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장점을 먼저 생각한다. 십계명을 대할 때에도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명하신 것을 지켰으므로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겸손한 사람은 하라고 명하신 안식일을 지키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부모를 공경하라를 충실히 지켰는가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다. 겸손한 사람은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은 언제나 자기 뒤로 밀어내고 자기 위주다. 내가 있기 때문에 나라도 있고 이웃도 있다고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우선 당장 코앞의 것, 보이는 것만 생각한다. 겸손한 사람은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나를 돌아보아 체질이 진토임을 시인하는 사람이다(시 103:14). 교만한 자는 나를 이런 식으로 대접하다니! 하고 항상 불만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겸손한 자는 상대방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교만한 자가 지도자가 되면 권력이 얼만큼 휘둘러지나 얼마나 강한가를 꼭 시험하고 만다. 겸손한 자가 지도자가 되면 자신을 녹여서 한 시대의 어두운 길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인도자가 되고자 할 것이다.
쥐엄열매의 묵상 / 강희주
하나님을 향할 때
구원에 따르는 모든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배워가기 위해 하나님을 향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다.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하면서 놀라운 경험을 했을 때, 우리는 기쁨이 넘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기쁨은 우리가 자신을 바라보기를 그만두고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회복될 수 있다. 빌리 그래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경제 원칙에 따르면, 당신은 영적인 기쁨의 최고봉에 이르기 전에 슬픔의 골짜기까지 내려가야 한다. 당신은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맛보기 전에, 외로운 삶에 지쳐 있어야 한다. 당신이 진정한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 당신의 자아는 파멸되어야 한다. 자신의 무능함에 대해 탄식하며 우는 것은 하나님의 주의를 끄는 일이다.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은 나의 능력과 선함과 도덕성이 하나님의 기준에 못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던 날이다. 그때 나는 그리스도가 내게 절실하게 필요한 분임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 결과 나의 눈물은 기쁨으로, 나의 탄식은 노래로 변했다.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우리가 모든 면에서 하나님께 향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으로 채워주실 것이다.
성장하는 기쁨 / 론 클러그
죄의 영향력
죄는 믿는 자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도 넘어지게 만든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는 것을 보면 복음이 사람의 삶에 전혀 변화를 주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리고는 돌아선다. 그리고 특별히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도들의 삶에 있는 죄로 인하여 환멸을 느끼기 쉽고 상처를 입기 쉽다. 그들은 주님을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에 대해 대적한다. 마크 트웨인은 그리스도인들이 노예제도를 묵과하고 거친 언어를 사용하며 떳떳하지 못한 거래에 관여하는 것을 보고 기독교에서 돌아섰다. 모하메드는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유일신에 대한 사상을 받아들였지만 기독교인들의 삶을 인하여 돌아섰다. 브라이언 굳윈은 ?조금만 더 주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있었더라면 오늘날 모슬렘계에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 우리를 신뢰하고 있는 사람들은 상처를 입는다. 그들은 실망하며 또한 힘을 잃는다. 거룩한 삶은 또한 우리를 후회나 죄책감, 부끄러움, 그리고 다른 많은 질병에서 구원해주며 더 나아가 우리에게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요일 1:4 , 시 16:11). 거룩이 없이는 진정한 행복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잊혀진 명령 거룩하라 / 윌리암 맥도날드
제 눈물을 돌려주세요
시카고의 클라크 대령은 매주 엿새 동안은 자기 일터에서 일하고 하루는 5, 6백 명이 모이는 선교 집회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몇년간 계속했다. 그 집회에 모이는 사람들은 대개가 술주정뱅이나 좀도둑, 소매치기, 노름꾼들인 희망이 없는 밑바닥 인생들이었다. 클라크 대령은 지루하게 설교하는 사람이었지만 희한한 일은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클라크 대령의 이야기에 넋을 잃고 정말 열심히 듣는다는 사실이었다. 그 비결은 클라크 대령이 자신들에게 쏟는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사랑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 언제나 클라크 대령의 얼굴에는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집회 초창기에 대령은 너무도 많은 눈물을 흘려, 자신의 눈물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좀더 완고하게 하고, 울부짖고 눈물 흘리는 일을 자제하려 하였다. 계속해서 그렇게 하자 눈물은 많이 진정되었지만, 그 대신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힘을 잃고 말았다. 대령은 자신의 힘이 빠져나감을 알아차렸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오! 하나님, 제게 눈물을 돌려주세요!?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눈물을 돌려주셨으며 아울러 사람을 감동시키는 놀라운 능력도 돌려주셨다. 만일 우리가 뿌린 씨앗에서 풍성한 수확을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눈물로 그 씨앗을 키워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삶은 아름답습니다 / 기독교문사 편집부
