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모음

예화: 신앙의 용기

열국의 어미 2010. 6. 2. 14:02

 

 

 

자기 기준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펜실베니아로 가는 중앙 보도에 층계가 있다고 합니다.

이 층계는 실력과 성실성이 널리 알려진 "옴스테드'라는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층계에서 넘어지는 사람이 유난히 많았다고 합니다.

한번은 그 층계에서 넘어져 부상한 한 시민이 그를 찾아가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옴스테드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 층계를 건축하기 위하여 내 집에 나무층계를 만들어놓고 오르내리며 오랫동안 실험한 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하자가 있을 리 없습니다. 좀 조심해 걸으시지, 제 책임이 아닙니다."

옴스테드의 말에 부상한 사람은 화가 치밀었으나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한데 그 시민이 옴스테드를 살펴보니 그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아니 옴스테드씨, 당신의 한쪽 다리가 많이 짧군요"

 

 

명문대 입학조건

 

미국에 이민해서 살고 있는 한인 2세가 명문 컬럼비아대 의과대학에 지원했습니다.

공부도 잘해서 SAT 시험에 만점을 받았습니다.

집안 형편도 부유해서 무난히 합격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불합격 통지서가 날라 왔습니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귀하의 성적은 아주 우수합니다. 가정형편이나 여러 조건들도 만족스럽습니다.

그런데 귀하의 서류 어디를 보아도 헌혈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 헌혈한 경험도 없는 귀하가 어떻게 환자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귀하는 의사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좋은 것을 보는 눈

 

아동발달 분야의 권위자인 아놀드 게젤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린이는 한 쌍의 눈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시각 세계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그 세계는 직접 만들어야 하고 그것은 자기만의 창조이다."

눈은 가장 중요한 감각입니다.

분별력을 주는 기관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들어오는 정보의 80%는 눈을 통해 인지됩니다.

지금도 대부분 활자화된 언어에서 우리는 정보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가 삶을 좌우하게 됩니다.

세상에 추한 것이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좋은 것을 취사선택하여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은 복입니다.

 

 

장기려 박사와 서원

 

일제치하 때 한 젊은이가 의대 입학시험을 보면서 하나님께 이런 서원을 했습니다.

" 이 학교에 입학시켜 주시면 평생 불우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몸을 바치겠습니다."

졸업 후에 젊은이는 당시 가장 뛰어난 수술 실력을 소유한 백인제 박사 밑에서 수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서원대로 가난하고 병든 이웃을 위해 무료진료소인 복음병원을 개설해 영세민 의료구호 사업에 전 생애를 바쳤습니다.

29세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이기도 했던 이 사람은 정작 집 한 채 없이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다가 성탄절 새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장기려 장로입니다.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시편 116:14)

 

 

감사의 조건 세 가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미국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활조건은 72가지가 있었고

그 중에 절대 필요한 것이 18가지가 있었는데 오늘에 와서는 그것이 496가지로 늘었고

그 중에서 절대 필요한 것은 28가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풍부한 생활을 향락할 줄 알면서도 그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는 감사할 줄 모름을 회개해야 합니다.

파아핀이라는 사람은 세 가지만 있으면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첫째는 일용할 양식이요, 둘째는 몸의 건강, 셋째는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황소와 노새

 

어느 부잣집의 황소 한 마리와 노새 한 마리가 먹는 것도 같이 먹고 쉬는 것도 같이 쉬며 늘 함께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황소는 꾀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주인이 노새보다 나에게 더 힘든 일을 시키는 것 같아, 게다가 일도 더 많이 시키는 것 같단 말야."

황소는 앞으로 일을 안 하겠다고 결심했고, 주인이 일을 하라고 끌어내도 외양간에서 꼼짝도 안하고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며칠, 황소에게 슬슬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고 돌아온 노새에게 물었습니다.

"노새야 내가 일하지 않고 놀고 있는 것에 대해 주인이 아무 말도 안하더냐?"

"아니, 아무 말도 없었어"

"정말 아무 말도 없었어?"

"응, 그런데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인이 소를 잡는 백정하고 오랫동안 얘기하더라."

 

 

죽고자 하면 산다

 

안티고노스가 유심히 그 부하를 눈여겨보고 그의 병을 고쳐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병이 왼치되었습니다.

또 전쟁이 일어나서 그 병사도 출전했습니다.

그런데 용맹스러움이 전과 같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병이 있을 때는 그렇게 용감하더니 병을 고쳤는데도 왜 그 용맹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그때는 기왕 죽을 몸이니까 목숨 생각하지 않고 싸웠지만

병을 고치고 나니까 목숨에 애착이 생겨서 몸을 사리게 되었습니다"

 

 

참된 신앙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앤드루 뉴버그 교수는 "종교는 뇌의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깊은 명상에 빠졌을 때 대뇌의 한 부분인 두정엽의 활동이 줄어든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두정엽의 활동이 정지되면 사람들은 우주와 하나가 된 듯한 몰아의 경지에 바지게 된다."

이에 대해 캔자스 대학교의 대니얼 뱃슨 교수는 "두뇌가 종교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것은 피아노가 음악을 만든다고 강변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변했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이란 하나님을 창조자로 믿고 예배하는 인간의 기본 정신에서 시작됩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외할 때에 비로소 인간의 참된 모습을 되찾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입니다.

 

 

불을 꺼뜨리지 말라

 

제 2성전 시대에 로마가 성전을 둘러싸고 "성전 번제단에 불을 피우기 위하여 나무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번제단 위에 불을 꺼뜨리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레6:8)

물샐틈 없는 감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아운 일은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몹시 두려워하는 가문 대문이었습니다.

