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회 황금펜아동문학상 동화부문 당선작
내 마니또
박재광 lafuta1@empal.com
안녕? 나야, 네 마니또. 마니또 때문에 내가 편지를 다 쓰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참 별일이야. 그렇지만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글 쓰는 걸 싫어하는 편은 아냐. 아니 오히려 내 취미가 책 읽고, 글을 쓰는 거니까 편지를 쓰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닌데, 다만 남에게 내 글을 보이는 건 무척 싫어했었지. 정말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 같은 때 억지로 써야 하는 편지 말고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 본 적이 없었거든. 물론 너도 그렇겠지만. 이게 다 마니또 때문이지 뭐.
난 우리 담임선생님에 대해 그렇게 불만은 없어. 나름 우리를 많이 이해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모든 게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냐. 특히 학급 활동을 할 때마다 우리 반 서른세 명 모두가 참여하길 바라는 게 제일 싫어. 생각해봐.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활동이라는 게 어디 있겠어? 선생님은 말로는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그럴 땐 정말 독재자 같기도 해. 마니또를 시작하던 날도 그랬어.
“너희들이 그렇게 졸라대던 마니또를 오늘 시작하려는데 혹시 하고 싶지 않은 사람 있니?”
선생님은 ‘혹시’란 말을 유독 강조했어. 그래도 난 싫었어. 괜히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편지 쓰고, 선물하는 거 딱 싫어하는 일이거든. 생각할 거 없이 손을 번쩍 들었지. 순간 선생님은 조금 당황하는 것 같았어. 하지만 더 당황스러웠던 건 나였어. 세상에, 우리 반에서 손을 든 사람은 나 혼자였던 거야. 한 절반쯤 되는 아이들의 눈길이 쏟아졌어. 뜨거운 물에 담가 놓은 온도계처럼 밑에서부터 빨간 게 올라오는 느낌이란!
“김은율, 왜 하기 싫은데?”
선생님은 조금 마음이 상한 목소리였어. 하지만 내가 더 신경 쓰였던 건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니라 이름이 불렸다는 사실이었어. 내 이름이 교실 안을 둥둥 떠다녔어. 김. 은. 율. 난 내 이름이 불리는 게 싫었어. 선생님이 동시 수업을 할 때 운율이라는 말이 나오면 아이들은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어. 그 때부터 난 내 이름이 싫어졌어. 아무튼 선생님의 질문에 나머지 절반의 눈동자가 마저 내게 달려들었어. 아마 내 얼굴은 잘 익은 딸기처럼 빨갛게 달아올랐을 거야. 내 손은 슬그머니 내려왔지. 예순네 개의 눈동자를 견디기엔 뜨거워진 얼굴을 감당할 수 없었거든. 손을 내리자 선생님은 바로 일 분 전의 웃음 띤 얼굴로 되돌아갔어.
“김은율, 그럼 같이 하는 거야?”
난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았어. 선생님이 다시 물었어.
“왜 대답이 없어? 할 거야, 안 할 거야?”
아이들의 고개가 다시 나를 향해 돌기 시작했어. 분명 원망의 눈초리가 담겨 있을 게 뻔했어. 내 입에선 한숨 소리와 비슷한 대답이 나왔어.
“할게요.”
“그래, 좋아. 재미있을 거야.”
출발을 잘못해 실격당한 육상선수처럼 일그러진 내 표정은 관심도 없다는 듯 선생님은 해맑게 웃으셨어. 우리 반에서 민주주의가 사라진 날이었지.
선생님은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상자를 꺼내셨어. 서른 세 명의 이름이 적혀 있는 쪽지가 담긴 상자였지. 그것을 들고 책상 사이를 돌아다니셨어. 아이들은 마치 행운선물 추첨이라도 하듯이 정말 즐겁다는 얼굴로 쪽지를 뽑더군. 하지만 몇몇 아이들은 쪽지를 펴보고 이내 망친 시험지를 바라보는 표정으로 바뀌었어. 내 차례가 왔을 때 난 그냥 심드렁하게 쪽지를 하나 집어 올렸지. 근데 종이를 펴 보는 순간 나도 그 몇몇 아이들과 똑같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어. 내가 뽑은 사람이 하필…….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졌지. 다시 손을 들고 싶었어.
“선생님, 저 다시 뽑으면 안 될까요?”
