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문학

[스크랩] [부산일보 2009 신춘문예동화 당선작] 물수제비 / 박서진

열국의 어미 2018. 1. 29. 00:11

<부산일보 2009 신춘문예동화 당선작]


´물수제비´

박서진


이젠 어떻게 사냐던 엄마의 목소리가 내 뱃속에서 맴돌아 한숨이…
오줌이 마렵다. 금방이라도 쌀 것 같은데 눈이 안 떠진다. 엎드려서 다리를 꼬다 할 수 없이 고추 끝을 잡고 일어났다.
문을 여는데 아빠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식탁 위에는 구겨진 휴지가 쌓여 있었다.
“이제 우린 어떻게 해…….”
엄마가 휴지 한 장을 뽑으며 코를 훌쩍거렸다.
“미안해… 아이들은 우선 어머니 댁에다 맡겨 둡시다.”
아빠의 말에 아랫배가 축구공처럼 단단해졌다. 뻐꾸기시계가 문을 열고 세 번을 들락날락했다. 요즘 아빠 하는 일이 안 돼서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안방에서 들려 나오는 큰소리를 듣고 짐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까지 심각한 줄은 몰랐다.
‘나랑 수인이를 할머니네로 보낸다구?’
갑자기 아랫배가 당기면서 오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할머니네 집은 마당이 넓은 주택이다. 하지만 싫다. 할머니는 지나치게 깔끔해 우리 뒤를 따라 다니면서 청소를 한다.
‘차라리 집을 나가 버릴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잠이 오지 않았다.
문을 조금 열어 놓고 거실 쪽으로 귀를 기울였지만 문틈으로 새 들어오던 불빛이 사라지자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정경아 빨리 일어나! 지각 하겠다.”
엄마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꿈이었나?’
엄마의 표정을 살폈다. 눈이 약간 부어있는 것 말고는 평소 때와 다름없다.
“수인이 일어났어요?”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동생까지 챙기고.”
수인이를 데리고 학교에 가는 것을 보고 엄마는 현관 밖까지 나왔다.
교실은 다른 때보다 조용하다.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을 샜는지 엎드려 자는 애들도 있었다. 나도 문제집을 꺼냈다. 그런데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꾸만 눈물을 닦던 엄마의 뒷모습이 머릿속에 어른 거렸다. 이젠 어떻게 사냐던 엄마의 목소리가 내 뱃속에서 맴돌아 한숨이 되어 새나왔다.
“휴~”
“어머, 어머, 너 왜 자꾸 한숨을 쉬고 그래. 시험도 아직 안 봤는데. 무슨 일 있니?”
평소에 쌀쌀맞기로 유명한 민희가 걱정스런 투로 물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런 관심이 고마웠을 테지만 오늘은 귀찮다.
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내가 좋아하는 수학 시간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시험문제에 꼭 나올 거라는 선생님의 말씀도 건성으로 들렸다.
학교 끝나고 우리 동네에서 한 블럭 떨어진 아파트 놀이터로 갔다. 아이들이 학원에 갈 시간이라 그런지 놀이터는 텅 비어 있었다. 저쪽 편 한 쪽 구석에서 다섯 살 쯤 보이는 꼬마와 엄마가 포크레인에 모래를 싣고 달리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그 모습이 무척이나 정겹게 보였다.
‘우리가 할머니네로 가면 엄마 아빠는 어디에 있겠다는 걸까?’
발로 땅을 밀어 그네를 흔들었다. 내 마음도 그네처럼 흔들렸다. 아빠가 원망스럽다. 숨을 곳이 있다면 저 땅 깊은 곳 어디라도 숨어 버리고 싶다. 한참을 있다 어둑어둑해진 뒤에야 집으로 돌아 왔다.
“우리 아들, 시험 때라 늦네. 어서 들어 와 밥 먹어.”
나는 들어가자마자 식탁에 앉았다.
“엄마, 이번 시험에 올백 맞으면 뭐 사 줄 거야?”
수인이가 밥숟가락을 입에 넣으려다 말고 엄마에게 물었다.
“어? 그, 그게… ….”
엄마가 말을 얼버무린다. 다른 때는 올백 맞으면 원하는 건 뭐든지 사준다고 큰소리를 쳤을 텐데 말이다.
“시험 끝나면 어린이 날이잖아. 그러니까 100점 맞으면 닌텐도 사줘. 알았지?”
수인이는 엄마 얼굴 가까이 다가가 눈을 맞추며 다짐을 시킨다. 바보 같으니라구!
“야! 그거 사지마. 처음에만 재밌지. 조금하면 질려.”