그 가문 사람들은 벌레 먹지 않은 온전한 나무를 잘라서 사닥다리 옆에 감쪽같이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닥다리를 메고 당당하게 들어갔습니다.

보초가 못 들어가게 하면 "우리 집 나무 위에 새 집을 놓으려는 것이오. 사닥다리 없이는 도저히 할 수가 없소이다"라고 말해

로마군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성전으로 들어간 그는 사닥다리 옆에 붙어 있는 나무를 떼어내 번제단 불 속에 넣었습니다.

이렇게 반복하여 나무를 공금했더니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가문을 브나이 샬마이(Bnai Salmai)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사닥다리 가문(The Ladder Family)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황제의 명령보다 강한 것입니다.

 

 

사랑의 약속

 

2차 세계대전 중에 어떤 젊은 비행기 조종사가 한 여성과 펜팔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주는 허무함, 출격 때마다 느기는 불안과 긴장 가운데서도 조종사는 그 여자가 보내는 편지에서 위로를 받고 삶의 용기를 가지곤 했습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두 사람은 만날 약속을 했습니다.

그는 기차를 타고 약속한 역에서 내렸습니다.

그녀는 꽃 한 송이를 들고 있기로 하였습니다.

조금 전에 웬 멋장이 아가씨가 내 손에 이 곷을 쥐어주면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면 건너편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 달라고 하던데요"

사랑의 약속이라는 단편소설입니다.

 

 

생명에 대한 감사

 

심장은 하루애 자그만치 103,689번 뜁니다.

몸속의 혈액은 놀랍게도 하루에 168,000,000만 마일을 달립니다.

그리고 나는 하루에 숨을 몇 번이나 쉬는가 하면 무려 23,040번을 쉽니다.

내가 무슨 수고를 해서 심장이 그렇게 많이 잘 뛰어주고, 내가 달리라고 해서 혈액이 그 먼 거리를 달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또 내가 아무런 수고를 안해도 나의 폐는 그렇게 여러 번 호흡을 해줍니다.

이 모든 일에 약간의 차질만 와도 내 생명에는 금방 이상이 옵니다.

이 뿐입니까? 당신은 하루에 두뇌세포를 자그만치 700만 개를 사용하여 사는 것입니다.

창조주 우리 하나님의 신비여!

 

 

신앙의 용기

 

일제때 어느 노 신앙인이 신앙적 이유 때문에 상당한 아픔을 당했습니다.

매일 신사참배 강요를 감당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노인은 신경통으로 무릎관절을 심하게 앓고 있었습니다.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면 감옥에 가야 합니다.

엄동에 감옥에 가면 신경통이 악화되어서 병신이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평생 걷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심각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생각 끝에 노인은 단호하게 신사참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갔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용기있게 감옥행을 결심한 것입니다.

그해 추운 겨울을 감옥에서 지냈습니다. 우려했던 무릎은 아무 염려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좋다던 약을 써도 낫지 않던 신경통이 감옥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말끔히 나아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했는가 봅니다.

 

 

십자가와 감사

 

미국의 흑백갈등이 깊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기차에서 백인과 흑인사이에 사움이 벌어졌습니다.

백인이 칼을 던져 흑인을 죽이려 할 때 옆에 있던 백인 목사가 손을 들어 칼을 막아 주었습니다.

칼은 목사의 손에 꼽혔고 피가 낭자하게 흘렀습니다.

싸움은 멈추어졌고 흑인은 목사의 희생으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고마움을 느낀 흑인은 일생 그 목사의 곁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종종 일에 싫증이 나면 흑인은 불평과 원망을 하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목사는 칼 맞은 자신의 손을 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 흑인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었는데 그 손은 바로 자신의 생명을 구원한 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십자가를 볼 때 어떤 생각이 듭니까?

 

 

전도

 

어떤 목사님이 비행기를 탔는데 옆 좌석에 앉은 젊은이가 구면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시작하여 십자가의 죽음, 부활을 전하며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전혀 무감각, 무반응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무척 실망했습니다.

목사님은 집에 돌아오는 내내 청년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고, 무척 서운했습니다.

목사님은 다짐했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게 될 거다. 그땐 꼭 전도하리라."

목사님이 그 청년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저는 목사님 옆에 앉았던 청년의 아버지입니다. 아들의 바로 뒷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제게 전화를 하셨나요?"

"목사님께서 아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기독교에 관심이 생겨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더 알기 원합니다"

 

 

물고기의 IQ

 

물고기의 IQ는 0.3이라고 합니다.

다른 물고기들이 낚시에 걸려 물 밖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서도 또 입질을 합니다.

그리고 또 끌려가는 동료의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고서도 여전히 입질을 계속합니다.

그러면 정치인의 IQ는 얼마나 될까요? 역시 0.3이라고 합니다.

동료 정치인이 뇌물을 먹고 글려가는 것을 보고도 또 뇌물을 먹습니다.

그래서 10년 전에도, 작년에도, 오늘도 끌려가는 정치인은 여전히 발생합니다.

그 일은 내일도,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러면 보통 사람들의 IQ는 얼마나 될까요? 역시 0.3을 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지난날의 은혜를 곧 잊어버리고 옆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 복받는 것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소원

 

헤르만 헷세의 작품 중에 "한 가지 소원"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한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떤 노인이 나타나서 아기 엄마에게 아기를 위한 서원을 물었습니다.

아기의 엄마는 "이 아이가 자라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자라면서 정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사람을 받은 줄만 알았지 사랑할 줄 몰랐고 점점 교만한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노인을 다시 만난 어머니는 간곡히 소원을 말했습니다.

"제게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제 아이가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을 줄줄ᄅ 아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사랑의 비밀은 받는 것보다 나눠줄 때 그 기쁨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출처: 예화 500. 2집 최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