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책

생명(生命)의 서(書) -유치환(柳致環)

열국의 어미 2016. 2. 23. 12:25


 



생명(生命)의 서() -유치환(柳致環)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砂)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