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방

[스크랩] 성령의 은사에 대한 명령들

열국의 어미 2008. 11. 21. 10:58
성령의 은사에 대한 명령들



성경에서 가장 적게 언급되고 있는 부분이
성령의 은사라는 부분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은사의 시대는
이미 사도 시대로 끝났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적으로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은사가 어느 한정된 시대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신령한 몸을 세우는 도구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시대에 사는 사람들만 이 은사를 사용하고
현대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은사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더욱 더 사단에게 짓밟히게 되고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도 이러한 은사가
사용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물론입니다.
엘리야도 엘리사도 다윗도 모세도 이 은사를 활용하였습니다.

그들의 시대는 성령님이 내주 내재하시는 시대가 아니었으므로
더욱 성령의 현현, 나타나심은 그들에게 필요하였습니다.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에게 따라가 불의한 선물을 받은
게하시의 모든 행동을 알게 된 것도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통하여서였습니다.


또한 예수님도 이 은사를 사용하셔서 나다나엘이나 삭개오,
유다에 대하여 미리 아셨을 뿐만 아니라
각종 연약한 사람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으로 이런 은사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하시는 분이 있겠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인자(人子)로 오신 예수님도 이 은사를 활용하셨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제한 받으신 예수님이 그 제한을 넘어서는
은사를 사용하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어떤 명령들을 하고 있을까요?
한번 성경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12:31)


◆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 .....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spiritual gifts)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14:1)


◆ 견고하게 되라....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롬1:11)


◆ 영적 은사에 부족함이 없으라....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전1:7)


◆ 신령한 은사를 풍성하게 구하라....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고전14:12)


◆ 신령한 것에 대하여 무지하지 말라...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고전12:1)


◆ 영적 은사를 불일 듯 일으키라.....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딤후1:6)


◆ 등한히 하지 말라....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히2:3-4)


◆ 성령을 소멸치 말라 ....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5:19)


◆ 예언을 멸시치 말라...


예언을 멸시치 말고(살전5:20)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은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성령의 은사의 분류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고전12:4,5)



성령의 은사는 얼마나 될까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아홉 가지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나 피터 와그너 박사는 성경에 나오는 은사를
27가지로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유독 사도 바울이 이러한 은사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은 의아한 일입니다.

성경에서 신령한 집에 대하여 말한 사도는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뿐이 없는데
은사에 대하여도 바울(롬12:6-8, 고전12:8-10, 고전12:28-30, 엡4:11)과
베드로(벧전4:10-11)가 언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다른 사도들은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거론하지 않았거나
다른 중요한 말씀을 전하면서 이 은사에 대하여까지
설명할 지면이 허락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바울과 베드로가 성도들의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이 은사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은 여간 반갑고 감사한 일이 아닙니다.

성도를 세우는 문제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던 바울과 베드로가
신령한 집과 세우는 은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은사를 네 가지로 구분합니다.


분별의 은사들: 영들 분별함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이 은사들은 분별의 은사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하나님에게 속한 것과
사단에게 속한 것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들 분별함의 은사는 당연히 분별의 은사가운데
가장 중요한 은사입니다.

이 은사가 없이 교회가 신령한 집으로 세워질 수 없습니다.
이 은사는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필요한 은사입니다.

또한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하나님의 지식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지식에 더 중요한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knowing)에 더 강조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은사는 사람의 심중에 숨겨지어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면 알 수 있는 은사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면
그 사람이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알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지식으로 알고 분별되는 은사입니다.


기도의 은사들: 방언의 은사, 방언 통변의 은사


이 은사는 기도의 은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기본적인 은사로 기도의 은사를 주십니다.

기도는 어떤 자격 없이도 할 수 있는
모든 믿는 자녀들의 특권입니다.

방언의 은사는 신령한 집을 짓는데 가장 중요한 은사입니다.

왜냐하면 신령한 집은 신령한 방법,
전략으로 지어지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막의 성소를 보더라도 휘장을 열고 들어가기 전
분향단이 있는데 그것은 성도의 기도를 상징하거나
중보 기도를 하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신령한 집은 지어질 수가 없습니다.


선포의 은사들: 예언의 은사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벧전4:11)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깊은 곳까지 아시고 말씀하시는 것이 예언의 은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또 성도의 심중을 아는 것이
바로 예언의 은사가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의 선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하고 예언은 시작됩니다.


행동(섬김)의 은사들: 믿음의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


이 은사들은 주로 행동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일에 이 은사들이 사용됩니다.
믿음도 행동입니다.

지혜도 구체적인 삶을 위한 것입니다.
병 고치는 은사는 가장 많은 섬김이 요구됩니다.

또한 능력 행함의 은사도 행동으로 나타나는 기적의 은사입니다.
능력 행함의 은사는 증인의 사역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성소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눈 후에
세상으로 나아가 섬기기 위한 은사들입니다.




더 큰 은사에 대하여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하나님의 지식" 신유의 은사는 "하나님의 치유"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하나님의 지혜"

믿음의 은사는 "하나님의 믿음"

방언의 은사는 "하나님의 언어"

능력의 은사는 "하나님의 능력"...이렇게 보면 됩니다.


곧 하나님의 것입니다.
지식도 지혜도 예언도 방언도...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것과 다르고 은사를 사용하면
그만큼 능력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은사...라고 말한 것은
어떤 존재하는 은사를 설명하고 지칭하기 보다는
은사를 더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은사...길이라고 할까요?


그것이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사랑은 은사라기 보다는
열매에 속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성품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랑을 더 큰 은사라고 말하면서
더 좋은 길이라고 바울은 말했을까요?


그것은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인격이 준비되지 않는 상태로 겸손하지 않게
마치 자신이 큰 능력의 종이라도 된 듯이 은사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 은사를 더 잘 사용할 수 있는 길,
즉 사랑의 길을 보여주고 있는데
사랑은 배려하며 겸손하게 남을 세워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쉬운 예로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

"너는 언제 죽을 것이다"라는 예언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상대편을 두려움에 빠지게 한다면
이것은 예언의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지고 인격이 준비된 사람이 이 예언을 받았다면
그 사람의 죄를 정죄하고 공격하여 두려움에 빠지게 하기 보다는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면서
사랑으로 함께 기도해 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도록 돕기 위함이며 그러기 위하여
함께 기도하며 회개하도록 인도하시는 것"임을 알려주어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이렇게
인격이 준비되지 않는 사람들이 은사를 받고
지도자들까지 무시하고 혼란한 질서를 이끌고 갔기 때문에
이 말씀은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라는 덕목이 없이
은사를 사용할 때에는

교만해지고, 남을 무시하고 자신을 자랑하고
자기의 의를 드러내게 되지만

사랑이 있을 때에는 덮어주고 세워주고
도와주는 은사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더 큰 은사를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사보다 더 큰 것...더 중요한 것...
은사를 사용할 때에 꼭 필요한 것
더 잘 사용할 수 있는 길..

곧 사랑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사랑을 열매라고 보고 있는데
여기서는 더 큰 은사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윤남옥 목사의
주예수영성마을
출처 : 행복충전소♥대명
글쓴이 : DMpasto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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