“오빠는 그런 거 많이 해봤으니까 그렇지. 나도 갖고 싶단 말이야.”
엄마가 슬며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텔레비전을 틀었다. 어느 나라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어쩐지 우리 집 같아 텔레비전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시험을 봤다. 그런데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제일 못 봤다. 마음이 복잡하니 문제까지 복잡하게 보였다. 손에서 진땀이 났지만 할 수 없이 아무거나 찍었다.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데 수인이가 현관문을 열어주며 뽐을 냈다.
“나 올백이야!”
“그래서?”
“어린이날 선물까지 합쳐서 닌텐도 사달라고 할 거야.”
“이 바보야! 지금이 어느 땐데…….”
수인이가 입술 끝을 한쪽으로 올렸다.
“오빠는 시험 망쳤지? 그래서 선물 못 받을 까봐 그러는 거지?”
“어휴! 저 철딱서니 없는 녀석 같으니라구.”
엄마가 만날 나에게 쓰던 말이 튀어 나왔다.
“왜? 나 지금 엄마한테 전화 걸어서 자랑할거란 말이야. 아빠한테는 통닭 사달라고 해야지.”
수인이가 수화기를 들었다. 나는 달려가서 빼앗았다.
“바보야, 내 말 좀 듣고 해!”
수인이가 나를 노려보며 앉았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리고 혼란스러웠다. 혹시 그날 들었던 것들이 사실이 아닐지도 몰라. 사실이었더라도 지금쯤 다 해결 되지 않았을까?
“확실히는 모르는데…….”
내 이야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수인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어쩌면 오빠가 잘 못 들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만 울어. 그리고 할머니 집에는 마당이 넓어서 네가 좋아하는 개도 기를 수 있잖아.”
“다 싫어. 엄마랑 떨어져서 살면 차라리 죽어 버릴 거야!”
눈물을 뚝뚝 흘리던 수인이가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세수를 하고 나왔다.
“너 표정이 왜 그래? 시험 못 봤구나? 다음에 잘 보면 되지 뭘 그렇게 풀이 죽어있니.”
저녁때쯤 들어 온 엄마가 수인이를 보고 말했다.
“아니야, 올백이야. 우리 반에서 나만 혼자 다 맞았어.”
“정말? 그런데 왜 자랑 안 했어?”
“생각해 봤는데, 나 아무것도 안 사줘도 괜찮아. 우리 집에 벌써 좋은 거 많잖아. TV도, 냉장고도, 컴퓨터도 다 있고 말이야. 닌텐도 같은 거 필요 없어.”
“수인이가 철들었나 봐요. 친구 걸 해봤는데 재미가 없대요. 그렇지?”
내 말에 수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인이는 텔레비전을 켜고 소파위에 앉아 무릎을 모았다. 나도 그 옆에 앉았다. 엄마가 도마질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또각또각 소리가 이렇게 정겨운 소리인 줄 몰랐다. 하지만 착착 썰리는 소리가 어쩐지 아슬아슬하게도 느껴졌다. 수인이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자꾸 창밖을 보면서 손톱을 깨물었다.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 와보니 우리집 물건에 온통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다.
“그래도 이건 안 가져간대.”
수인이가 커다란 곰돌이 인형을 껴안았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가 방으로 들어갔다.
저녁 늦게야 돌아 온 아빠가 우리를 식탁으로 불렀다.
“미안 하구나. 당분간 네가 수인이에게 엄마 아빠 역할을 해야겠다. 고생시켜
서…….”
“걱정 마세요. 그런데 할머니네 오래 있는 건 싫어요.”
“알았다. 고맙구나.”
수인이를 데리고 엄마가 방으로 들어가자 아빠는 거실로 나와 혼자 술을 따라 마셨다. 나도 방으로 들어 왔다. 지금 보니 컴퓨터에도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다. 불을 끄고 누웠다. 천장에는 내가 어렸을 때 붙여 주었던 별자리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엄마는 이 집을 정말 좋아했다. 매일 쓸고 닦는 게 낙이라고 했는데… 참으려고 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일어나!”
