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모음

말씀: 두 가지 인생 (단 12:2~3) - 홍정길 목사

열국의 어미 2010. 6. 2. 11:37

 

 

 

Soul Winner의 필수요건 (마 9:35-39) -이철 목사(남서울교회)

 

유명한 시인이자 미술 비평가인 존 러스킨이 훌륭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 둘째는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감정, 그리고 셋째는 그것을 그릴 수 있는 손과 몸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전도도 하나의 예술(Art of Soul Winning)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혼을 구하는 Seoul Winner가 되기 위해서도

이런 필수요건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오늘 본문 말씀, 이 땅에 Soul Winner로 오셔서 전도하시던 주님을 통해서 찾아봅니다.

먼저, 주님에게는 사람을 영적으로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무리를 보실 때 그들을 육체적으로만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영적으로 보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36절)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눈이 필요합니다. 사람을 겉으로만, 육체적으로만 보면 전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이 세상 사람들의 영적인 곤고함, 죄로 말미암아 멸망 받을 그들의 영적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눈이 있어야 바른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주님에게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36절) 그들의 영적 상태를 보시고 깊은 동정심을 느끼신 것입니다. 유명한 전도자 무디(D. L. Moody)가 시카고에 전도 집회를 하러 갔다가 시카고 시내에서 갑자가 엎드려 통곡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이 거리로 걸어가는 저 많은 사람들의 마지막을 생각할 때에 너무 불쌍해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전도자가 됩니다. 전도자의 최대의 위기는 이런 마음이 식어지고 사라지는 데 있습니다.

 

셋째로, 주님에게는 실제로 전도하신 행동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눈으로만 전도하신 분 아니십니다. 마음으로만 전도하신 분 아닙니다. 손으로 발로 몸으로 전도하셨습니다. 전도하기 위해서 먼 길을 다니셔야 했습니다. 피곤한 가운데서도 입을 열어 말씀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해야 하셨습니다.(35절).

전도란 이렇게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시간이 들고 노력이 들며 물질도 듭니다. 때로는 욕도 먹고

 때로는 불편도 겪으며 심지어는 핍박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의 실천이 없이는 전도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예술가에게도 사물을 보는 눈과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감정, 그리고 그것을 그릴 수 있는 손이 있어야 훌륭한 예술가가 된다고 했는데, 우리, 영혼 구하는 일도 하나의 예술입니다. Art of soul winning. 바라기는 우리 모두에게 사람을 영적으로 보는 눈을 가지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며 더 나아가서 그들을 향하여 찾아갈 수 있는 실천과 행동으로 귀한 전도자(Soul Winner)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가지 인생 (단 12:2~3) - 홍정길 목사

 

본문말씀 :

다니엘서 12장2~3절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인생은 두 가지 종류의 삶을 살고, 그 결론되어 되어집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인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어떤 사람은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못 없어집니다. 그냥 인생이 죽어서 무가 되면

인생이 참 간단한데 그렇지 못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닌 것이 인생의 최대 두려움입니다. 인생에는 단지 두 종류의 인생이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인생과 무궁히 수욕을 당해 부끄러운 인생입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인생에 대한

 요약된 말씀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가 "영생을 선물로 받는다"고 전하는 이 기쁜소식은 한 사람의 생애에 이보다 더 영광스럽고 기쁜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1965년 7월24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내 인생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이보다 내 인생에 더 크고 소중한 일은 없습니다. 결혼한 날도 행복했습니다. 첫 아이를 얻은 날도 매우 기뻤습니다.

