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문학

[스크랩] [2009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내 사랑 이꽃분 / 강남이

열국의 어미 2018. 1. 29. 00:11

[2009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내 사랑 이꽃분

강남이

할머니 방에서 나온 나는 신이 났다. 얼마 전 할머니가 물어본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명화야, 휴대폰 사용하는 방법 어렵냐?”
“왜?”
“많이 어렵냐고?”
“나 사 주게?”
“아니, 그냥 물어본 겨.”
할머니는 얼버무리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갑자기 휴대폰은 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뒤 이틀이 지난 후 할머니 방에서 휴대폰 사용 설명서가 나왔다. 그것도 텔레비전에서 광고하는 최신형으로. 그럼 그때 할머니가 물어본 게……. 가슴이 뛰었다. 아니, 좋아서 미치고 팔딱 뛰겠다. 할머니가 언제 사줄까? 한 번 물어볼까? 아니야, 물어봤다가 괜히. 사줄 때까지 꾹 참고 있어야지. 나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할머니를 향해 웃음을 날렸다.
“왜 실실 웃고 그랴?”
내 웃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가 쪼글쪼글한 입에 미소를 머금었다.
“할머니, 그 핸드……. 아니 아무 것도 아니네요.”
할머니에게 물어보려다 얼른 입을 다물었다. 이놈의 입! 입이 근질거려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할머니는 휴대폰을 주지 않았다. 오늘 부엌용 가위를 찾으러 할머니 방에 갔다가 공책을 발견했다.
안전을 위한 주의 사항
사용자의 안전을 지키고 재산상의 손해를 막기 위한 내용입니다.
반드시 잘 읽고 제품을 올바르게 사용해 주세요.
경고! 지키지 않았을 경우 사용자가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운전 중에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마세요.
교통사고의 위험이 있습니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관련 법규를 지키세요…….
쓰다만 공책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휴대폰 사용설명서를 죽 써내려 간 것이었다. 한 자도 빠짐없이. 할머니 글씨였다. 이렇게 많은 내용을 언제 이렇게 썼담. 아무리 휴대폰을 사준다고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 필요는 없는데. 그런데 쓰기까지. 할머니는 너무 꼼꼼한 게 탈이란 말이야. 오늘 저녁에 들어오면 휴대폰 사 놓은 거 달라고 해야지.
여섯 시가 지났는데도 할머니는 들어오지 않는다.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늦지? 빨리 와야 달라고 할 텐데. 할머닌 안 들어오고. 배가 고프다. 오늘 따라 라면도 없고. 이럴 줄 알았으면 밥 하는 거라도 배워놓는 건데. 시간이 지날수록 짜증났다. 속상해 누워있는데 현관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뛰어나갔다. 할머니 손에 먼저 눈이 갔다. 할머니 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여느 때 같으면 반찬거리라도 들려 있을 텐데. 노점상이 끝나면 꼭 맛있는 것을 사왔는데. 나는 할머니께 소리쳤다.
“뭐야, 배고파 죽겠는데 이제 오면.”
할머닌 아무 말이 없다. 예전 같으면 슬며시 웃기라도 했을 텐데. 할머니는 바로 부엌으로 갔다. 할머니가 말없이 밥을 차려왔다. 새 반찬은 아무 것도 없고 아침에 먹던 반찬 그대로였다. 투정을 부렸다.
“먹기 싫어. 반찬이 이게 뭐야?”
나는 상을 밀치고 뾰로통한 얼굴로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뒤에서 힘없이 말했다.
“할미가 예전 같지 않어.”
방으로 들어온 나는 심술이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방에서 나와 다시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왜…….”
왜 늦게 왔냐고 따지려다 깜짝 놀랐다. 세상에, 방바닥에는 화투장이 줄줄이 늘어져 있었다. 혼자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할머니 혼자.
