 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고

노란 짚에

후두두후두두

빗소리 시끄럽다


빈 마루에 심심하게 서서

닭이 울고

심심한 겨울산 바라본다

텅 빈 길 하나가 산속으로가다

어디로 가버리고

모두 서서 비 맞는다

주머니에 손 찌르고 서서

산도 나무도 강도 논도 밭도

모두 심심하게 비 맞는다


봄비 오면 따뜻해지고

가을비 오면 추워진다는디

내일부터는 추울랑가

이 비가 눈으로 바뀔랑가

길이란 길에 사람 하나 안 지나고

아, 세상이 다 심심하게 비 맞는다

이 심심하디심심한 가을비 하루.

 

 

 

 

 

 

 

 

 

 

해지는 들길에서 / 김용택


 

 

 

사랑의 온기가 더욱 더그리워지는

가을 해거름 들길에 섰습니다

먼 들 끝으로 해가

눈부시게 가고

산그늘도 묻히면

길가의 풀꽃처럼 떠오르는

그대 얼굴이

어둠을 하얗게 가릅니다

내 밖의 그대처럼

풀벌레들은

세상의 산을 일으키며 웁니다

한 계절의 모퉁이에

그대 다정하게 서 계시어

춥지 않아도 되니

이 가을은 얼마나 근사한지요

지금 이대로 이 길을 한없이 걷고 싶고

그리고 마침내 그대 앞에

하얀 풀꽃

한송이로 서고 싶어요


 

 

 


사랑하는 너에게 / 김용택

 

 

 

네가 잠 못 이루고 이쪽으로 돌아누울 때

나도 네 쪽으로 돌아눕는 줄 알거라.

우리 언젠가 싸워

내게 보이던 고운 뺨의 반짝이던 눈물

우리 헛되이 버릴 수 없음에

이리 그리워 애가 탄다.

잠들지 말거라 깨어 있거라

먼데서 소쩍새가 우는구나.

우리 깨어 있는 동안

사월에는 진달래도 피고

오월에는 산철쭉도 피었잖니.

우리 사이 가로막은 이 어둠

잠들지 말고 바라보자.


아, 보이잖니

파란 하늘 화사한 햇살 아래

바람 살랑이는 저 푸른 논밭

화사한 풀꽃들에 나비 날지 않니.

(아, 너는 오랜만에 맨발이구나)

이제 머지 않아 이 얇아져가는 끕끕한 어둠 밀려가고

허물 벗어 빛나는 아침이 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화창한 봄날 날 잡아 대청소를 하고

그때는 우리 땅에 우리가 지은 농사

쌀값도 우리가 정하고

없는 살림살이라도

오손도손 단란하게 살며

밖으로도 떳떳하고 당당하자꾸나.

그날이 올 때까지 잠들지 말고

어둔 밤 깨어 있자꾸나,어둠을 물리치며

싸우자꾸나, 아침이 올 때까지

손 내밀면 고운 두 뺨 만져질 때까지

그리하여 다리 쭉 뻗고 곤히 잠들 때까지.

네가 뒤척이는 이 밤

나라고 어찌 눕는 꼴로 잠들겠느냐.

 

 

 

 

 

 

 

 

오늘도 / 김용택

 

 

오늘도 당신 생각했습니다

문득문득

목소리도 듣고 싶고

손도 잡아보고 싶어요

언제나 그대에게 가는 내 마음은

빛보다 더 빨라서

나는 잡지 못합니다

내 인생의 여정에

다홍꽃 향기를 열게 해 주신

당신

내 마음의 문을 다 여닫을 수 있어도

당신에게 열린 환한 문을

나는 닫지 못합니다

해 저문 들길에서

돌아오는 이 길

당신은

내 눈 가득 어른거리고

회색 블럭담 앞에

붉은 접시꽃이 행렬을 섰습니다

 

 

 

 

 

 

 

 

 

세상의 길가 / 김용택

 

 

 

내 가난함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배부릅니다

내 야윔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살이 찝니다

내 서러운 눈물로

적시는 세상의 어느 길가에서

새벽밥같이 하얀

풀꽃들이 피어납니다

 

 

 

 

 

 

쉬운 봄 / 김용택


 

 

 

아, 봄아

봄은 쉽게도 왔구나.