 

손자를 얻은 날.. 솔직히 손자를 얻으니 더 기쁘더군요. 이 모든 날들이 다 좋았지만 그보다 더 놀랍고 기쁜 날은 영생을 선물로 받은 날입니다. 그 날은 나를 완전히 바꾼 날입니다. 제가 새 사람이 된 날입니다. 그날 이후의 변화를 볼 때 제가 저를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이 최대의 사건이 그 대상자에게 일어납니다. 내게 최대의 사건이 내가 복음을 전할 때 그 사람에게 최대의 사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복되고 사랑이 담긴 선물은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이 영생의 확신을 가지고 돌아갑니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기뻐할 일 아닙니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 생애 마지막 모습은 어떨까? 설교하다가 쓰러질까? 아니면 길가다가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할까? 그도 아니면 비행기안에서 잠들까? 그래서 저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앓다가 가지 않게 하소서. 열심히 일하다가 가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은 영생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목회 한다고 하면서 이것을 모른채 목회했다는 것은 기독교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모른 채 목회한 것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사기치는 것과 똑같을 수 있습니다. 진짜를 주지 않고 비슷한 것을 주는 것이 사기 아닙니까!  성도들의 정말 가려운 데는 긁어주지 못하고 흉내만 내는 것이 사기 아닙니까! 기억하십시오. 두 가지 인생이 있습니다. 두 인생 중에 내가 영생을 가졌다는 이 사실, 여러분은 여기부터 시작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영생을 받는 자는 다 똑같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생애가 정말 밝고 빛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영생 받은 자 중에서의 축복과 특권을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 같이 빛날 것이오.."

영생을 가진 사람에게 첫째로 필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참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 악의 영리함을 이길 장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비둘기처럼 순결해라." 점도 티도 없이 깨끗하게 서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또 "너희는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하지만 또 뱀같이 지혜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뱀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사실 보면 뱀은 자기 보전을 잘하는 동물입니다. 순결을 지킬 자기 보전 능력을 뱀에게서라도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 악의 영리를 이길 유일한 비결은 하늘아버지로부터 받은 지혜밖에 없습니다. 이 지혜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시기를 참 기뻐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주시리라."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너무 많이 달라고 한다고 꾸짖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얼마나 큰 특권을 주셨는지는 솔로몬의 생애를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여러분은 정말 무엇을 원하십니까? 주님이 여러분에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시베리아에 노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랑하고 사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한 천사가 그 노부부를 방문하였습니다. 천사는 세 가지 소원을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마자 할머니는 "소시지 한 개를 주세요."라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순간 할아버지는 화가 났다. '그 소중한 소망을 소시지 한 개 가지고 바꿔 먹다니.'

성이 난 할아버지는 "그 소시지 코에나 붙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두 개의 소원이 사용되었습니다. 이제 하나 남았습니다. 저 같으면 안 그럴 거 같은데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사랑했나 봅니다. 소시지가 코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마지막 소원으로 썼습니다. 결국 남은 것은 소시지 하나였습니다. 그 큰 기회에 소시지 하나 얻는 게 인생입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는 하나님의 질문 앞에 솔로몬은 "백성을 잘 다스릴 지혜를 주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흥분하십니다. "네가 지혜를 구했어? 지혜뿐 아니라 부도 주고 영광도 주겠는데 이후로도 너보다 클 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참된 지혜는 무엇일까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내게 지혜 없음을 아는 것이 첫 번째 지혜인데 이상한 것이 지혜 없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지혜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인생을 빛나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더 영광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 가운데 이 땅에서 빛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생애가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지혜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빛나게 하는 비결이라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인생은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는 삶이 되는 비결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의 다음 행위에 따라 여러분이 어떤 인생이 될 것인가가 결정됩니다. 천국가서 가장 큰 영광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영광은 내가 전도한 영혼을 만나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얼마나, 그것도 영원토록 그 사람이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하겠냐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무덤 속에 갇히는 것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그 티끌 가운데 일어날 인생입니다. 무덤에서 일어나도 무궁토록 수욕을 받을 인생이 있는데 우리는 영생을 가진 인생입니다. 이 땅에서는 빛나는 지혜를 가진 인생이되십시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해서 궁창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는 영생을 준비하는 삶이 되십시오. 우리 평생에 힘쓰고 수고해야 될 이 영광에 초대된 우리들입니다. 이 은혜가 수료를 하고 이 자리를 떠나는 여러분의 생애에 복된 말씀이 되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보좌에서 영원토록 함께 기쁨을 나누는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거짓에 대항하라 - 릭워렌 목사

 

한 아이가 거짓말하다가 들켰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그에게 이렇게 꾸짖었습니다. “얘야, 천국에는 거짓말쟁이가 없단다.” 