“할머니 왜 이래? 아까는 말도 없이 늦게 들어오더니 이젠 고스톱까지 할머니 어떻게 된 거 아냐?”
할머니가 아무 말도 않고 계속 고스톱을 쳤다.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기가 막혔다.
‘할머니가 미친 거 아니야?’
결국엔 내가 화투장을 마구 흩트려놓았을 때야 할머니는 화투에서 손을 뗐다. 기리곤 곧바로 이불을 폈다. 할머니는 아기처럼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꼭 아기 같이.
“할머니 도대체 왜 그래?”
“아무 것도.”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나는 할머니가 쓰고 있던 이불을 걷어냈다. 할머니 주름살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할머니 왜 울어? 할머니가 늦게 들어와 놓고선.”
엄마 같이 따져 물었다. 아기 같이 할머니가 대답했다.
“난 무서.”
“뭐가 무섭다는 거야? 할머니 이상한 거 알아?”
“니가 보기에도 핼미가 이상혀?”
“그래!”
할머니는 고개를 푹 숙였다. 시험 못보고 선생님한테 혼나는 아이처럼. 할머니가 갑자기 불쌍하게 보였다. 내가 너무 했나? 따지러 들어간 나는 할머니의 풀죽은 모습을 보고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부엌으로 가서 밥을 먹었다. 할머니가 밥상을 그대로 두어서 먹을 수 있었다. 밥을 먹는데 눈물이 떨어졌다. 내게 할머니가 전부였는데 이젠 할머니까지.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하고는 아빠는 먼 지방으로 가고 엄마는 외갓집으로 갔다. 내게는 오로지 할머니뿐인데. 할머니마저 내게 시큰둥하다니. 나중엔 눈물이 후두둑후두둑 떨어졌다.
다음 날 학교에서 소라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명화야, 나 섭하다. 실은 어제 내 생일이었거든. 엄마가 저녁에 갑자기 친한 친구들 부르라고 해서 니네들한테 문자 보냈었어. 그런데 네 번호만 모르겠더라. 집 번호는 있는데. 전화도 안 받고 어디 갔었어?”
“아니.”
“니네 집 전화 안 받기에 미정이가 니네 집 하고 가깝잖아. 그래서 니네 집 들려서 데리고 오라고 했어.”
“나 집에 계속 있었는데.”
“그랬어? 난 니가 일부러 안 온 줄 알고 오해했잖아.”
‘미정이 기집애, 조금만 걸어오면 우리 집인데 귀찮다고 어쩜 연락도 안 해 주냐?’
미정이는 학원에서 바로 소라네 집으로 갔다며 얼버무렸다. 미정이가 너무나 얄미웠다. 연락 못 받아서 소라 생일 파티에 못 갔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속상했다. 휴대폰만 있었다면…….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휴대폰 대리점만 눈에 보였다. 우리 동네에 휴대폰 대리점이 이렇게 많이 있는 줄 몰랐다. 휴대폰을 진열한 가판대 앞에 멈췄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춰진 것이다. 여러 종류의 휴대폰이 있었다. 가지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그 중에는 그 최신 폰도 있었다. 얇고 색깔도 예쁘다! 오, 만지기만 해도 바로 인터넷 되고. 휴대폰을 광고하는 멋진 배우가 생각났다. 소라 생일에 못 가 속상했던 게 조금 가라앉았다. 할머니에게 가서 달라고 해야지. 할머니가 장사하는 곳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없었다. 부천댁 할머니가 나를 보고는 부리나케 뛰어왔다. 할머니랑 가장 친하게 지내는 할머니다.
“느그 할머니 아까는 장사하는 거 같더만 갑자기 짐 들고 어디로 부랴부랴 가는 것 같더라. 무슨 일 있냐?”
웬일이지? 아픈가? 나는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시장에 없는 걸 보면 집에 있을 거야. 나는 한걸음에 달려갔다. 방문을 활짝 열어 재꼈다.
“할머니!”