돌볼 수 있는 마음
오래 전에 어떤 사람이 고아원에 찾아왔다.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을 아이가 있습니까?? 그 물음에 원장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네. 있어요. 열 살짜리 여자 아이인 매우 흉한 꼽추예요. 이름은 머시 굿페이스(Mercy Goodfaith:훌륭한 믿음의 은혜라는 뜻)이지요.? ?바로 그런 아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하고서 그 아이와 함께 떠났다. 35년이 지난 후, 아이오와 주 고아원 감사실의 실장은 한 고아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곳은 매우 특별한 곳인데 깨끗하고, 음식도 훌륭하며 특히 원장은 사랑이 넘쳐흐르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이곳에 수용된 어린이는 모두 잘 보살펴지고 있으며, 원장은 풍부한 사랑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저녁식사 후에 피아노 앞에 모여 섰을 때 나는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를 느꼈다. 나는 결코 그 원장의 눈과 같은 아름다운 눈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내가 그 원장의 얼굴이 보기 흉한 꼽추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데에 놀라워했다. 그 원장의 이름은 머시 굿페이스이다.? 어떤 한 사람이 추하고 보기 흉한 고아를 보살펴줄 용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머시 굿페이스는 사랑의 방법을 배우고 또 그 사랑을 백 배로 증식시킬 수 있었다.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돌볼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하자.
당신을 사랑하오 / 한태완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
유대인들에게 이런 잠언이 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은 하나님의 이름에 경외심을 표하는 것보다도 위대한 일이다.? 유대인들이 여호와라는 이름에 극도로 깊은 경외심을 표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접대가 얼마나 중대한 일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를 기도와 예배로 부르는 교회의 종소리는 우리 귀에 아주 친숙하게 느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문의 초인종 소리도 실은 우리를 기도와 예배로 부르는 소리이다. 현관의 초인종이나 노크 소리는 우리를 기도로 부르는 소리이며 손님 대접의 성례로 초청하는 소리이다. 손님 대접이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베품의 흐름이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로 계속되도록 이어주는 방법이다. 우리 마음에 감사가 사라지는 순간 이 거룩한 흐름은 거기서 중단되고 만다. 우리가 친철하고 공손한 몸가짐으로 사람들을 반겨주고 다정하게 대해줄 때 우리에게 흘러온 인생의 선물들은 다시 세상으로 흘러나가게 되며 그리하여 마침내 최초의 근원지로 되돌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끊임없이 흘러나와 일상 속의 베품이라는 흐름을 타고 세상으로 흘러간다. 우리는 그 선물이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 그럴 때 이 사랑은 시원인 하나님의 마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새로운 흐름의 길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네가 선 곳은 어디든지 거룩한 곳이니라 / 에드워즈 헤이즈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알고 계시므로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는데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틀림없이 알고 계십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구하면 반드시 받을 줄로 확신하고 기도하십시오. 내 아들이 대학을 다닐 때, 그는 주말마다 내가 물려 준 아주 오래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그 차를 손봐야 할 데가 없을까 검사하곤 했습니다. 어느 토요일 아침, 아들이 미적거리며 나의 서재로 들어와서 차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새 타이어가 필요한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은 나에게 돈을 좀 빌릴 수 없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그 말을 못해 요점은 피하고 빙빙 둘러대고 있다는 것을 제가 모를 리 없지요. ?스티브, 오늘 아침에 네 차를 점검했기 때문에 난 네가 새 타이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알고 계셨어요?? ?그렇구 말구.? 이때부터 그의 태도는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리차드 트렌취는 기도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습니다. ?기도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하시도록 그분께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다.?