라고 말해야 했는데.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손은 올라가지 않았어. 아이들의 눈길이 쏟아지던 조금 전의 그 상황을 다시 겪고 싶진 않았거든.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 선생님은 교실을 다 돌고 교탁 앞에 서 있었지. 이미 늦었음을 깨달았어. 마니또는 비밀친구인데 누군가와 쪽지를 바꿀 수도 없잖아? 그렇다고 나 하나 때문에 전체가 쪽지를 다시 뽑게 할 순 없었어. 이렇게 저렇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어. 내 입에선 절로 한숨이 나왔어. 뒤엉킨 머릿속을 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때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어.
“자, 한 달 동안 비밀친구로서 몰래 도와주고, 작은 선물이나 편지를 해주어도 좋아요. 그리고 한 달 뒤에 발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난 그냥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어. 쪽지를 다시 펼쳤어. 하얀 종이에 선명하게 쓰여 있는 글자 세 개가 눈에 들어왔어. 그런데 계속 보고 있으니 그 이름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어. 이상한 기분이 잠시 들더니 갑자기 마니또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어. 그건 다름 아닌 낯설게 느껴졌던 세 글자의 이름 때문이었던 것 같아. 정말 운명이라는 말이 생각났어. 그래서 결심했지. 열심히 하지는 않더라도 남들만큼만은 해보자고 말이야.
난 정말 고민됐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거든. 그러다 문득 내가 널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일단 너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어. 네가 어떤 사람일까 먼저 알아야 뭘 해주든, 도와주든 할 거 아냐?
차근차근 생각해 봤어. 너는 어떤 아이일까? 그때 떠오른 것이 양동이었어. 있잖아? 얼마 전에 사라졌던 빨간색 플라스틱 양동이 말이야. 청소도구함 옆에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어. 그 쓸모없던 양동이는 언젠가 슬그머니 사라졌지. 물론 그 누구도 없어진 걸 몰랐어. 선생님이 미술 시간에 어디로 갔냐고 묻기 전까지는…….
양동이처럼 넌 친구가 하나도 없었어. 3월 초 네가 아파서 3교시 중간에 학교 왔을 때 기억 나? 그 날 넌 오자마자 선생님께 다가갔지.
“너, 어디 갔다 오니?”
“열이 많이 나서 병원 갔다 왔어요.”
“그럼, 지금 학교에 온 거야?”
“네.”
선생님은 좀 당황한 표정이었지. 그제야 선생님과 아이들은 교실에 빈자리가 하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지. 그 뒤로도 한 달이 지나서야 학급의 아이들이 네 이름을 다 외웠어. 그 전까지 네 이름은 ‘야’였지. 하지만 그런 이상한 일들을 넌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아니 이상하기는커녕 그렇게 혼자 있는 것을 편하게 느끼는 것처럼 보였어.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알게 된 거야. 책에서나 읽던 따돌림 받는 아이가 바로 자신이라는 걸. 조금은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 그리고 며칠 후 더 큰 충격을 받았었지.
마니또가 시작되기 며칠 전이었던 것 같아. 선생님이 오랜만에 남자아이들에게 체육시간에 축구를 허락하셨지. 축구하면 빠지지 않는 성태와 민석이가 나서서 가위바위보로 편을 갈랐어. 서로 한 명씩 번갈아 가며 자기편을 데리고 갔는데 마지막에 너만 달랑 남았었지. 그때부터 문제가 생긴 거야. 그 둘은 서로 너를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싸우기 시작했어. 그뿐 아니었지. 이미 두 편으로 나뉜 우리 반 남자아이들이 너와 같은 편이 되지 않겠다고 서로 으르렁거리게 된 거야.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이 축구를 취소시켰고, 아이들은 모두 교실로 돌아가야 했어. 교실로 들어온 아이들은 모두 너에게 원망을 쏟아냈지. 아무런 잘못 없이 남자 아이들의 그 많은 원망을 들어야만 했던 넌 결국 울음을 터뜨렸어. 그제야 아이들의 비난이 멈췄지. 하지만 더 너를 괴롭혔던 것은 그 괴로움을 나눌 친구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었을 거야.
그 뒤로 넌 변하기 시작했어. 우연일지 몰라도 내가 마니또를 시작하고, 네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양동이 같던 네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 이상한 일이었지. 다른 사람은 잘 몰랐겠지만 난 알 수 있었어. 내가 네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양동이 같은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지 그건 잘 알 수 없었지만 말이야. 물론 그 이유는 네가 잘 알겠지. 어쨌든 넌 달라지고 있었어. 그리고 곧 다른 아이들도 눈치 채기 시작했지.