 그 아이는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아빠, 거짓말한 적 있으세요?” “물론 있지.” “그렇다면 제가 생각하기에 천국에 가게될 사람은

하나님과 조지 워싱턴뿐일 거예요!” 타임지 최근호의 표지에 이런 문구가 실렸습니다.  “거짓말........ 모든 사람이 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요?!  제가 수집한 미국인이 하는 10가지 주요 거짓말을 소개합니다.

10. “일분 안에 음식이 나옵니다.”

9. “이 치수는 모든 사람에게 어울립니다.”

8. “이 일은 당신보다 나에게 훨씬 피해를 줍니다.”

7. “늦어서 죄송합니다. 길이 막혀서요.”

6. “수표가 도착하는 중입니다.”

5. “이 가격은 선착순 50명에게만 해당됩니다.”

4.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일의 원칙입니다.”

3. “5분이면 됩니다.”

2. “내일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할거예요.”

1. “저는 세무서(IRS)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을 도우러왔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사랑하며 행복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자들아, 악한 말이나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시34:12-13)  그렇습니다.  때때로 정직해지려면 대가를 지불해야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지속적으로 성실함을 유지하는 것이 이익이 됩니다. 깨끗한 양심을 통해 주어지는 기쁨과 자유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이익을 얻더라도 그것이 범죄자의 고통을 제거해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정직하다는

 평판을 듣는 회사로 떼지어 몰려갑니다.   그들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거래하기를 원합니다. 잠언 11장 3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실하지 못한 사람은 정직하지 못한 것 때문에 망하고 만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뿌린대로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잠언은 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속여서 얻은 재물은 사라지는 안개와 같고 죽음의 덫과 같다” (잠21:6)

정직해야할 세 번째 이유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 - 나는 당신을 속일 수 있을 겁니다. - 나는 나 자신이

거짓말을 믿도록 속일 수 있을 겁니다. - 그러나 당신이나 나나 하나님께 거짓말할 수는 없고 그분에게서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정직한 사람은 안전하고 떳떳하지만 부정한 사람은 꼬리가 잡히고 만다.“(잠10:9)

이번 주에는 거짓에 대항하여 싸우십시오!

 

 

 

역설적인 진리 (요12:23-26) - 전 현 진 목사

 

역설이란 것은 언듯 보기에는 어긋난 것 같이 보이나, 그 속에 참 진리가 담겨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는 일반상식으로 생각하기에 모순같이 보이는 정반대의 진리를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 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토록 보존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바로 역설적인 진리가 담겨 있는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숨겨져 있는 진리가 무엇입니까?

 

1.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게 됩니다(요12:24-25).

 밀알이 습기차고 거름 냄새나는 땅속에 들어가기 싫다고 들어가지 않으면 그 밀알은 죽게 됩니다. 그러나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십배, 수백배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희생하고 죽어지는 생활을 하면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한알의 밀알처럼 땅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이 세상 민민들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죄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제물로 보혈을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니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죽고자 하면 자신도 살고 남도 살리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남을 위해 자신을 죽으고 희생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어린 소년이 자기도 배고차 죽을 지경이었으나 희생하고 예수님께 드렸을 때 오천명 이상이나 되는 많은 무리들이 배불리 먹게되고, 자기도 실컷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목사가 죽어야 ... 이 희생의 원리가 참으로 축복받는 길이요, 참으로 사는 길입니다. 25절에서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잃어 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토록 보존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곧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육신의 생명을 부인하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2:11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고 했습니다.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귀중하면 다른 사람의 생명도 귀중합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이타심을 가지고 기독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천국의 원리는 세상의 원리와 반대입니다. 밀알의 진리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집니다(마20:25-27).

