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샘터상 동화 부문 가작 2
바다로 간 기차 _신동숙
“뚜우뚜우 칙칙폭폭 칙칙폭폭.” 철길 양쪽엔 코스모스가 한창입니다.
“꼬마 기차야,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기관사 아저씨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아저씨는 나이가 많아 기관사 일을 그만둡니다. 나도 오래된 기차라서 철길을 더 달릴 수 없다고 하네요. 기차에 탄 손님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예전엔 제법 긴 기차였는데 달랑 한 량만 남았군요.”
“그래서 이 기차를 꼬마 기차라고 부른대요.”
“꼬마 기차가 없어진다니 아쉬워요.” 나는 사람들 마음을 모르겠어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느리다고 구박하더니 지금은 아닌가 봐요.
“바다, 바다가 보여요!” 사람들은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보았습니다.
나는 바다를 보면 소풍가는 아이처럼 설렌답니다. 밀려오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예쁜 물꽃을 피워 올리고 하얀 물새가 꾸구국 꾸구국 노래하는 바다. 한번은 고래 떼를 본 적이 있어요. 고래는 미끈한 기둥처럼 솟아오르더니 물속으로 곤두박질 쳤어요. 그리곤 분수처럼 하얀 물줄기를 뿜어댔어요. 나는 그만 고래에 반해버렸답니다.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것처럼 기관사 아저씨도 바다를 좋아합니다. 아저씨는 바다를 보면 휘파람을 불어요. 아저씨는 기차가 좋아서 기관사가 되었대요. 퇴임하면 어린이 집에서 그림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도 들려 줄 거래요.
‘나도 이야기라면 자신 있는데…….’ 내가 들은 이야기는 산더미처럼 많아요. 그림 그리는 사람, 노래 부르는 사람, 회사 사장님, 사 선생님,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 심지어 큰 죄를 지은 도둑 이야기도 들었답니다.
드디어 마지막 역까지 왔어요. 기관사 아저씨는 떠나고 나는 못 쓰는 기차들을 모아놓은 곳에서 지내게 되었어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추운 겨울입니다. 나는 포근한 눈 이불을 덮고 곰처럼 겨울잠을 잤어요. 내 몸은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어 발갛습니다. 친구들은 차례차례 고철공장으로 실려 갔어요. 나는 종이처럼 납작하게 구겨져 뜨거운 용광로에 형체 없이 사라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어디론가 실려 갔습니다. 일하는 아저씨들이 내 몸에 있는 것을 떼어내고 녹을 벗겼어요. 그리고 황토와 조개껍질을 섞어 만든 단단한 판을 붙였습니다. 바다가 오염이 되지 않는 특별한 옷이라는군요. 아저씨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습니다. 아저씨들의 정성스러운 손길 덕분에 나는 근사한 물고기 아파트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힘들었지? 넌 바다가 있는 작은 마을에 가게 될 거야.” 아저씨가 땀방울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마을 대표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러분, 물고기 아파트를 소개합니다!” 풍물패들이 북과 꽹과리를 신나게 쳤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내가 바다로 가면 물고기가 많이 잡힐 거라며 흥겹게 춤을 추었습니다. 나는 가슴이 넓적한 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갔습니다. 팔이 길쭉한 기계가 나를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풍덩.” 부글거리며 사라지는 공기방울처럼 이제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시 볼 수 없겠지요.
“쿵!” 나는 바다 깊숙한 곳에 닿았습니다.
바닷물은 몹시 차가웠습니다. 사막처럼 아무것도 살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느릿느릿 천천히 흘러갔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요. 따뜻한 물살이 번져오더니 해초 씨앗들이 내 옷에 다닥다닥 붙었습니다. 나는 반가워서 씨앗들을 꼭 품어주었습니다. 씨앗들은 여린 발을 내리고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금세 줄기가 굵어지고 잎이 넓적해졌어요. 바람에 흔들리는 풀처럼 해초들은 간들간들 몸을 흔들었습니다.
그때 작은 물고기들이 무리지어 나타났어요. 마치 무더기로 핀 코스모스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덩치 큰 사나운 물고기가 따라왔어요.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잽싸게 공격했습니다. 작은 물고기들은 비명을 지르며 갈팡질팡했습니다.
“얘들아, 여기는 안전하단다.” 나는 작은 물고기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작은 물고기들은 해초들 사이에 몸을 숨겼습니다. 덩치 큰 물고기는 아파트 입구가 작아서 들어올 수 없습니다. 화가 난 물고기는 몇 차례 원을 그리며 빙빙 돌다가 사라졌습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살아도 될까요?” 몸집이 날랜 대장 물고기가 물었습니다.
“그럼요, 나는 여러분을 위한 아파트예요.” 물고기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해초들 사이를 헤엄쳤어요. 그러다 지쳤는지 해초들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들었어요. 그런데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물고기들은 여전히 겁에 질려 벌벌 떨었습니다.
“너희들 아직도 큰 물고기가 두려운 모양이구나.” 나는 작은 물고기를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네, 생각만으로도 소름끼쳐요.” 나는 곰곰이 생각했어요.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 괜찮아질 거야.”
“그럼 어서 이야기 해주세요.”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어떤 말부터 꺼내야할 지 생각나지 않았어요.
“음……옛날 옛날에 철길을 달리던 꼬마 기차가 있었어.”
“꼬마 기차요?” 호기심 많은 아기 물고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습니다. 나는 기차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뚜우뚜우 칙칙폭폭 칙칙폭폭.” 아기 물고기들은 기차소리를 따라했습니다.
“찌찌뽀뽀 찌찌뽀뽀.” 아기 물고기들의 입에서 크고 작은 물방울이 송알송알 솟아올랐습니다. 어여쁜 지느러미가 나비처럼 팔락입니다.
“기차를 움직이는 분은 기관사란다. 그분은 바다를 보면 휘파람을 불었어. 기찻길을 달리며 본 하늘과 바다, 산과 들 모두 그림이었단다.” 나는 기관사 아저씨의 촉촉한 눈매가 떠올랐어요. 아저씨도 나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저씨, 기차놀이해요.” 아기 물고기들이 졸랐습니다.
“응, 그래…….” 나는 기관사 아저씨랑 철길을 달릴 때처럼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뚜우뚜우 칙칙폭폭 칙칙폭폭.”
“찌찌뽀뽀 찌찌뽀뽀.”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고래 한 마리가 무슨 일인지 구경하러 왔습니다. 나는 가슴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철길을 달리며 보았던, 내가 반한 바로 그 고래였습니다.
“안녕?” 고래가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 고래와 인사를 나누다니 꿈만 같았습니다.
“네가 우는 소리는 참 독특하구나. 우리도 큰 소리로 멀리 있는 친구에게 소식을 전한단다.” 고래는 순한 눈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끔 큰 소리로 날 불러줄 수 있겠니? 나도 대답해 줄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고래는 싱긋 웃었어요. 나는 기쁨에 들떠 물었어요.
“우리 친구 맞죠?”
“그럼요. 우린 친구예요.” 고래는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먼 바다로 떠났습니다. 먼 곳에 사는 물고기들이 이야기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어요. 고래에게 들었다고 했어요.
“이야기 해주세요.” 물고기들은 자꾸자꾸 이야기가 듣고 싶대요. 땅에서 벌어지는 일이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하네요.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지?’ 나는 깊은 생각에 빠져 지낸답니다. 먼 바다로 간 고래를 기다리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