방엔 아무도 없었다. 어딜 갔지?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밖으로 나왔다. 슈퍼도 가보고 부식가게도 가봤다. 아무 데도 없었다. 어제는 밤늦게 나타나더니 오늘도 말도 안 하고 없어졌다. 나는 할머니도 엄마나 아빠처럼 없어질까 봐 무서웠다. 아파트 건너편에도 가보고 뒷산 근처까지 가봤다. 그런데도 없었다. 터벅터벅 힘없이 육교를 내려오는데 앞쪽에서 걸어오는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는 어깨가 축 처진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할머니가 나를 보더니 활짝 웃었다.
“아이고, 내 새끼. 핵교 댕겨 오냐? 배 고프쟈? 붕어빵 사주랴?”
“시장에도 없던데 어디 갔었어?”
할머니는 내가 화를 내기도 전에 붕어빵을 사줬다. 오랜 만에 먹는 붕어빵은 꿀맛이었다. 할머니 손에 약봉지가 들려 있었다.
“할머니, 어디 아파?”
“아녀. 감기 기운이 있어갖고.”
할머니는 약봉지를 뒤로 감췄다. 그날 저녁을 먹고 할머니 방으로 갔다.
“할머니, 내 꺼 휴대폰 샀지?”
할머니는 보고 있던 휴대폰 사용 설명서를 얼른 이불 밑으로 집어넣었다.
“무슨 휴대폰? 안 샀는 디. 가지고 싶냐?”
“아니, 가지고 싶다는 게 아니라…….”
할머니는 짜증나게 핸드폰을 내놓지 않았다. 할머니는 참 이상해. 할머니가 사용할 것도 아니면서. 그러고 보면 요즘 할머니가 이상하기는 하다. 저녁을 먹고 나서 숙제 하는데 방으로 와선, “저녁밥 안 묵냐?” 고했다. 금방 먹었는데. 먹었잖아, 라고 하는 내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고 나갔다. 건망증도 심해진 것 같다. 생각해보니 아침에도 할머니는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같은 말을 반복해서 했다. 심지어 학교 갈 시간 안 됐냐고 세 번이나 물어봤다. 예전과는 뭔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혹시 핸드폰 사논 것도 잊어버린 거 아냐? 어쨌든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
다음 날, 학교에서 기분이 정말 꿀꿀했다. 미정이와 싸웠기 때문이다. 요즘 왜 이렇게 미정이하고 꼬이는지. 청소 시간이었다. 미정이의 핸드폰이 밀걸레 통에 풍덩 들어갔다. 왠지 고소하다싶어 한 번 웃은 것뿐인데 미정이가 눈을 흘기며 새침하게 말했다.
“기집애, 핸드폰 물에 빠지니까 좋아죽겠지?”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 핸드폰 빠지는 거 보고 괜히 고소해서 웃었잖아.”
“다른 애도 웃었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
미정이가 얄미웠다. 내가 휴대폰 없는 줄 알고 뻐기는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괜히 나만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번 소라 생일에도 연락 안 해 주고. 하마터면 눈물이 쏙 빠질 뻔 했다.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고 말했다.
“너 그러는 거 아니야.”
미정이에게 퉁명스럽게 한 마디 뱉고는 학교를 나왔다. 아무도 없을 때야 눈물이 쏟아졌다. 나쁜 계집애! 오늘은 할머니한테 휴대폰 산 거 달라고 해야지.
‘내일 미정이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말 거야!’
집으로 들어섰다. 책가방을 내려놓고 나는 할머니 방을 살며시 열었다. 할머니 냄새가 났다. 할머니 장롱을 열었다. 장롱을 열자마자 지난 번 그 공책이 툭 떨어졌다. 볼펜이 끼워져 있던 부분이 펼쳐졌다.
백두산 2,744m
한라산 1,950m
지리산 1,915m
설악산 1,707m
태백산 1,566m
소백산 1,440m
덕유산 1,507m
무등산 1,187m…….
