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문학

[스크랩] 2010 동시 당선작[부산/대구매일/강원/조선/한국일보]

열국의 어미 2018. 1. 29. 00:07

[2010 부산일보 신춘문예-동시]


   딱따구리가 꾸르르기/장영복


내가 산에서 아아아, 메아리 부르던 날,


딱따구리 한 마리가 입속으로 날아들었다.


나는 딱따구리가 날아가지 못하게 얼른 입을 다물었다.


딱따구리는 그날부터 내 뱃속에서 살았다.


힘들게 나무를 쪼아 벌레 잡을 필요도 없고


힘센 황조롱이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총 든 사냥꾼이 지나갈까봐 고개를 요리조리 살필 일도 없이 편히 살았다.


딱따구리는 딱다르르 소리 내는 것도 금방 잊었다.


어쩌다 소리를 낼 때가 있는데,


내가 미처 밥을 먹지 못하면 꾹꾸르르 꾸르르르 소리를 낸다.


딱따구리는, 밥을 달라는 건지 벌레를 잡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로 우는 꾸르르기가 되었다.




꾸르르기는 넷째 시간 끝나는 종이 울릴 무렵 꾹꾸르르 꾸르르르 운다.


나는 꾸르르기가 울면 하아 입을 벌리고 맛있는 밥을 먹여준다.


밥을 먹으면 꾸르르기는 금방 얌전해진다.


내가 졸려서 하품을 해도 날아가지 않는다.


내 뱃속에서 디룩디룩 살찐 새가 되어,


넷째 시간 종이 울릴 무렵 꾹꾸르르 꾸르르르 하고 운다.




지금 내 뱃속에는 딱따구리 아닌 꾸르르기가 살고 있다.




<대구매일 동시 당선작>



중심/김현욱



다리 한쪽이 부러진

나무의자 하나

쓰레기장 구석에 기우뚱 서 있다


흔들리지 않고

소리 내지 않고

바르게만 살아온

나무의자


단 한 번

중심을 놓치고 넘어지자

구석으로 오게 되었다


남은 다리로 뒤뚱뒤뚱

제 스스로는

처음 잡아보는 아슬아슬한

중심


하늘 한 귀퉁이가

비스듬히 내려와

나무의자에 기댄다


세상에 없던

중심이

우뚝 서 있다



<강원일보 당선작>


밥풀 묻었다/이무완



호박꽃 속 뽈뽈뽈 기어들어가


냠냠 맛있게 혼자 밥 먹고도


시침 뚝 떼고 나온



호박벌아!



입가에 밥풀 노랗게 묻었다.


엉덩이에 밥풀 덕지덕지 붙었다.



<조선일보 동시 당선작>

호주머니 속 알사탕


- 이송현



호주머니 속, 신호등 빛깔 알사탕

제각각 다른 색깔이라 달콤하다면서

왜 얼굴색은 다르면 안 된다는 걸까?

급식 당번 온 우리 엄마

검은 얼굴 보더니

친구들 모두 식판 뒤로 숨기고

멀찍이 뒷걸음질 친다, 뒤로 물러난다.

"너희 엄마 필리핀이야?"

친구들의 질문에 조가비처럼

입이 꼭 다물어지고

학교 온 우리 엄마가 밉기만 한데

엄마는 내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내 호주머니 속에 알사탕을 넣어주고

싱글벙글 웃는다.

나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머니 속 알사탕을 하나 까서

입에 무는데

"너, 어디서 왔어?" 친구들 놀림에

나는 왜 바보처럼 울기만 했을까?

"나, 한국에서 왔다!"

입 속에 굴러다니는 동글동글 알사탕

왜 자꾸만 짠맛이 날까?

눈물 맛이 날까?






[2010년]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지리산의 밤/최수진


지리산에 밤이 왔어요


엄마가 빨래 걷는 것을 깜빡 잊었어요


다람쥐 오소리 곰 멧돼지 산토끼 아기들이


엄마 몰래 마을에 내려와


빨랫줄에 걸린 옷을 하나씩 입었어요


토끼는 귀에 아빠 양말을 하나 걸치고


아기곰은 내 팬티를 입었어요


오소리는 누나의 보들보들한 블라우스를 입고


다람쥐는 엄마 모자를 꼬리에 걸치고


아기멧돼지는 할머니 통치마를 입었어요


서로 쳐다보며 하하하하 웃었어요


아기동물들을 혼내지 마세요


빨랫줄에 앉은 아기새는 모른 척


웃고만 있었어요

출처 : 부산 문예창작 아카데미
글쓴이 : 김춘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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