언제인지 잘 모르겠지만 화요일이었던 건 확실해. 독서 스티커를 나눠주던 날이었으니까. 사실 그전까지 교실 앞에 붙어있는 독서 스티커 판에 네 것은 하나도 없었어. 넌 두 달 연속 꼴찌였지. 선생님이 가끔,
“책은 많이 읽는 것 같은데 왜 기록표에 부모님 확인을 받아오지 않니?”
라고 물어도 넌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건성으로 대답했지. 아예 관심도 없다는 표정으로 말이야. 그러던 네가 독서 기록표에 무려 70권을 적어왔지. 아이들은 수군댔어.
“어떻게 한 번에 70권을 읽어?”
“저거 가짜 아냐?”
하지만 몇몇 아이들은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 늘 책을 읽는 너의 모습을 보아왔기에 가짜는 아닐 거라고 말했어. 자신을 알아주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넌 놀라는 모습이었어. 살짝 붉어진 네 얼굴에 웃음기가 슬며시 배들었지.
70개의 스티커를 받아 판에 붙이고 나니 넌 꼴찌에서 갑자기 2등이 되어 있었어. 쏟아지는 아이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겠지만 그로 인해 조금 들떠있는 네 모습도 보였어. 그리고 너의 독서스티커 덕분에 너의 모둠은 그 달에 1등을 할 수 있었지. 너희 모둠 아이들이 1등 상으로 오후에 선생님과 피자를 시켜 먹고 난 후 너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 가끔 아이들이 널 칭찬하기도 했고 넌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지. 그럴 때 아이들은 네가 웃는 거 처음 본다며 신기해하기도 했지.
이제 아이들의 관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네가 느껴져. 매일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네 마음에 변화가 시작된 거야. 글쎄 잘 모르겠지만 넌 아이들이 네 이름을 부르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예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 살아있다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넌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받기 위한 모습을 보이더군.
시험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지.
“환경 보호에 관한 글짓기 대회가 있는데 참가할 사람?”
교실엔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어. 당연했지. 시험이 코앞인데 5학년인 아이들이 글짓기를 하려고 하겠어? 글짓기 대회 때마다 항상 상을 휩쓸던 몇몇 아이들도 침만 꼴깍 삼킨 채 눈치만 보고 있었어.
“곧 시험이라 좀 어렵겠지만 학급당 한 작품씩은 꼭 내야하는데…….”
그때 네 손이 번쩍 올라갔어. 아이들은 말은 없었지만 얼굴엔 이렇게 씌어 있었어.
‘말도 안 돼. 쟤가?’
선생님의 얼굴에도 느낌표와 물음표가 동시에 그려졌지.
“시간이 이틀뿐인데 괜찮겠니?”
“네.”
넌 자신 있게 대답했어. 선생님은 얼굴에서 물음표를 거둬내고 웃으면서 말했지.
“그래, 모레까지 꼭 써 와야 돼.”
며칠 후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지. 아침에 방송조회가 있는 날이었어. 네 이름이 불리며 방송실로 빨리 오라는 소리가 교실 스피커를 통해 울렸어. 아이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반복하는 방송 소리에 귀를 기울였지. 네 이름이 다시 들리자 몇몇 아이들이 등을 밀었어.
“뭐 해? 빨리 내려가 봐.”
몇몇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어. 조회시간에 상을 받는 다는 건 우수상이나 장려상이 아니라는 뜻이었으니까. 아마 그 어떤 방송 조회 때보다 아이들은 훨씬 더 텔레비전에 눈과 귀를 집중했을 거야. 잠시 후 상장을 들고 교실로 돌아오는 너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시선이란! 그때 넌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보였어. 당연하다는 듯이.
지금의 넌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 같아. 아주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수업시간에 발표도 하고, 다른 아이들과 웃고 떠들기도 해. 지난 3월보다 조금은 더 행복해 보여.
이틀 후면 마니또를 발표하게 돼. 선생님이,
“은율이는 마니또에게 뭘 해줬니?”
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잖아? 그래서 이렇게 부랴부랴 편지를 쓰고 있어. 내일 모레 마니또 발표를 하는 날 어쩌면 난 아이들에게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어. 선생님을 또 다시 당황하게 만들지도 모르고. 그래도 난 후회하지 않아. 마니또를 뽑던 그 때 손을 번쩍 들고 다시 뽑게 해달라고 말하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야. 이런 걸 운명적인 일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뽑은 쪽지에 김.은.율.이라고 적혀 있던 것을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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