풋, 우리나라 산 높이를 적어놓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별 걸 다 쓰네. 한글 연습 하나? 저녁에 한글학교 다니나? 지난번엔 휴대폰 사용설명서를 베껴쓰더니. 공책을 다시 집어넣고 장롱문을 닫았다. 암만 찾아봐도 휴대폰은 보이지 않았다. 깊숙이도 숨겼네. 할머니가 들어오기만 기다렸다.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시간이 천천히 가는지. 할머니는 여섯 시가 조금 지나서야 들어왔다. 할머니 손을 흘끔 쳐다봤다.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얼른 할머니의 쇼핑백을 받아들었다.
“할머니, 내 휴대폰이지?”
“워떻게 알았냐?”
“다 아는 수가 있지.”
나는 쇼핑백 안에 들어있는 휴대폰 상자를 열었다. 상자를 연 나는 기가 막혔다.
“에게게, 이 똥 폰을 사갖고 왔다 말이야?”
남은 상자 하나를 또 열었다. 아까와 같은 거였다. 공짜폰이었다. 똥폰. 화가 났다. 그럼 지난 번 최신형 사용설명서는 뭐야.
“우리 같이 갖고 다님서 전화허자.”
할머니가 쥐어주는 핸드폰을 나는 사정없이 집어던졌다.
“할머니나 실컷 가지고 다녀!”
쾅, 문을 닫았다. 눈물이 나도록 화가 났다. 저 똥폰을 어떻게 학교에 가지고 다녀. 창피만 당하지. 나는 눈물로 얼룩진 채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나는 학교가 끝나고 할머니가 장사하고 있는 시장으로 갔다. 할머니한테 너무 화냈던 게 조금 미안해서였다. 할머니는 휴대폰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 것은 가지고 가서 최신형으로 바꿔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시장으로 막 들어설 때였다. 배달을 다녀오던 부천댁 할머니가 나를 보고는 아는 체 했다. 부천댁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순대집 옆 골목으로 갔다.
“아야, 느그 할머니 단속 잘 혀. 아프니께.”
“아, 감기요?”
“감기? 그건 아니고 느그 할머니 치매 같어. 세상에, 장사허는디 손님한테 돈을 안 받았다고 허다가 젊은 여자한테 된통 당했어. 느그 할머니 내가 한 두해 지켜보냐? 그럴 사람이 아니제. 양심 바르기로 허자면 시장에서는 제일인디. 처음엔 나도 그 여자가 뻔뻔허니 거짓말 허는 줄 알았제. 근디 알고 본 께 느그 할머니가 돈 받아놓고 잊어뿌린 거여. 오늘 하루도 대 여섯 번이나 그랬어. 할머니헌티 물어본 께 벌써 약 먹고 있다더라. 움서 네 걱정만 했어.”
부천댁 할머니는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니 애비헌티 연락도 해놨다더라. 초기니께 잘 치료허먼 괜찮아진다드만. 잘 지켜봐라이? ”
치매라니,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족도 몰라본다던? 속도 울렁거렸다. 나는 멀리서 할머니가 장사하는 모습만 지켜보고 있다 집으로 왔다. 방으로 들어와 아빠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동안 한 번도 걸지 않았던 전화번호였다. 책상에 어제 할머니가 사 온 똥폰이 있었다. 핸드폰을 켰다. 대리점에서 했는지 바탕화면에는 ‘이뿐 명화’라고 써져 있었다. 아빠한테 전화를 했다. 할머니가 나도 못 알아보면 어떡하지? 불안이 밀려왔다. 띠이띠이, 전화가 울어도 아빠는 받지 않았다. 아빠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컴퓨터를 켰다. ‘치매’를 검색했다. 무엇인가를 계속 외우게 되면 치매예방에 좋다고 했다. 그럼, 할머니 휴대폰 사용설명서도. 고스톱도. 산 높이까지 다. 할머니가 늦게 들어온 날도. 눈앞이 흐릿해졌다. 눈물이 자판 위로 투둑투둑 떨어졌다. 그 똥폰, 공짜폰이. 나하고 연락하려고 산 것인데 그런 줄도 모르고. 불쌍한 할머니. 일곱 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불안하다. 여섯 시가 넘으면 어김없이 들어오는 할머닌데. 할머니가 정신이 나가 집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혹시라도 할머니가 오는 걸 볼 수 있을까 해서였다. 금방이라도 할머니가 들어올 것만 같다. 입이 바싹바싹 마르는 시간이 흘렀다. 깜빡 잠이 들었다. 창밖에 희미한 어둠이 사라지고 새벽이 찾아왔다. 할머니는 여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이 돼도 나는 학교 갈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명화학생? 이꽃분 할머니 우리 파출소에서 모시고 있어요.”
