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4분기 우수작품상
동화∣오주영
겨울의 수집가 쥐콩
어느 겨울날이에요. 바람이 제비꽃마을 안을 휙휙 돌아다녀요. 몸을 돌돌 만 마른 나뭇잎들을 슬그머니 쓸어다 마을 안에 우르르 뿌리고, 집집마다 문틈을 비집고 들어가 달캉달캉 흔들어대요. 살얼음 낀 개울 위를 휙휙 내달리기도 해요. 그러다 쥐콩에게 와락 달려들어요.
“으힛.”
밤색 들쥐 쥐콩은 목을 움츠리고 잡동사니 가게의 푯말을 읽었어요.
필요한 물건을 사 가세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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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콩은 마지막 말이 마음에 들어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맹꽁이 부부 맹 아저씨와 꽁 아줌마는 손님이던 아니던 늘 반갑게 맞아줘요. 가끔 맹 아저씨가 불뚝댈 때도 있지만 마을 동물들은 잡동사니 가게에 가는 걸 좋아해요.
쥐콩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맹 아저씨가 식탁에 앉아 조그만 돌멩이를 보드라운 천으로 닦고 있었어요. 식탁 위에는 보리 낟알처럼 조그만 돌멩이부터 밤톨만한 돌멩이까지 주르르 놓여 있었어요.
“맹 아저씨, 돌멩이를 왜 닦아요?”
맹 아저씨가 노래를 불렀어요.
포도잼 열 단지랑도 안 바꿔
딸기잼 백 단지랑도 못 바꿔
돌돌돌 돌멩이는 내 사랑이지.
맹 아저씨가 돌멩이를 황홀하게 바라보며 말했어요.
“이 돌멩이들은 하나하나 내가 모은 거야. 얘는 개울의 진흙에 덮여 있었어. 살살 닦아내니 요렇게 예쁜 토끼 모양 돌이 나왔지.”
맹 아저씨는 돌멩이마다 모양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고, 무늬가 다르댔어요. 그래서 멋진 돌멩이를 찾아내면 짜릿하고 즐겁다나요. 맹 아저씨가 깨끗이 닦은 돌멩이를 상자에 담았어요.
“파는 물건이랑 헷갈리면 안 되거든.”
꽁 아줌마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어요.
“돌멩이를 누가 사간다고.”
맹 아저씨가 고개를 휙 쳐들었어요.
“당연히 못 사가지! 내가 절대로 안 팔 테니까.”
꽁 아줌마가 “그래요, 그래.”하곤 자랑스레 선반을 가리켰어요. 선반 위에는 매미 껍질이랑 풍뎅이 껍질이 놓여 있었어요.
“쥐콩아, 내 수집품이야. 가장 왼쪽에 낙엽 색 매미 껍질을 봐. 저 더듬이, 저 다리. 찢어진 등껍질 쪽도 참 예뻐.”
쥐콩은 신기했어요. 돌멩이나 매미 껍질이나 어디서든 주울 수 있는 건데. 그걸 보고 이 만큼 즐거워하다니.
쥐콩의 얼굴을 본 꽁 아줌마가 웃었어요.
“수집이란 게 그렇잖니. 남들이 뭐라던 내가 좋으면 최고지. 다람쥐는 끈을 모으고, 고슴도치는 말린 꽃잎을 모은단다. 나만의 수집품을 찾으면 아주 멋진 기분이 들어.”
아주 멋진 기분.
쥐콩은 솔깃했어요. 모두들 수집하는 게 있다니, 쥐콩도 꼭 수집을 하고 싶었어요. 맹 아저씨가 거들먹거렸어요.
“수집은 좋은 취미지. 쥐콩 넌 뭘 모으냐?”
“어, 그게요…….”
“쯧쯧. 넌 수집품 없니? 그런 것도 하나 없이 여태 뭐 했어?”
쥐콩이 소리쳤어요.
“이제부터 찾을 거예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멋진 수집품을 한가득 들고 올 테니까.”
쥐콩은 그 길로 수집할 거리를 찾아다녔어요.
‘천을 모을까?’
나뭇가지에 걸려 있던 찢어진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이끼를 모을까?’
바위틈에 숨어 있던 이끼를 퍼 주머니에 넣었어요.
‘나무껍질을 모을까?’
유난히 길쭉한 나무껍질을 옆에 끼었어요.
마른 덤불 아래서 둥근 단추도 주웠어요. 노란 깃털은 주워 바지춤에 끼웠어요. 그러는 사이 코끝이 얼었어요. 발가락도 시려왔어요. 쥐콩은 하얀 입김을 뿜으며 하늘을 올려다봤어요. 오늘따라 겨울 해를 숨기고 있는 구름이 미웠어요.
“햇살을 모으면 좋겠다.”