보통 사람들은 남의 감투라도 빼앗아 쓰고, 가짜 박사 학위라도 갖다가 붙혀서 높아지려고 하고 존경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상 예수님은 그 반대로 가르치졌습니다. 낮아지고 겸손해질 때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찾아와서, 하나는 주님의 좌편에 하나는 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벼슬 청탁을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5-27)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12절에서도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고 말씀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최고가 되기만을 원합니다. 누구나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지 섬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려 오셨습니다(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 기독인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겸손한자는 높아지고 마귀처럼 교만한 자는 낮아집니다(겔28:17). 3. 드리고자 하는 자는 풍족해 집니다(눅6:38). 세상 사람들은 어찌하든지 남의 것이라도 빼앗아 움켜쥐고는 놓니 않는 것이 참으로 부요해지고 잘 사는 길인 줄 압니다. 예수님은 그와 반대로 주는 생활, 드리는 생활을 해야 하나님께서 채워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38절에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되어 누리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 후히 되어 누리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시는 축복을 받으면 하나님께 드리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의 경제원리와 반대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도 드리면 손해 볼 것 같은데 하나님의 원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일조를 도적질하는 것이 나중에는 손해봅니다.

 

 왕상 17장 8절 16절까지를 보면 사르밧 과부가 마지막 남은 떡을 먹고 죽겠다고 하는데 굳이 엘리야를 먼저 자기를 위하여 떡을 요구합니다. 어떻게 보면 주의 종이 되어 가지고 너무한다 싶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 가정에 살길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말씀을 볼 때마다 인간적인 갈등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성도들이 축복받는 길이라면 눈 질근 감고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차마 그렇게 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축복받는 일이다 싶으면 알아서 축복받을 일을 하십시오.

 

영국에 몰(Mr. mole)이라는 사람은 돈도 다 떨어지고 밀가루도 다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너는 아직도 가진 것이 있다 먼저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래 윗층을 다 뒤져 보니까 지하실에서 버터가 한 상자가 나왔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받으려면 내가 먼저 주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덜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그것을 받은 사람들 중에 당장에 먹을 것이 없던 한 사람은 너무나 감격해서 그것을 나누어 준 몰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나는 가난해서 줄 것이 없지만 나에게 버터를 준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풍성히 부어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얼마 후에 몰이라는 사람에게 누가 밀가루 두 부대를 갔다 주었습니다. 성경 잠언서 19:17절에 보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고 했으며 잠언 11:24-25절에는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역설적인 진리를 가슴 속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삽니다.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집니다. 주고자 하는 자는 받습니다. 이것이 천국의 원리입니다. 천국의 원리는 역설적인 진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인생의 기초 (마7:24-27) - 전 현 진 목사

 

우리 모두는 집을 짓는 자들입니다. 인생의 집을 지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집은 무엇보다 기초가 든든해야 합니다.  먼저 집의

 터가 든든해야 그 위에 세우는 모든 것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씀합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기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마7:25).” 그러면 인생의 집을 짓는 데 기초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1. 건강입니다. 물론 건강이 인생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건강 없이는 그 어떤 인생 건축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간디는 “건강은 인간의 최고 가치는 아니지만 모든 가치 추구를 가능케 하는 기본적 수단 가치이다.

인간의 첫째 기초는 무엇이냐? 그것은 자기의 심신을 강건케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흡연과

음주, 불규칙한 생활 습관, 방탕과 무절제한 식생활, 운동의 부족 등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스위프트는 “우리의 건강을 지켜 주는 세 명의가 있는데 그것은 쾌활박사요, 근로박사요, 절제박사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과 영혼이 건강해야 육체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2. 의로움입니다. 의(義)는 오늘 우리 한국 사회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중요한 기초입니다. 의가

없다면 그 위에 쌓아 놓은 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위대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모래성에 불과합니다. 어느 날, 아무도 예상치 못하던 시간에 그 성은 무너져 내리고 말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의없이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또한 그 위에 많은 것을 쌓으면 쌓을수록

그 날 그것들이 무너져 내일 때에 거욱 큰 피해가 난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였던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지도자들이

도덕성의 기초가 흔들려 온 국민에게와 전 세계에 망신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의의 길은 좁은 길입니다. 정도(正道)를 걸어가는 길이 당장은 손해되고 늦는다 할지라도 바로 그 길이 결국은 유익한 길이요, 평안과 승리의 길이 됩니다.