경찰 아저씨의 전화를 받고 다리가 풀렸다. 안도의 숨을 내쉬자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다. 집에 돌아온 할머니가 걱정하는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걱정했쟈? 미안혀.”
“미안미안! 할머니는 미안하다는 말 밖에 몰라? 그 똥폰 뒀다가 뭐 할 거야?”
그러지 말아야 되겠다고 했으면서도 할머니를 보자마자 따발총처럼 말이 튀어나갔다.
“긍게 말이다. 멍청허니 정신나가 있응 게 그럴 수 ?종鄕?”
말하는 할머니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가 드러누웠다. 나는 소리 없이 문을 닫고 학교로 뛰었다. 지각이닷! 나는 지각을 했고 그 벌로 청소를 했다. 청소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향했다.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똥폰을 꺼내 집으로 전화를 했다. 할머니 휴대폰으로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또 가슴이 울렁거렸다. 할머니에게 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몸도 성치 않으면서 시장에 나갔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장을 향해 뛰었다. 할머니가 보였다. 야채를 사는 아줌마에게 고맙다고 합죽거리며 웃었다. 할머니 목에 걸린 똥폰이 보였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똥폰을 꺼냈다. 단축 키 1번에 ‘내 사랑 할머니’라고 저장했다. 1번을 꾹 눌렀다. 할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아이구, 우리 명화로구먼.”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피, 똥폰 사줬으면서. 내가 전화할 때마다 빨리 전화 받아야 돼. 아니아니, 한 시간에 한 번씩 전화할 게. 그리고 오늘 저녁 일찍 들어와서 공부 좀 해. 참, 오늘 나한테 가르쳐줘야 할 거 또 있어.”
“뭔디야?”
“고스톱.”
“그건 안 돼야. 학생이 그런 거 하면 쓰간디?”
“그래도 가르쳐줘.”
“할머니, 시금치 안 줄 거에요?”
전화기에서 까칠한 아줌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어라. 아가, 손님 왔응게 끊자.”
할머니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오래도록 할머니가 장사하는 걸 지켜보았다. 딩동, 문자가 왔다.
아빠야. 핸드폰 개통을 축하한다.
미안하다. 이젠 아픈 할머니와 명화와 함께 살 거야.
아빠가 이곳 정리하려면 일주일은 걸리니까.
그때까지 할머니 부탁해. 아빠.
아빠였다. 한 번도 연락이 없던 미운 아빠가 문자를 보냈다. 조금은 안심이 됐다.
시장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와 우리 고장에 있는 산이란 산은 다 찾아 할머니 공책에 높이를 써내려갔다. 할머니가 잘 보이게끔 큼지막하게. 이꽃분, 이름표도 만들어놓았다. 그 사이에 꼴깍 해가 넘어 갔다. 나는 집 안에 있는 등이란 등은 다 켰다. 집안이 환해졌다. 가슴이 따뜻해져왔다.

출처 : 부산 문예창작 아카데미
글쓴이 : 먼바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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