강물이 실어다가 빠진데 없이 나누어 준 봄을

쉽게 받아들고

꽃들을 피워 이고

벌과 나비를 부르는구나.


이세상 어느 것 하나 쉬운게 있겠냐만

이땅에서, 사람이 사람으로 살려는것처럼

어려운 일 또 어디 있겠느냐.


산은 밤마다 강으로 소리없이 넘어져

가만가만 몸을씻고 일어서라.

논밭들은

가만히 누워서 곡식들을 키우고

달은 물결도 없이 강 건너와 지더라.


우리들의 봄은

온 몸에 피흘려 꽃피워도

캄캄한밤 캄캄하게

소쩍새 소리로 애터지게

왼 산을 헤메며

피빛 진달래로 피었다

피빛으로 지는구나.


아, 봄아

봄은 쉽게 왔건만

봄맞이 임맞이 나갈 사람들의 마음은

이리추워 문 열 수 없구나.

사람들의 봄은

올해에도 홀로지는 꽃처럼 쓸쓸하고

흙바람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구나.

쉽게 살 일인데

묵은 두엄 져

여기저기 뿌리는 우리어매 손길같이

밭 갈아가는 아버지 쟁기날같이

쉬울일이 아니더냐 세상은.

 

 

 

 

 

 

 

 

봄날 / 김용택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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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너는 죽었다 / 김용택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 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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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은 밤 / 김용택 

 

 

생각이 많은 밤이면 뒤척이고 뒤척이다

그만 깜빡 속은 것 같은 잠이 들었다가도

된서리가 치는지 감 잎이 뚝 떨어지는 소리에 그만

들었던 잠이 번쩍 깨지는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생각에 매달리어

또 그 생각에 매달리기 싫어서

일어나 앉아 머리맡에 새어 든 달빛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는

더듬더듬 불을 켜보지만

그 생각들이 달아나기는커녕

새로운 생각들이 더 보태지는 것이다

그런 밤이 가고

풀벌레 우는 새하얀 아침이 오면

마당 한구석 하얀 서리 속에 산국이 노랗게 피어

향기가 더 짙고

집 앞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 떨어진 잎들은

천근이나 만근이나 된 듯 흰 서리에 속이 젖어

땅에 착 달라 붙어 있는 것이다

마루에 나와 우두커니 서서 이상없이 어제와 똑같이 흐르는

강물이며 그냥 그대로 다 있는 텃밭에 김장배추라든가

알몸이 파랗게 거의 다 솟은 무라든가

배추밭 구석진 곳에 심어져 쪽 고르게 자란 쪽파에 내린 흰 서리라든가

하얀 서리밭을 걸어오시는 나이가 드실대로 다 드신

이웃집 큰아버님의 허리 굽은 걸음걸이라든가

앞산 산 속 참나무 밑이 헤성헤성 보이는 것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개운해지고

텅빈 마음 안에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또렷이 보이는 것이다

그랬었구나, 그랬었구나 까닭도 없이 고개가 끄덕여지고

그런 것들이,

그러한 것들이

투명한 유리알 저쪽처럼 손에 잡힐 듯 환하게 보이고

마음에 와 그림같이 잠기는 것이다

 

 

 

 

새 풀잎 / 김용택

 

 

어제는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고운 봄비가 내리는

아름다운 봄날이었습니다.

막 돋아나는 풀잎 끝에 가 닿는 빗방울들,

풀잎은 하루종일 쉬지 않고 가만가만

파랗게 자라고

나는 당신의 살결같이 고운 빗줄기 곁을

조용조용 지나다녔습니다.

이 세상에 맺힌 것들이 다 풀어지고

이 세상에 메마른 것들이 다 젖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내 마음이 환한 하루였습니다. 어제는 정말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운 당신이 가볍고 하얀 맨발로

하루종일 지구 위를

가만가만 돌아다니고

내 마음에도 하루종일 풀잎들이

소리도 없이 자랐답니다. 정말이지


어제는

그대 맨살같이 고운 봄비가

하루종일 가만가만 내린

아름다운 봄날이었습니다.


