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모음

4차원 영성 지도자 포럼

열국의 어미 2010. 5. 12. 00:39

 

 

 

4차원 영성 지도자 포럼

 

 

1. 조용기 목사 / 4차원 영성 지도자 포럼 총재 여의도 순복음교회 원로목사

 

 

  • 출생1936년 2월 14일
  •  학력: 순복음 신학교
  • 소속: 여의도순복음교회 위임목사
  • 수상: 2009년 캄보디아 국왕 최고훈장
    • 경력: 2002년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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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기 목사님은 17세이던 고등학교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인하여 죽음을 눈앞에 둔 채 병석에서도 영어사전을 외우고 교과서를 탐독하며 삶의 의지를 불태우던 어느 날 병문안을 온 누나의 친구를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미국인 켄 타이즈 선교사가 부산의 한 거리에서 인도하던 천막 부흥성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게 되고 타이즈 선교사의 통역을 돕기도 하며 많은 기독교 서적을 탐독하면서 기독교의 진리를 조금씩 알아가던 어느 날 금식기도를 하던 어느 날 밤, 찬란한 광채 속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환상 중에 만나게 되었고, 성령 충만의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날 밤 복음 증거자로서의 부르심을 받은 조 목사님은 신학을 공부하기위해 1956년 서울에 올라와 ‘순복음 신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게 됩니다. 그는 바로 여기에서 후에 목회의 동역자와 장모님이 되신 최 자실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복음전도의 열정에 불탔던 조용기 목사는 서대문구 대조동 낡은 천막에서 사과상자를 강단 삼아 최자실 목사님과 최 자실 목사님의 세 자녀, 그리고 비를 피해 뛰어온 할머니와 모두 5명의 성도로 예배를 드리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그 당시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꿈을 마음속에 꾸게 됩니다.

         

        누가 보더라도 실현 불가능하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허탄한 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긍정의 믿음을 가지고 결코 포기하지 않고 꿈을 마음속에 그리며 입술로 선포했습니다. 대조동에서 3년 만에 서대문으로 서대문에서 13만에 여의도로 옮기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9억원의 성전 공사비를 단돈 100만원만 갖고 시작했으나 오일파동이 겹치는 등 너무나 어려운 재정문제 때문에 고통을 겪으며 마치 천사와 씨름했던 야곱처럼 공사장에서 밤새 비를 맞으며 눈물로 몸부림 칠 때 “주님! 차라리 공사장이 내 머리위에 무너지게 해주소서!” 기도하며 죽고 싶은 심정의 처절한 고통을 극복하여 목회 최대의 어려운 순간을 하나님만을 바라봄으로 결국 여의도 순복음교회 성전을 완공하게 되고 75만 성도라고 하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로 성장 시키게 됩니다.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품고 기도하면서 꿈을 그리며 선포했던 조용기 목사의 4차원 영성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의 4차원 영성은 전 세계의 수많은 영성지도자들에게 엄청난 도전을 주었고, 이제 조용기 목사의 50년 목회 사역을 통해 깨달은 4차원 영성이 다시 한번 한국교회와 목회자, CEO들과 평신도들을 세우며, 세상을 변화 시킬 것을 기대합니다.

         

         

        2. 윤석진 목사 / 4차원 영성 목회자 포럼 대표회장 연세 중앙교회 담임목사

         