기도는 크리스천의 비밀무기 / 로널드 던
나는 구원 받았는가?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이다. 사람이 구원받고서 의심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렇다면 의심이 좋은 것인가? 아니다. 통증이 육체에 고통을 주듯이 의심은 영혼에 해악을 끼친다. 통증은 하나의 경고요, 어딘가가 탈이 났다는 신호이다. 당신에게 의심이 있다면 설사 당신이 하나님의 거듭난 자녀라 할지라도, 그러한 의심들은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표시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때때로 의심을 품을 수 있다. 한번은 어떤 여자가 무디에게 와서 자신은 이십오 년 전 구원을 받은 이래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때 무디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의심스럽군요.? 무디가 한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마치 당신이 내게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애드리언 목사님, 제가 결혼한 지 이십오 년이 되었는데 배우자와 한 번도 말다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정말로 결혼했는지 의심스럽군요.? 당신이 배우자와 말다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나는 다만 당신이 의심을 제거하고 구원의 확실성과 확신을 갖게 되기를 원한다.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은 내가 과거에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지금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 / 애드리언 로저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풍족하다
갑작스런 유혹이 다가올 때, 당신은 구원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 멈추는가, 아니면 그것을 이기고 승리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가? 누군가가 말했다. ?유혹을 받으면 그것으로부터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지를 묻지 말고,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물어라.? 만약 당신이 악한 생각들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면, 내재하시는 그리스도는 진실로 우리의 생각들도 지키실 수 있다는 약속을 요구하라. 노련한 기독교 용사인 웹 페플로우 목사를 승리의 삶으로 이끈 것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말씀이었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엄청난 슬픔을 겪은 후, 그는 이 말씀을 주제로 하여 설교를 준비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짐을 주께 맡길 수 없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외쳤다. ?오 하나님, 나에게 닥친 이 큰 슬픔을 감당하기에 흡족한 당신의 은혜를 나는 찾지 못하겠나이다. 부디 흡족하게 해주소서.? 그는 무릎을 꿇고 이 기도를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그러다가 그는 눈물어린 눈으로 벽난로 위에 있는 빛나는 장식판을 보게 되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순간 그는 자기의 잘못을 알아차리고 외쳤다. ?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구나. 이미 나에게 있는 것을 하나님께 요구하다니! ? 그리고 그는 일어나서 주를 의지했다. 우리는 승리의 삶에 들어가는 문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승리의 삶 / 미지의 기독교인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담대함
하나님의 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못에 찔리셨고, 능력으로써 우리를 붙들어주실 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채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신다. 내가 의지하던 것들을 모두 떠난 상태에서 하나님 앞에 단독으로 섰을 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만날 수 있다. 모든 것이 파멸 직전에 놓인 듯해도 예수님의 이 사랑으로 인해 나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 나를 한 동료로 인정해주는 의미에서 내 어깨를 툭툭 쳐주는 사람이 없어도, 나를 친구라고 부르며 나를 감싸주는 손길이 없어도, 나를 소중히 여기노라 하며 능숙한 입맞춤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내가 죽을 때 나의 이마를 어루만져줄 사람이 없어도 나는 살아갈 수 있다. 나의 장례식에 기도를 베풀 교회의 손길이 내게 미치지 않아도 나는 살아갈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의 도움의 손길이 없어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주시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것은 달콤한 그 어떤 것이 아닌 강력한 힘이다. 그것은 바로 나를 보살펴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담대함이기도 하다. 그 담대함이란 당신의 존재를 바로 인식하는 것으로서 당신이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느낀 이 모든 것은 ?경건?이라기 보다는 ?담대함?이다.
너를 괴로움에서 자유케 하리라 / 루이스 B. 스미디즈
마음의 싸움에서의 승리
몇 년 전에 쉘리라는 학생이 영적 갈등 해소에 관한 나의 강의를 들었다. 그 강의가 끝난 후 쉘리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왔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나의 지위와 권위를 알지 못했고, 나를 속이는 사탄의 능력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항상 두려워했습니다. 내 마음은 적대적인 생각과 노한 생각으로 뒤덮혀 있었습니다. 나는 죄의식을 느꼈으며, 내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얼마나 많은 속박을 받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탄의 공격을 인식하며 실제로 대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는 두려움 때문에 위축되지 않으며 나의 마음도 어지럽지 않습니다. 왜 전에는 이 모든 것을 알지 못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선생님께서 아시듯이 나는 미혹되어 있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쉘리처럼 영적으로 분리되어 일상생활에서 패배하고 있다. 이런 싸움을 하고 있는 신자들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해주시고, 그들을 싸움에서 해방시켜주실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x마음의 어두움을 몰아내라 / 닐 앤더슨․대이브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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