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 제강 회장 "나눔이 행복비타민"
물질의 주인은 ‘나’ 아닌 ‘하나님’
매월 8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일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쉼터 인왕산정 경로당에는 잔치가 열린다. 점심식사와 부식, 속옷 등 선물을 장만해 나눠주는데 요란스럽지 않고 누구에게든 강요하지 않는다. 이웃들에게 과한 친절을 베풀지도 않아 잔치를 준비한 사람이나 참석한 사람 모두가 당당하고 즐겁다.
1993년부터 시작해 선거 기간 중 선거법에 저촉된다고 해 몇 차례 빼놓은 것 말고는 거른 적이 없으니 14년째 지역노인들을 위한 정기모임이 됐다. 한 차례 잔치에 1000여 노인들이 참석하는데 전북 군산·김제노인정에도 이와 비슷한 모임이 비슷한 시기에 열려 500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고 있다.
한 두 차례 기부만으로도 신문과 방송의 일부를 장식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데 14년이 지나도록 매월 경로잔치를 벌이고 있는 이 모임의 제작자이자 연출자인 서원석 장로를 인터뷰하기는 쉽지 않았다. 삼고초려(?) 끝에야 만남이 가능했고, 시원한 대답도 내놓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나눔을 ‘남보다 조금 더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는 것일 뿐’이라며 ‘부풀린 평가는 원치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나눔에 대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가 쉬운 일이 아님은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자명하다.
앞서 언급한 노인잔치 외에도 서원석 장로가 벌이고 있는 일들은 또 있다. 몇 가지 나열해 보자면 후학들을 위한 장학사업과 현죽효행상 제정을 통한 효자 효녀 효부 격려, 개안수술비 지원사업 등 국가나 사회단체가 맡아도 녹록치 않은 일들을 그는 계속하고 있다.
일의 시작이 어찌된 건지 궁금해 쉽게 답을 안 주는 그에게 재차 물었다. 그제야 물음에 대한 답을 들려줬다. “제 할머님은 일제시대 보릿고개 때 집에 찾아온 걸인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시고 조금이라도 먹을 것을 들려주시곤 했습니다. 어떤 때는 할머님도 드실 것이 없었지만, 찾아 온 걸인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며 자신의 밥을 부어주고 냉수를 드시며 단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맨손으로 사회에 뛰어들어 ‘성공한 할아버지’ 소리를 듣게 된 지금 그때 할머니의 손길을 잊을 수 없어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이게 뭐 큰일이나 됩니까?” 서 장로가 어렸을 때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가정을 이끄셨다. ‘어려운 형편에도 자신보다 더 힘든 이웃을 돌보시는 할머니의 말없는 가르침이 그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그 또한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했다. 할머니의 가르침은 그를 움직였고, 사업이 지금처럼 자리잡기 전인 1961년부터 그는 그를 낳고 길러준 고향에 쌀을 보내 어려운 이웃들과 나눴다. 이 때문에 서 장로는 ‘누군가 먼저 행동을 보인 뒤 젊은 세대에게 이를 배우게 해야 각박해져 가는 사회가 밝아진다’는 지론을 갖게됐다고 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지금 서 장로가 살고 있는 효자동에서 차츰 결실을 맺고 있다. 서 장로를 지켜보며 노인들을 대접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동네 냉면 집에서는 냉면을, 빵집에서는 빵을, 은행에서는 선물을 제공하겠다고 서로들 나서 동네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했다.
이웃들 뿐 아니다. 기업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남과 차남, 서혜경(피아니스트·경희대 교수) 서혜림(우리나라 3대 여류 건축가의 하나·건축사무소 힘마 대표) 서혜주(바이올리니스트·경원대 교수) 등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바쁘게 지내는 서 장로의 자녀들도 아버지가 벌이는 경로잔치에 틈틈이 나와 봉사하고 있고, 부인 이소윤 권사도 열 일을 제치고 사랑 나눔에 함께 하고 있다.
따뜻한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 또 있다. 서 장로는 지난 16년 동안 700여 명의 개안수술을 지원했다. 이 또한 실상 누구든 마주할 수 있는 상황에서 비롯됐다. 어느 주일, 예배를 드리고 교회 문을 나서는 그의 앞에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를 안은 할머니의 외침이 들렸다. “내 손자가 장님인데 제발 눈 좀 뜨게 해주세요” 할머니의 이 절규는 그의 가슴에 부딪치며 강하게 파고들었다. 평소 이웃을 위한 나눔에 열심이니 이 일만은 다른 사람의 몫으로 남겨 놓을 수도 있겠지만 할머니의 부름을 외면하고 돌아설 수 없었다. 이때부터 시작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개안수술 지원을 위해 어려운 시기를 살아오며 몸에 밴 절약생활에 더욱 힘쓰고 있다. 은행 빚 하나 없는 알토란같은 견실한 기업을 50년째 이끌고 있는 그지만 이웃을 돕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그래서일까.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회사의 회장직함을 가진 서 장로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점심시간 주메뉴는 자장면 아니면 설렁탕 같은 서민적인 음식을 먹는다. 기업활동을 하며 손님을 자주 만나야 하지만 ‘그때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회사사람들의 말이다. “내가 좀 덜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돈이 많다고 하루 세 번 먹을 밥, 네 번 다섯 번 먹을 것도 아니고 내가 쓸 것을 줄이면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데 그게 뭐 어렵습니까? 내 주머니에 들어왔다고 모두 내 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이지요. 하나님이 이웃과 함께 쓰라고 주신 돈인데 나만 쓰고 내 가족만 쓰면 안되지요” 한 번 내뱉은 말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세태이기에 청빈한 삶으로, 작은 예수로 살아가려 애쓰는 서 장로의 말에 믿음이 간다.
순하고 평화로운 모습 속에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고 관리하는 독립군의 용기와 고독함을 감추고 있는 그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이웃에게는 따뜻함을 잃지 않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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