아침이 되자 엄마가 다른 날과 다름없이 내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우리 소풍가자.”
식탁 위에는 벌써 김밥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수인이가 청바지를 입고 거실로 나왔다.
아빠가 운전을 하고 가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하면 어쩐지 이 소중한 시간이 다 사라질 것만 같았다. 우리 네 식구가 이렇게 같이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소중한 줄은 정말 몰랐다. 내일이면 가족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야 하다니…….
수인이가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댔다. 수인이가 불편하지 않도록 몸을 살짝 틀었다. 수인이는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았다.
아빠가 데리고 간곳은 오강바위다. 2년 전에도 한 번 와본 곳이다. 6.25때 네 명의 사람들이 숨어 목숨을 구했다는, 커다랗고 깊이 파인 오강 바위 옆으로 널찍한 바위들이 펼쳐져 있었다. 며칠 전에 비가 와서 그런지 물 흐름이 빨랐다.
엄마가 바위 위에 먹을 것을 꺼내 놓았다. 배는 고팠지만 손이 안 갔다. 수인이도 물줄기만 바라보았다.
“봄 햇살이 정말 따사롭네.”
아빠가 바위에 누웠다. 엄마도 아빠 옆에 누웠다. 나도 아빠 옆에 누웠다. 수인이도 엄마 옆에 누웠다.
“햇빛이 엄마가 새로 사다줬던 이불 같아.”
수인이가 눈을 감고 말했다.
“따뜻한 이 이불을 매일 같이 덮고 자면 좋겠다.”
엄마가 팔을 둘러 수인이를 꼭 끌어안았다.
“저 오강 바위 말이야.”
수인이가 검지 손가락을 폈다.
“그 속에라도 같이 살면 좋을텐데…….”
엄마 아빠의 한숨 소리를 삼킨 물소리가 크게 들렸다. 산에서 소쩍새 우는 소리도 들렸다.
아빠가 일어나 민박촌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무슨 연수원처럼 보이는 그곳은 마당이 우리 학교 운동장처럼 넓다.
시간이 얼마가 흘렀는데도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아빠가 걸어갔던 곳으로 찾아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저만치 아빠가 보였다. 아빠는 핸드폰 전화를 하고 있다. 나는 아빠가 전화를 끊을 때까지 기다렸다.
조금 더 있으니 아빠가 전화를 끊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손을 흔들었다. 햇살에 비친 아빠의 얼굴이 어쩐지 환하게 보여 나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엄마랑 수인이는 물수제비 뜨기를 하고 있었다.
“물살이 이렇게 빨리 흐르는 곳에서는 잘 안 될걸.”
아빠는 자리를 옮기고는 납작한 돌들을 한쪽에 모았다.
“자 이렇게 말이다.”
아빠가 납작한 돌 하나를 손에 쥐고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인 뒤 물 위로 던졌다.
통. 통. 통. 통. 통. 통. 통.
물에 빠질 듯, 빠질 듯 하던 돌맹이가 물 위를 일곱 번이나 튕겨 올랐다.
“와!!”
우리가 손뼉을 쳤다.
“아빠는 말이다. 다시 튕겨 오를 거다. 그래서 말인데…….”
아빠가 주먹을 말아 입에 대고 큰 기침을 두 세 번을 했다.
“할머니가 방 얻을 돈을 얻어 주시겠다는구나. 그래서 떨어져 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정말이요?”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살던 곳보다 훨씬 작은 집에서 살 거야. 컴퓨터도. 피아
노도 없고.”
“그런 건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아요. 엄마 아빠랑만 같이 살면 다 통과예요!”
우리는 모두 물을 튕기며 소리를 질렀다.
“배고파요!”
“저두요!”
엄마가 싸온 김밥이랑 과일이 순식간에 동이 났다.
밥을 먹고 아빠가 다시 물수제비뜨는 시범을 보였다. 물살을 차고 올라오는 돌멩이 위로 햇살이 찰랑찰랑 그네를 탔다.
“쑥떡 해먹으려고!”
언제 캐왔는지 엄마가 쑥 봉지를 흔들었다.
통. 통. 통. 통. 통.통.통.통....
아빠가 던진 돌멩이가 물 위를 힘차게 날아올랐다

출처 : 부산 문예창작 아카데미
글쓴이 : 먼바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