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방

[스크랩] 신령한 것과 신비한 것의 차이

열국의 어미 2008. 11. 21. 10:58
신령한 것과 신비한 것의 차이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노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고전12:1,2)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쓰면서 자신의 신비한 경험을
익명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셋째 하늘(*히브리식의 하늘의 개념은 셋째 하늘이 곧 천국입니다)에
이끌려 갔던 경험이 있었지만 너무나 신비한 경험이라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신비한 경험을 14년 동안이나 말하지 않은 이유는
이야기하여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며

또한 이러한 경험으로 자신이 교만하거나 자고하지 않도록
조심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신비한 체험만 추구하면서 생활에서 덕을 세우지 못하는 성도들을
건강한 영성으로 자라나게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교회는 신비한 것(mysterious)과 신령한 것(divine)과
영적(spiritual)인 것의 차이를 알지 못합니다

(*영어에서는 신령한 것과 영적인 것 모두를 spiritual이라고 표현하지만
저는 이 책에서는 신령한 것을 하나님에게 속한 것,
그리고 영적이라고 표현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영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류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사 부분에서 더욱 혼란을 겪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신령한 것입니다. 신령한 선물입니다.
신령한 곳으로부터, 신령한 분이 주시는 신령한 선물입니다.

그런데 은사를 사용하게 되면 “
그 사람은 너무 신비적으로 치우쳤다”고 말합니다.

당연히 사용해야 하는 은사를, 교인들에게는 전문적인 도구인 은사를
“신비한 것”이라고 몰아 부쳐서
교인들이 이 은사를 받고도 “쉬쉬”하면서
음지에서 사용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잘못 사용하기도 하고 잘못 듣기도 하고 잘못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음지에서 “쉬쉬”하면서 은사를 사용하고 있는 동안
사단은 “신비한” 모조품을 가지고 성도들을 유혹하여
모조품 쪽으로 쏠려가게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영, 혼, 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2분법, 3분법, 4분법, 혹은 6분법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또한 한편에서는 이렇게 나누는 것을 전적으로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온전하게 한 인격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렇게 나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 혼, 몸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영이고 어디가 혼이고 어디가 몸인지
분명하게 나눌 수 없는 한 인격체인 것도 사실입니다.

이렇게 인간을 3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인격을 혼란하게 분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구별하여
영, 혼, 몸이 하는 기능을 이해하고 보다
더 가까이 주님에게로 나아가고자 함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인간을 영, 혼, 몸이 있는 실체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저는 신학적으로 3분법을 선호하고 있는데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 설계도인 성막을 보게 되면
성전 뜰(몸), 성소(혼), 지성소(영)로 구분된 것을 보게 되고

영, 혼, 몸이 온전해 질 때 이러한 성소도
온전하게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영적(spiritual)인 존재라고 하여 다 주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영은 무당에 대하여 열려있고
어떤 영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의 영이 부처에게 열려 있으면
부처 영성이라고 말하고 공자에게 열려있으면
공자 영성이라고 말하며 소크라테스에게 열려 있으면
스토아 영성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에게 열려 있으면 기독교 영성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영적인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도 볼 수가 없습니다.

무당도 점치는 자도 영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보다도 목회자들보다도 더욱 영적입니다.

예를 들면 점치는 자들은 우리보다 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처녀가 시집을 가고 싶은데
점쟁이한테 가서 어느 때 어떤 사람과 결혼할 것 같으냐고 물으면
제법 그럴듯하게 대답을 해 줍니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기도하며 기다립시다”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점쟁이가
더 영적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점쟁이는 갓과 므니라고 하고
운(spirit of fortune 사65:11)의 귀신으로부터
정보를 받아서 전하는 것뿐입니다.

그들이 영적이긴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온
신령한 지혜를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당들은 더 우환을 잘 쫓아내며
어느 때는 믿는 자들보다도 더 쉽게 병을 고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 신비한 것을 사모하는 자들은
그런 곳으로 마음이 쏠리게 됩니다.

그래서 국회의원들 가운데에도 기독교인들이라고 하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점쟁이들을 찾아가는 비율이
목사님을 찾아가는 비율보다 높다고 합니다.

그것은 점쟁이들이 “족집게”처럼 정확하게
신비하게 앞날에 대하여 점을 쳐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의 영성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성령의 나타나심은
이러한 신비한 것과 다릅니다.

초월적인 것이라고 하여,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여
이것이 모두 신령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영적인 것이라고 하여 모두 신령한 것도 아닙니다.
신령한 것은 주님의 주도적인 사건, 성령님의 나타나심입니다.

신령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비한 것들은 더러운 영과 접촉하여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으며
역사적 현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기독교도 신비한 종교입니다.
신비한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신비한 내용이 역사적 사건과 연결되어 있으며
확실한 화육(incarnation)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현장이 배제된 신비적인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기독교의 신비는 이 땅에 성육신 한 신비, 곧 신령한 사건입니다.
주님의 나타나심이며 성령의 나타나심이며
성령님의 주도적인 사건입니다.

또한 기독교의 신비는 공동체적이며 역사적입니다.
이 신비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나누며
함께 체험하며 함께 성장하도록 합니다.

우리가 은사에 대하여 배우지 못하고 무지하면
이 신비한 것과 신령한 것과 영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여

영적인 것, 초월적인 것, 비합리적인 것,
초자연적인 것 모두를 그리스도의 영성으로 착각하여
우매하게 좇아 다닐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 기독교 영성의 시작입니다.


메누하 윤남옥 목사
출처 : 행복충전소♥대명
글쓴이 : DMpasto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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