 

 3. 신앙입니다. 이것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든든해야만 하는 기초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훈의 터 위에 집을 짓는 것이 가장 든든하고 영원한 집을 짓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그 어떤 역경이 불어닥친다 할지라도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무너져 내리지도 않습니다. 번창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읽고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며 생활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l편 92편 14절에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것에 기초해서 인생의 집을 지은 사람은 한번에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그러나 평생토록 그 들은 바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며 말씀을 행동으로 이어 온 사람은 설혹 역경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그 주초가 반석이신 예수 위에 있기에 결코  요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당당하고 멋있게 그 신앙으로 지은 집을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부흥케 하옵소서(합3:2) - 전 현 진 목사

 

저를 만나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 형편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날마다 부흥은 못해도 달마다 부흥은 합니다.” 우리 교회가 제가 처음 왔을 때 평균 출석이 6-8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달마다 평균 2명씩은 늘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왔을 때 20명 예배 드리는 것도 까마득히 먼 것으로 여겼지만 이제 3월달 부터는 평균 20명 이상 예배를 드리게 될 것으로 예상을 합니다. 그리고 이번 달 말에 일일 부흥회 겸 총동원 전도주일인데 이날 목표는 26명입니다. 지난 2월 달 총동원 전도주일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23명이 와서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제 가족들만 전도한다면 30명은 너끈히 될 수 있습니다. 3월 달에는 가족 전도에 총력을 기울려 반드시 부흥의 달에 걸맞게 부흥하는 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흥을 우리는 흔히 성장의 의미로 사용합니다만 엄연히 따지면 부흥은 [영적인 각성]의 의미가 큽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주전 609년에 중요한 역사적 사건 하나가 일어납니다. 그것은 유다 왕 요시아가 죽는 사건입니다. 요시야는 유다 왕들 가운데서 대단히 휼륭했던 왕입니다. 요시아의 지도하에 일련의 종교개혁과 사회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현명했고 하나님을 경외했던 요시아 왕이 죽자 유다의 역사는 다시금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속에 빠져듭니다. 그러면서 점차 유다 사회는 국가적인 혼란, 도덕적인 부패, 종교적인 타락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백성들은 점점 악해져가고 망국적인 행위가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의로운 사람이 핍박당하고 악인들이 오히려 득세하고 잘못된 것이 정의를 대신하는 사회가 되어 갑니다. 이런 유다의 역사는 바야흐로 꺼져가는 촛불처럼 위기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주목하십니다. 그가 민족의 운명을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나와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바로 하박국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역시 이제는 하박국 선지자처럼 엎드려야 할 때입니다. 이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이 민족이 거룩한 나라 성결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1. 먼저 이 민족이 회개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얼마나 축복하셨는지 모릅니다. 세계를 몇 군데 다녀보면 하나님께서 영적 부흥과 함께 우리 민족을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 같은 대국이 지금 얼마나 미약한 나라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는 정기적으로 홍수피해를 입어 도무지 일어서지를 못합니다. 중국도 큰 도시를 제외하고는 아직 농촌의 경제는 형편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을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희생적으로 사역하는 평신도 사역자가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집사 직분을 받은 평신도들이 예배 인도를 합니다. 제가 전에 갔던 아성이라는 지역의 한 권사님은 교회를 두개나 지었습니다. 이 권사님은 심장병이 있었는데 어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대로 죽나보다 하고 모든 삶을 포기하고 하루는 목욕을 깨끗이 하고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고 잠을 청했는데 꿈에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한약냄새가 진동했습니다. 그 꿈을 꾸고 난 다음에 일어나 보니 심장병이 깨끗이 나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30리 길을 걸어서 조선족 교회를 찾아가 그때부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 분은 평양 분이셨는데 음식 솜씨도 보통이 아니셨습니다. 아성에 오면 꼭 한번 들으라고 했는데 벌써 4년이 되었네요? 우리는 이 민족의 죄를 회개하여 다시 한번 부흥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개인적인 죄를 회개하여 부흥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이 복음의 메시지가 살아나고 다시 한번 영적 각성이 일어나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 다시 한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한 깨어짐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감격 구원의 감격을 다시 한번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부흥은 1907년에 일어난 부흥의 시발점은 평양의 장대현 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장대현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계속적으로 썰렁했습니다. 그때 길선주 장로가 나오더니 간증을 했습니다. “내가 아간입니다. 내가 친구 돈을 빌려 놓고 갚지 않고 떼어 먹은 아간입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성령이 그 교회안에 임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계속적으로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평양에 대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교회에 부흥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이러한 죄의 고백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간증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6)