그러면 오늘같이 추운 날 한 줌씩 꺼내어 주머니에 넣고 다닐 텐데. 여럿이 있을 땐 햇살을 풍선처럼 하늘 위로 둥둥 띄울 거예요. 뿔뿔이 집으로 갈 때는 햇살을 조각조각 잘라 나눠줄 거예요. 햇살 조각을 주전자에 넣어 차가운 물을 덥힐 수도 있고, 침대 속에 넣어 이불을 데울 수도 있어요. 유령이 나타날 것 같은 캄캄한 밤을 밝힐 수도 있겠죠.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어요.
“바람을 모으면 좋겠다.”
그러면 빨리 달리고 싶을 때 뒤에서 밀도록 할 거예요. 열매를 딸 때 나무를 쏴아아 흔들 거예요. 쥐콩이 쓴 편지를 다람쥐네 네 집 앞으로 날려 보낼 수도 있어요.
쥐콩은 앞발을 벌려 바람을 움켜잡았어요. 바람이 날름 빠져나갔어요.
어느새 구름이 걷혔어요. 멀쑥한 겨울 햇살이 땅으로 떨어졌어요. 세상이 환하게 빛났어요. 너무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햇살도, 바람도 모을 수가 없어.’
쥐콩은 찾아낸 수집품을 보았어요. 멋진 기분이 안 들었어요. 주울 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잡동사니 가게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어요. 가게 안에 다람쥐와 고슴도치가 와 있었어요.
“쥐콩아, 너도 수집품을 모은다며? 뭘 가져왔어?”
쥐콩은 주섬주섬 가져온 걸 늘어놓았어요. 구멍 난 스카프, 길쭉한 나무껍질, 초록 이끼, 둥근 단추, 노란 깃털. 꺼내놓으니 왠지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다람쥐가 스카프를 보고 감탄했어요.
“하늘색이 멋지다. 구멍 난 곳을 꿰매 모자에 달면 예쁘겠다.”
쥐콩은 기뻤어요.
“줄게. 난 스카프를 안 모을 거야.”
고슴도치는 노란 깃털을 탐냈어요.
“이 깃털 참 곱다. 목걸이를 만들면 근사하겠다.”
쥐콩이 말했어요.
“너 가져. 난 깃털을 안 모을 거야.”
다람쥐가 고슴도치에게 파란 끈을 주겠다고 했어요. 파란 끈에 노란 깃털을 달면 멋질 거라면서요. 고슴도치가 기뻐하며 다람쥐와 가게를 나갔어요.
쥐콩은 꽁 아줌마에게 나무껍질을 보여줬어요.
“꽁 아줌마, 이 나무껍질에 매미 껍질을 놓아보세요.”
쥐콩은 그 위에 촉촉한 이끼까지 얹어 주었어요.
“마음에 쏙 드는 걸.”
꽁 아줌마가 싱글벙글 웃다 말고 멈칫했어요.
“가만. 그러면 너한텐 아무 것도 안 남는데.”
“괜찮아요.”
쥐콩이 단추를 꺼내어 보여줬어요. 맹 아저씨가 단추를 살펴보고 말했어요.
“단추 모으기를 하려고? 제법 좋은 취미를 찾았어.”
꽁 아줌마가 쥐콩의 등을 토닥였어요.
“좋네. 네가 찾는 단추마다 사연이 있을 거야.”
쥐콩은 빙긋 웃기만 했어요.
쥐콩은 오솔길을 따라 개울가를 걸었어요. 살얼음 낀 개울가에 마른 갯버들이 바스스바스스 흔들렸어요.
쥐콩은 단추에게 말했어요.
“단추야. 너는 멋진 여행자야. 옷에서 떨어져 나와, 그때부터 용감한 여행을 했어. 큰 새에게 삼켜져 호수로 갔고, 호수에서 물고기 친구를 사귀었어. 폭풍우가 치는 날 바람을 타고 돌아다니다 제비꽃마을까지 오게 된 거야. 그러니까 안녕. 또 신나는 일들을 겪다가 널 소중히 아껴줄 수집가에게 발견되길 바란다.”
휙!
쥐콩은 단추를 멀리 던졌어요. 단추는 파란 하늘을 날아 어딘가로 숨었어요. 쥐콩의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어요.
수집은 멋진 취미지만 쥐콩은 수집을 할 필요가 없어요. 쥐콩이 좋아하는 건 모으지 않아도 돼요. 늘 곁에 둘 순 없어도, 기다리고 있으면 저절로 찾아오지요. 구름이 지나가면 해가 비추듯이. 해가 지면 밤이 찾아오듯이. 얼음이 녹고 개울의 노래가 흐르듯이. 흙을 뚫고 제비꽃 싹이 올라오듯이.
쥐콩은 건들건들 가볍게 걸었어요. 발끝에 차이는 누런 풀이 좋았어요. 마른 나무 위로 내려오는 어스름이 좋았어요. 입김이 하얗게 어는 추운 겨울이 좋았어요. 기다리면 찾아올 봄이 그리워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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