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책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유치환

열국의 어미 2016. 2. 23. 12:07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유치환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턴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

앙상한 공허만이

먼 동천(寒天)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보라.

저 거짓의 거리에서 물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