 

2. 전도의 문이 열리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해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있는 지 모릅니다. 시간이 없다고 하는 사람, 관심이 없다고 하는 사람, 아예 종교를 바꾸어버린 사람 등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 있습니다. 전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생명도 살리지만, 나의 생명도 살아나는 길입니다. 인도에서 성자라는 이름을 듣던 선다싱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한 번은 안도 지방 히말라야 산맥의 산길을 어떤 추운 겨울날 걸어갔습니다. 눈보라가 치고 날은 심히 추운데 눈길을 얼마 걸어가다가 보니까 어떤 사람이 길 가에 넘어져서 죽음 모양입니다. 가만히 들쳐 보니까 손도 발도 얼굴도 다 얼었는데 가슴을 짚어 보니까 아직 온기가 있고 숨도 아직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침 어떤 사람이 길 가로 지나갈 때에 선다싱이 그 사람을 보고 “ 이사람을 그냥 내버려두면 아주 얼어 죽겠으니 우리 이 사람을 함께 업고서 같이 가봅시다”. 하였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나도 죽게 되었느데 언제 다른 사람 돌아볼 새가 있습니까?” 하면서 그냥 지나갔다고 합니다. 선다싱은 차마 그 사람을 그냥 둘 수 없어서 약한 몸이지만 거의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업고 그 눈보라가 치는 산길을 걸어서 고개를 넘어 가면서 몇 번을 넘어지면서 그 사람과 그야말로 싸우면서 그 고개를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도 힘쓰고 자기도 힘쓰는 가운데 피차에 온기가 나서 두 사람이 겨우 생명을 보존해셔 그 산을 더 넘어갔습니다. 거의 다 삼을 넘어가다 보니까 어떤 사람이 또 하나 길 가에 넘어져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손도 얼고 발도 얼고 다 얼어서 아주 죽었는데, 가만히 의복 입은 것을 보니까 바로 얼마전에 혼자 살겠다고 먼저 지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힘쓰고 애쓰던 선다싱은 죽어가는 사람을 구원했을 뿐더러 자기 생명도 구원했습니다. 그러나 남이야 죽거나 말거나 혼자 살겠다고 지나갔던 다른 사람은 자기 생명도 구원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도에는 면류관이 있습니다. 킴불이라고 하는 사람이 어느 양화점에 들어가서 한 청년을 전도했습니다. " 여보시오, 구두만 만들것이 아니라 예배당에 나와서 주의 일 좀 하고 잘 믿고 같이 구원의 길을 갑시다.” 고 전도했습니다. 이렇게 전도를 받은 사람이 바로 무디입니다. 무디는 4세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바람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일 학교 선생님은 킴불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이렇게 전도 받은 무디는 주일하교 선생님이 되어 1,500명의 어린이를 주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1857년부터 1915년까지 미국의 부흥운동을 주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킴볼의 면류관은 무디입니다.