당신,

당신은 어디 있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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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하나 / 김용택

 

 

저 고운 단풍 보고 있으면

그냥 당신이 그립고 좋습니다

당신을 생각하는 이 삶의 청정함과 애련함을

보듬어 안아다가

언제라도 당신에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흩어지고 사라질 내 시간들이

당신 생각으로

저 산 단풍처럼

화려하게 살아 오르고

고운 산 하나

내 눈 아래 들어섭니다


당신,

당신만 생각하면

그냥 당신이 그립고

한없이 세상이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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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밤 / 김용택 

 

 

말이 되지 않는

그리움이 있는 줄 이제 알겠습니다

말로는 나오지 않는 그리움으로

내 가슴은 봄빛처럼 야위어가고

말을 잃어버린 그리움으로

내 입술은 봄바람처럼 메말라갑니다

이제 내 피는

그대를 향해

까맣게 다 탔습니다 

 

 

 

밥줄 / 김용택 

 

 

아이고매

저런 쌔려쥑일 인사들이

시방까지 살아 큰소리 치며

이 나라 하루 세끼

아까운 밥을 쥑이네

저 더러운 손으로

저 더러운 입으로

우리 어매 피땀 어린 삼시 세끼

밥을 쥑이네 하얀 밥을 쥑여

저런 쥑일 놈들이

저 밥이 어떤 밥이간디

아깐 밥 편히 묵고 앉아

함부로 남의 밥줄을 끊네 

 

 

 

무슨 말인가 더 드릴 말이 있어요 / 김용택

 

 

오늘 아침부터 눈이 내려

당신이 더 보고 싶은 날입니다

내리는 눈을 보고 있으면

당신이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마음은 자꾸 눈처럼 불어납니다

바람 한점 없는 눈송이들은

빈 나뭇가지에 가만히 얹히고

돌멩이 위에 살며시 가 앉고

땅에도 가만가만 가서 내립니다

나도 그렇게 당신에게 가 닿고 싶어요


아침부터 눈이 와

내리는 눈송이들을 따라가보며

당신이 더 그리운 날

그리움처럼 가만가만 쌓이는

눈송이들을 보며

뭔가, 무슨 말인가 더 정다운 말을

드리고 싶은데

자꾸 불어나는 눈 때문에

그 말이 자꾸 막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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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 김용택

 

 

그대가 보고 싶을 때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며

저무는 강으로 갑니다.

소리없이 저물어가는

물 가까이 저물며

강물을 따라 걸으면

저물수록 그리움은 차올라

출렁거리며 강 깊은 데로 가

강 깊이 쌓이고

물은 빨리 흐릅니다.


그대여

더 저물 길이 막혀

내 가만히 숨 멈춰

두려움으로 섰을 때

문득 저물어 함께 떠나는

저기 저 물과 소리.

아, 오늘은 나도 몰래

어제보다 한 발짝 먼데까지

저물어 섰는

나를 보겠네 땅을 보겠네

발밑 우리 땅을 보겠네.

알겠네 그대여

사랑은 이렇게 한 발짝씩 늘려

우리 땅을 얻는 기쁨이라고

사랑은 이렇게

저렇게 저녁노을 떠나가는

아름다운 하늘 아래

저 푸른 물결 와 닿는

우리 땅을 찾아

우리 땅에 들어서는

설레이는 가슴

이렇게 한없이 떨리는 기쁨이라고.

그대여

그대 어두워 발 다치는 저문 강길로

저물어 와 우리 같이 설 때까지

나는 끝없이 피 흘리며

우리 땅을 넓히고

그대는 물 같은 고른 사랑으로 와야 하리.

그대 가만히 불러보면

이 땅 어느 끝에서나

그 보드라운 물결 같은 가슴으로

물결쳐 오는

땅 끝에서

다친 발 내려다보며

어둔 땅을 향해 피 흘리는

이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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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기다리는 이 하루 / 김용택

 

 

하루종일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이 하루

내 눈과 내 귀는

오직 당신이 오실 그 길로 열어졌습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당신이 오실 그 길에

새로 핀 단풍잎 하나만 살랑여도

내 가슴 뛰고

단풍나무 잎새로 당신 모습이

찾아졌습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그 긴 기다림의 고요는

운동장을 지나는

물새 발작 소리까지 다 들렸습니다

기다려도 그대 오지 않는

이 하루의 고요가 점점

적막으로 변하여

해 저문 내 길이 지워졌습니다

 

 


출처 : 시인의 향기
글쓴이 : 사랑을 위하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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