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문학

[스크랩] [2009 동아일보 신춘문예]동화 ‘그건 정말 오해야’/조희애

열국의 어미 2018. 1. 29. 00:12

[동아일보] [2009 신춘문예]동화

 

‘그건 정말 오해야’

 

조희애

 

 

호랑이라고 다 강한 줄 아니? 매운 걸 먹으면 하루에 백 번도 넘게 재채기를 에취에취,

콧물은 질질, 눈물은 찔끔찔끔 아주 정신이 쏙 빠진다니까. 그러니 쑥과 마늘만 먹고

버티라는 단군의 제안은 애초부터 우리한테 불리했던 거야

 

 

 

단군신화에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곰과 호랑이 생각나? 햇빛도 보지 않고 동굴 속에서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고 버텨야 했는데 호랑이는 도중에 포기하고 나왔잖아. 그 호랑이가 바로 우리 옛날 조상 할아버지야. 사실 그 제안은 우리에게 불리한 조건이었어. 우리는 매운맛을 잘 못 참거든. 호랑이라고 다 강한 줄 아니? 매운 걸 먹으면 하루에 백 번도 넘게 재채기를 에취에취, 콧물은 질질, 눈물은 찔끔찔끔 아주 정신이 쏙 빠진다니까. 그러니 쑥과 마늘만 먹고 버티라는 단군의 제안은 애초부터 우리한테 불리했던 거야. 뭐? 그동안 왜 이런 얘길 하지 않았느냐고? 아무리 그래도 우린 호랑이잖아. 호랑이 체면이 있는데 이런 건 당연히 비밀로 해야지. 사실 이 얘긴 끝까지 비밀로 해야 해. 그렇지만 이렇게 내가 오해를 받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말하는 거야. 그래, 이젠 말해야겠어. 난 정말 억울해. 그건 정말 오해라고.

그날, 난 너무 배가 고팠어. 원래 겨울엔 먹을 게 별로 없었는데, 사람들이 이상한 큰 건물을 짓고 길을 만든다며 산을 깎아버리는 바람에 먹이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지. 이젠 엄마도 아빠도 없이 나 혼자 살아가야 하는데 이대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밀려왔어.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지! 언제까지 엄마가 물어다 주는 토끼만 먹을래?” 하고 다그쳤어. 그때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이제는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어. 그러고 보니 내 여동생도 산속 어딘가를 헤매고 있겠지? 하지만 동생은 잘살고 있을 거야. 어렸을 때부터 나보다 사냥 실력이 뛰어났거든. 여하튼 해는 저물고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는데 여전히 먹잇감은 보이지 않았어. 그래서 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가기로 했지.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는 여러 가지 냄새가 났어. 답답하고 기분 나쁜 냄새 때문에 목이 답답해져 오다가도 어디선 달콤한 냄새가 났지. 맡으면 기분이 좋아졌어. 그러다 가끔 코를 찡그리게 되는 시큼한 냄새를 맡게 됐을 땐 온몸을 벅벅 긁었어. 하지만 그날은 맛있는 고기 냄새가 유난히 진하게 났어. 나는 몸을 숙이고 고기 냄새를 따라 걸었어. 늦은 밤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별로 없었어. 조용히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하얀 눈길을 저벅저벅 걸으며 고기 냄새를 쫓았지. 그리고 드디어 그 집을 찾았어. 고기 냄새는 담장을 따라 흘러나와 집 밖에 모여 있었어. 나는 재빨리 냄새가 모여 있는 곳에 고개를 파묻었어. 캬! 고기였어. 너 며칠 굶어봤니? 그 순간 나는 호랑이라는 것도 깜빡하고 감동에 겨워 엉엉 울었어. 엄마 아빠, 제가 해냈어요. 이렇게 달콤한 고기 보셨어요? 어흑흑 으허엉! 그런데 어디선가 사람들이 소리치며 뛰쳐나왔어.

“이게 무슨 소리야?”

“호랑이 소리 아니야?”

“뭐? 호랑이?”

“에구머니나! 저기 호, 호, 호, 호….”

“호랑이예요!”

“꺅! 호랑이가 쓰레기를 뒤지고 있어요!”

그 순간 재채기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어. 에취, 으헝! 에취, 으헝! 대체 뭐지? 어디서 매운맛이… 에취, 으헝! 에취, 으헝!

“으악, 호랑이가 덤비려고 해요.”

“여러분 어서 대피하세요. 집으로 들어가세요!”

“저 호랑이 입에 묻은 거, 피 아니에요!?”

“뭐라고? 피?”

