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문학

[스크랩] 내가 생각하는 좋은 동시란?/ 이준관, 서정홍

열국의 어미 2018. 1. 28. 23:53

[내가 생각하는 좋아하는 동시란?]

 

동심이 살아 숨 쉬는 생화 같은 동시

이준관

 

  최근에 작고한 문인들의 작품을 다시 찾아 면밀히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고한 시인 중 어떤 시인의 작품은 시간의 풍화를 견뎌내고 지금도 여전히 생기를 띠는 반면에

어떤 시인의 작품은 생전의 명성에 비하여 빛이 바랜 것을 보고 참으로 착잡한 감회에 젖었다.

윤석중은 말의 유려함과 음악성과 동심적 발상에서, 강소천은 어린이다운 생각과 느낌에서,

이원수는 가난한 아이와 소외된 아이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서. 박목월은 시적 발상과

자유분방한 표현에서 각각 도드라진 개성과 특성이 있었고 또한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이들은 각기 개성과 특징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동심이 깃들어 있다는 점이었다. 어린이다운

생각과 느낌, 아이들의 삶과 체험을 담고 있다는 점이 공통적이었다. 어른스런 생각을 담고 있는

작품은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읽어보니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동심적인 발상과

표현, 아이들의 삶과 체험을 담은 작품은 여전히 싱싱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동시는 바로 이런 동심이 깃들어 있는 작품이다. 아이들의 삶과 체험을
담고 있으면서도 유치하지 않은 작품, 아이들의 일상을 담고 있되 지나치게 산문적이지 않고

 어린이 시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유치하지 않은 작품을 나는 좋아한다. 아이들의 일상을

다룬 작품들을 보면 아이들이 주체가 아니라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체인 경우가 많다.

 나는 아이들의 기쁨 슬픔 아픔 분노 등 아이들의 진실한 감성을 담은, 그리고 아이들이

조역이 아니라 아이들이 진정한 주체가 되는 작품을 좋아한다. 자연과 사물을 다룬 작품들도

동심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쓴 동시를 좋아한다. 어른의 관념으로 그럴듯한 의미가 담겨 있는

듯 포장한 작품 대신에 동심의 통찰력, 동심의 혜안으로 자연이나 사물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여 보여주는 작품을 좋아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동시는 생화처럼 싱싱한 작품이다. 나는 동시를 보면 먼저 시의 냄새를

맡아 본다. 그리고 생화인지 조화인지를 감별해 본다. 요즘은 조화들이 많다. 아이들의

생활이든 자연이든 진정한 체험이나 교감에서 나온 생화 같은 작품이 아니라 남의 작품에서

힌트를 얻어, 또는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을 통해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소중한 가치나

따스한 배려를 이야기하는 조화 같은 작품들이 많다. 책상이나 도서관에 앉아서 읽은 책을

통해 얻은 내용이나 머리로 만들어 내는 시는 산뜻하기는 하지만 생명력이 오래 가지 못한다.

시는 운율과 비유와 의미가 생명이다. 특히 동시에서 리듬은 아주 중요하다. 요즘 동시들은

 리듬에 너무 무관심하다. 정형적인 틀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리듬이 살아 있는 시를 나는

좋아한다. 그리고 또한 참선한 비유와 새로운 의미가 담겨 있는 동시를 좋아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동시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것이 동시에 대한 정답은 아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는 문학에는 정답이 없다. 실험하고 모색하고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문학의 정답이다. 문학에 정답은 없지만 동시에서는 동심과 시심이 함께

담겨 있어야 하고, 싱싱한 생화 같아야 한다는 점은 유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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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긋불긋 꾸미지 말고, 사람냄새 땀냄새 그윽한

                           서정홍

 

“지금껏 많은 시인들이 / 시의 참뜻을 생각지 않고 / 겉으 로 부질없이 울긋불긋 꾸미며 / 한때의 취미만을 찾고 있 누나. // 시의 내용은 진리에서 나오거늘 / 덤빈다고 해서 찾지 못하리. / 찾기 어렵다고 지레짐작하고 / 저마다 화려 함만 일삼느니라.”

 

  위 글은 <우리 겨레의 미학사상>(보리출판사) 40쪽에 있는 ‘시에 대하여’(이규보 씀) 가운데 한 부분을 옮겨 쓴 것입니다. 좋은 시를 쓰고 싶은 분은 꼭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듯합니다. ‘시의 참뜻’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책이라 생각하니까요.

  ‘경제논리’에 넋을 빼앗긴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우리 겨레를 먹여 살려온 논과 밭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농업과 농촌이 무너지고, 자연이 파괴되고, 알 수 없는 무서운 병들이 사람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하며 살아왔습니다. 모른 척 하고 살아야 마음이나마 편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알게 모르게 어지럽힌 세상은 이제 아무 죄 없는 어린이들이 모두 짊어지고 가야 할 몫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세상을 만든 죄인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동시’가 어떤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농부는 누가 알아달라고 농사짓는 게 아닙니다. 시인이 누가 알아달라고 시를 쓰는 게 아니듯이 말입니다. 누가 알아준다고 내 삶이 넉넉해지고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내 삶이 초라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나’는 ‘나’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부질없이 울긋불긋 꾸미’지 말고 서툴더라도 당당하고 ‘시의 참뜻’이 담겨 있는, 사람 냄새 땀 냄새 그윽한, 그런 시가 좋은 시라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과 자연을 해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다 소중합니다만, 그 가운데서도 ‘꼭 필요한 사람’은 농사를 지어 사람들의 목숨을 이어주는 농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을 마치고 편히 쉴 수 있도록 집을 지어주는 사람이고,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옷과 신발과 온갖 물건들을 만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힘든 일을 하는 농부와 노동자가 있어야만 우리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농부와 노동자들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농부와 노동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자꾸 줄어듭니다. 아니, 거의 없습니다.

  여태 우리는 일하지 않는 사람이 쓴 글을 읽고 배우며 살아왔으며, 그래서 일하는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사람의 생각에 놀아나게 되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 생각들에 중독이 되어 ‘어떻게 하면 일하지 않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까?’ 머릿속에 그리며 살았습니다. 이 따위 어리석고 비겁한 생각을 지니며 여태 살아왔고, 지금도 그런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어찌 땀 흘려 일을 한다는 것이 신나고 즐겁겠습니까. 땀 흘려 일하지 않고 먹고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기 때문입니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땀 흘려 일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좋은 시를 읽고, ‘시의 참뜻’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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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동시문학> 여름호에서

출처 : 한국동시문학회공식카페
글쓴이 : 설목雪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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