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모음

십자가 치유능력-김영한

열국의 어미 2010. 5. 25. 00:39

 

 

 

하나님을 만나려면 언약의 말씀 속에서(숭실대 대학원장 김영환 교수)

 

하나님의 말씀은 언약의 말씀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장막, 언약궤가 있는 곳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의 말씀 속에서 만난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국 장로교의 시초가 되시는 분은 길선주목사님입니다. 그래서 조선 기독교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그분이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도교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후에 선교사의 전도를 받게 되었는데 길선주는 그 이후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이렇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예수가 인류의 참 구주이신 것을 알려주시옵소서."

그러자 갑자기 옥피리같은 소리가 땅을 진동하더니 공중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길선주야! 길선주야! 길선주야!"

세번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성령이 마음에 임재하는 순간

"내 죄를 사하여 주시고 나를 다시 한번 살려주시옵소서."

그는 눈물로 기도하였고 넘치는 기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은 새벽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새벽예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도교를 믿었기 때문에 도교에서 하는 것처럼 새벽기도를 시작한 것이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새벽기도 전통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읽을 때 말씀 가운데 언약의 하나님으로 다가오며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십니다.

 

 

진정한 기도는 남을 위한 것입니다 (김영한 교수)

 

기독교의 기도생활은 불교와 다릅니다. 불교의 기도는 무소유와 무욕을 말하기 때문에 소유도 없고 욕심도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무소유와 무욕이 아닙니다. 소유할 수 있고 욕구충족을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웃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은 일본과 미국과의 전쟁이었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다르게 평가합니다. 2차 세계대전은 신의 사업이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신도(神道)와 태양신이 미국과 연합군들이 섬기는 기독교 하나님과의 상황대치였다는 것입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일본이 가미가재로 자살공격을 할 때, 사람들은 자기의 신들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옛날 몽고족이 쳐들어 왔을 때 태풍이 불어와 몽고족을 물리친 것처럼 신풍이 와서 적을 무찌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미국사람들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기독교인들의 기도와 신도의 기도 내용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기도는 단지 신이 와서 적군을 무찌르게 해달라는 기도였지만 기독교 연합군들은 상대방이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 해달라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타인지향적인 기도였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참되고 완전한 기도는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기도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것입니다.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2006년 봄에 상영된 뮤지컬 '요덕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 뮤지컬은 북한의 함경남도에 있는 정치범 수용소 ‘요덕’의 참혹상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직간접적으로 그 실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북한의 인권과 아픔을 너무나도 무시했습니다.

불쌍한 북한 동포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 나라와 민족, 그리고 이웃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는 좀더 성숙해 질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쳐날 것입니다.

 

 

"참된 기도" (김영한 교수 )

 

우리의 기도는 이교도와 같이 자기수양이나 명상이 아닙니다.

명상은 자기를 극대화 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자기가 죽고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하여 성부에게로 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의 모범을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자기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22:42에 보면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진정한 기도는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관철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와 이교도 기도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무속적 기도는 자기의 욕망을 성취하는 것이며 이것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고 열정을 다하는 것입니다. 무당들의 기도를 보면 굿판의 어디까지나 재물이 해마다 늘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무당들은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기도에는 삶과 윤리에는 변화가 없고 자기의 소원만 성취되면 된다는 것이 무당의 기도이고 이방인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도는 자기의 욕망의 성취가 아니라 욕망의 포기를 말합니다. 어거스틴은 참되고 완전한 기도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기도는 나의 유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입니다. 받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는 것입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당면한 시련과 고통과 죄와 죽음 가운데 찾아와 주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는데 있어야 합니다.

 

지구상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알려져야 할 이야기가 바로 북한 요덕수용소의 참혹상입니다. 그 내용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분단으로 갈라진 우리의 반쪽땅, 함경남도 요덕 관리소에 부는 바람은 한 맺힌 죄수들의 넋두리요 그곳을 흐르는 물소리는 통곡소리다. 달아나는 쥐 한 마리에 죄수들은 온 몸을 던진다. 수령의 사진을 잘 보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먹고살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는 이유로 특별 독재대상이라 불리는 거대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 개나 돼지만도 못한 짐승의 삶을 강요받아야 하는 정치범 수용소의 한 맺힘을 통곡하려 한다."그리고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남조선에만 가지 마시고 공화국 이곳 요덕에도 와 주소서 아버지 제발!" 우리는 이들을 위한 기도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속히 평화 통일이 올 수 있도록 말입니다.

 

 

십자가 치유능력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가까이 계십니다. 제가 최근에 연구하고 있는 독일의 신학자가 한 분 있습니다. 헬무드 튈르케라는 목사이며 신학자인데, 독일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매우 유명합니다. 이 신학자는 신경이 신축되는 질병으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치유되지 않는 질병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의사가 고통을 줄이는 물약 하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성 금요일을 맞은 어느날입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그는 물약을 먹으며 십자가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고쳐주시던지 데려가시던지 해주세요. 너무 고통스러워서 살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를 보며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님 모습이 환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후 그의 병은 기적적으로 치료받았습니다.

기적체험이후 다른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달리 살아있는 신학을 발표하였고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설교할 때는 많은 성도들이 모여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고치신 질병들은 신약시대에 의사들이 고칠 수 없는 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의사의 치료가 불가능할 때, 곧 막다른 골목에서 십자가를 향하여 기도할 때, 또는 사업의 위기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십자가를 향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어떠한 환란이나 질병이 우리를 죽음의 문턱으로 몰아간다 해도 예수님의 사랑은 모든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올바른 세속적 신앙의 소유" (김영한 교수)

 

1940년에 미국에 세 명의 20대 복음주의 설교자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템플턴과 클리포드와 빌리그레함이었습니다. 이들 젊은 설교가들은 그 당시 복음적인 설교를 통해 많은 영혼을 구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후 하나의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템플턴은 복음적 설교를 그만두고 세속적인 칼럼리스트로 직업을 바꾸었고, 클리포드는 마약과 술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어 어느 여인숙에서 쓸쓸히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반면 빌리 빌리그레함은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를 유지했으며 세속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60년이 지나도록 하나님의 종으로, 미국의 정신적 지도자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결과였습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신앙을 지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본회퍼는 종교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한계상황에서 기도하지만, 사실 믿는 자들은 삶의 한복판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세속적인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속적인 신앙은 세상과 타협하는 신앙이 절대 아닙니다. 바로 믿는 자들이 삶의 한복판에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요 수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한 요한 웨슬리도 옥스포드 대학에서 신성클럽을 조직, 거룩한 습성을 익혔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깨어 있으면서 올바른 세속적 신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요?

 

마가복음 14장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골로새서 4장 2절에도 기도를 항상 힘쓰고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로 깨어 있을 때 육신의 소욕과 탐심 등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를 하면 세속을 이기는 동시에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일이 잘 되었을 때 뿐만 아니라 하던 일이 잘못되어도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한다는 주권적인 섭리를 알기 때문에 세상의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올바른 세속적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료: 강남 금식기도원 '명사칼럼'(김 영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