 

3. 부흥의 핵이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도슨 트로트맨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90%를 헌신하는 일백 명의 사람들을 통하여 일하실 수 있는 것 보다 그에게 100%를 헌신하는 단 한사람을 통하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부흥은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되도록 헌신하신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댓가를 지불하고서도 부흥을 일으켜야겠다는 욕구를 가진 핵(核)적인 사람에게부터 부흥은 시작됩니다. 큰 부흥 운동의 원동력은 불타는 영혼을 가진 소수의 무리들에게 있습니다. 1904년부터 1905년까지 웨일즈 지방의 부흥을 주도했던 에반 로버츠는 광부와 대장장이로 일했던 평신도였습니다. 그는 부흥을 위해 13년을 기도해 왔습니다. 어느 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영광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어난 부흥의 불길은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청년 에반 로버츠의 부흥에 대한 간절한 소원이 응답된 것입니다. 에반 로버츠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성령의 기름부음의 역사가 일어났을 때 그의 마음속에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에 대한 사명감으로 불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웨일즈 땅 전역에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정으로 불타고 있었으며, 그러한 특권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26세의 청년 에반 로버츠는 어느 곳이든 다니면서 부흥의 불길을 퍼뜨려 놓았습니다. 그가 설교하기로 되어 있는 장소는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찼으며, 설교장 밖에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곤 하였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우리의 최대의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축복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부흥의 핵의 역할을 한 사람들이 반드시 있었습니다. 17세기는 독일의 스페너가 부흥의 핵의 역할을 했습니다. 18세기는 영국에서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레가 부흥의 핵의 역할을 했습니다. 19세기에는 미국의 찰스 피니, 무디가 부흥의 핵의 역할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다윗의 시대, 요시아의 시대, 히스기야의 시대등 부흥이 일어날 때는 국가 경제와 정치가 안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부흥이 식어지면 우상숭배하는 자가 많아지고 국가 경제와 정치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경제도 부흥운동과 함께 급격히 성장했다가 교회 부흥의 열기가 식어지면서 경제와 정치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부분적으로 교회와 가정과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가정과 개인의 축복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교회의 부흥은 가정과 개인의 승리를 가져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게 됩니다.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해 무릎을 꿇어 엎드려 회개하며 기도합시다.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해 전도에 내가 먼저 앞장섭시다.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해 내 자신을 주님께 드려 부흥의 핵이 됩시다.

 

 

 

감사의 조건 (눅17장 11~19) - 전 현 진 목사

 

지난 10월달에 제가 잘 알고 있는 예람교회 김덕선 목사님께서 사모님과 함께 고속버스를 타고 기도원에 가는 중에 사고나 일어났습니다. 운전기사가 졸다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동시에 그대로 졸도하고 만 것입니다. 버스는 운전하는 사람도 없이 혼자 달리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반사적으로 운전석으로 뛰어들어 선채로 조심스럽게 브레이크를 밟아 가까스로 큰 사고를 면했습니다. 하마터면 연쇄 충돌사고로 이어질뻔 했습니다. 이런 위기속에서 침착하게 일을 처리한 목사님에게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요. 우리는 이렇듯 우리의 삶속에서 크고 작은 일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를 지켜주신 항상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열명의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고 난 후에 반을 어떻게 보였는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감사의 조건속에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홉명의 문둥병자는 고침을 받고도 아무런 감사의 표현 없이 유유히 자기의 갈길을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감사의 조건속에서 감사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둘째로, 감사의 조건속에서 당연히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입니다. 문둥병을 고침받고 이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예수님께 와서 감사의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보너스 은혜를 주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19절).

셋째로, 감사의 조건이 아니어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공산당에 의해서 죽음을 당한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아홉가지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감사의 신앙입니다. 신앙적 감사, 성숙한 감사, 차원 높은 감사는 감사의 조건이 아니어도 하는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 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형통할 때나 고난 중에 있을 때에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