“누가 경찰에 신고 좀 해!”

“피 아니에요. 쓰레기에서 묻은 김칫국물 같아요.”

나는 자꾸만 재채기가 났어. 사람들은 순식간에 대문으로 들어가고 담장 위에 올라와 방망이를 들고 서 있었어. 도와주세요. 그게 아니에요. 오해라고요. 전 그저… 에취! 눈물 콧물이 질질 나왔어. 조상 할아버지, 왜 우린 매운 걸 못 먹는 건가요? 왜 우린 사람이 되지 못했던 건가요? 갑자기 머리까지 어질어질해서 앞을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어. 나는 빨리 여길 벗어나야 된다고 생각해서 한 걸음을 옮겼는데 그 순간 꽈당 하고 눈길에 미끄러져 버렸어.

그 뒤로는 기억이 안 나. 깨어나 보니 이곳에 갇혀 있더라고. 사람들은 내가 해치기라도 하는 줄 안 걸까? 난 그저 그 김칫국물이라는 매운 것 때문에 재채기를 심하게 한 것뿐이야. 눈물이 나서 운 것뿐이고. 나도 사람이 되고 싶은데 왜 사람들을 해치겠어. 물론 옛날 옛적에 어떤 아저씨가 사람을 해쳤다는 얘기는 들었었지만 그건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야. 게다가 아저씨는 떡 하나만 달라고 정중히 손을 내밀었는데 아줌마가 떡을 바구니째 집어던져 버렸대. 그래서 겁을 좀 주려고 살짝 물었는데 그만….

드르륵.

“자, 호랑아 밥 먹을 시간이다.”

문이 열렸어. 어떤 사람이 맛있는 생닭을 넣어줬어. 물론 이곳에 있어서 좋은 점도 있어. 이 사람이 날 돌봐주거든. 이곳은 따뜻하고 먹을 것도 어렵게 구할 필요가 없어. 이런 추운 겨울에는 이곳에 머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자꾸 산속이 생각나. 여긴 너무 어두워.

“맛있게 먹고 건강한 모습 보여줘라.”

아저씨는 내가 있는 상자를 들고는 어디론가 걸어갔어. 그러더니 곧 부릉부릉 소리와 함께 울렁울렁 상자가 흔들렸어. 아 멀미 나. 나는 이제 그만 갇혔으면 하는데 사람들은 왜 날 자꾸 가두려고 할까? 아직도 내가 위험하게 보이는 걸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건 정말 오해였다고. 저기요, 그건 오해예요. 난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한 게 아니라고요. 놀라게 했다면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그러니 이제 그만 날 꺼내주세요. 나는 큰 소리로 말했어.

“그래 미안하다. 답답하지? 조금만 참아. 이제 곧 좋은 곳에 데려다 줄 테니.”

소용이 없나 봐. 내가 만약 사람이라면 이 오해를 풀 수 있을 텐데. 하아, 난 여전히 이 어둡고 좁은 곳에서 웅크리고 있어. 이렇게 있으니 어딘가에서 쑥과 마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그래, 난 쑥과 마늘이 어떻게 생겼는지, 맛이 어떤지 잘 몰라. 하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 컴컴한 동굴 속에서 사람이 되길 꿈꾸며 지낸 조상 할아버지의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이렇게 100일을 버티면 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졸음이 몰려오는데 끼익 소리가 들렸어.

“자! 다 왔다. 이제 내리자.”

덜컹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어. 갑자기 찰칵찰칵 하는 이상한 소리들이 들려.

“어떻게 발견하신 겁니까?”

“우리나라 호랑이는 이미 멸종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한국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백두산호랑이가 현재….”

“앞으로 어떻게 보호되는 건가요?”

아! 눈부셔. 대체 이 불빛들은 뭐지? 내 오해가 풀렸나 봐. 이제 날 놓아주나 봐.

“멸종된 줄 알았던 백두산 새끼호랑이가 발견되면서 동물학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백두산호랑이는 2001년 북한에서 발견된 이후 남한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어젯밤 12시경 먹이를 찾아 내려온 새끼호랑이가 발견되면서….”

“이곳 보호동물 공원관리소에서 관리하게 되는 건가요?”

윽, 아직도 강한 빛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어. 이렇게 강하게 비추는 불빛들은 처음이야. 할아버지가 보고 싶었던 세상은 이런 거였을까? 혹시 난 사람이 된 걸까? 그래! 난 정말 사람이 됐나 봐.

출처 : 부산 문예창작 아카데미
글쓴이 : 먼바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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