        여의도 순복음 교회 안수 집사 시절부터 전도부에 소속되어 그 누구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음 전도의 열정이 탁월했던 윤석진 목사는 사업가로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한국 무역 수출부문에서 엄청난 역할을 담당했지만 그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귀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해 사업을 내려놓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연회동 지하실에서 예배드릴 때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곰팡이 냄새나고 또 장마철이면 바닥과 벽에서 물이 새어나오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매일 철야와 매월 부흥성회로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넘쳐나서 망원동으로 이전하게 되고 성전은 1년도 채 안 되어 몰려드는 성도들로 가득 차 노량진으로 다시 이전하게 됩니다. 올해로 35차를 맞이하여 그 동안 20여만 여명의 목회자가 참석했던 초교파 목사 부부 영적 세미나는 1988년 수원 죽전교회에서 18명의 사모님들이 참석한 제 1회 사모 세미나로부터 시작되었고 제 8회 세미나부터 목회자들이 함께 참석하는 성회로 발전하게 되면서 그 규모가 더욱 커져 더 이상 장소를 임대하여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기도원 부지를 찾던 중 수원 흰돌산 기도원을 인수하게 됩니다. 당시 노량진 성전의 구입부채가 아직 남아 있는 상황에서 흰돌산 기도원을 인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지만 고난과 역경에도 포기하지 않고 오로지 죽어가는 영혼을 살려야 된다는 일념으로 99년 9월 5천에서 6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최첨단 시설을 갖춘 기도원으로 새롭게 단장하게 됩니다. 연세중앙교회는 설립초기부터 수많은 개교회의 부흥 성회, 군부대 집회, 청소년 집회, 경찰집회 등을 개최하였고 가는 곳마다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다양한 문화를 통한 선교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이런 연세중앙교회를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시고 높이 들어올려서 2005년 구로구 궁동에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성전을 주님께 봉헌하게 하시고 한국과 세계 열방을 향해 지칠 줄 모르는 구원의 열정으로 전진하게 하고 있습니다. 15년간 ‘오직 예수’ 만을 주제로 하고, 오직 예수만을 증거해 왔으며 앞으로도 신사도행전의 역사를 재현하며 힘차게 전진할 것입니다. 윤석진 목사님을 통해 예수의 생애를 재현하는 삶과 사역이 어떤 것인지 큰 도전이 될 것입니다.

         

         

        3. 박성철 최장 / 4차원 영성 CEO 포럼 대표회장 (주)신원 회장

         

        전라남도 신안군 자은면 조그마한 섬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끼니를 걱정하는 환경 속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 목포로 나와 신문 배달을 해가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고학으로 목포고등학교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서울로 상경하기 위해 고등학교 졸억식 때 시상으로 받은 영어사전까지 팔아가며 여비를 마련해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그 후 한양대학교에 입학했으며 졸업 후 신문사에 입사해 정치부와 경제부 기자 생활을 8년간 한 후 젊은 나이로 국원위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러나 박성철 회장은 좌절하지 않고 섬유업계의 임가공 공장을 시작해 한 달에 약 20일 이상을 공장 기계 밑에서 새우잠을 자며 열심히 일을 해 오늘의 섬유업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지금(주)신원은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북한 개성공단 등에 공장과 회사가 설립되어 수천명의 직원들이 신원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주님의 위대한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신원은 1973년 창립 이래 패션업계를 선도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믿음’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사명이 ‘최고의 믿음’을 뜻하는 ‘신원(信元)’인 것처럼 믿음은 경영자만이 아닌 모든 신원 가족이 함께 공유하는 기업이념이며, 오늘의 신원을 이룬 원동력이라고 박성철 회장은 고백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며 그분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철저한 청지기적 사명감을 각고 기업을 이끌어온 박성철 회장님의 간증은 시련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목회자, CEO, 그밖에 많은 크리스챤 리더들에게 큰 도전과 격려가 될 것입니다.

         

         

        4. 이봉관 회장 / 4차원 영성 CEO 포럼 공동회장 (주)서희건설 회장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어려운 가정 형편 이었지만 배우고자하는 열정만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등록금을 낼 형편도 안 되고, 어머님 또한 편찮으셔서 큰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안될 만큼 몹시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미국에서 온 선교사 부부의 따뜻한 사랑으로 어머님도 회복되고 학업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봉관 회장은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감사란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 후 포항제철 공채 2기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 시작한 그는 복 주시는 하나님의 의지함으로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접고 운송업을 시작으로 철강업 그리고 건설업에 까지 진출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냈고 성전 건축 분야에서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서희 건설을 이루었습니다. 이봉관 회장의 비전은 100개 이상의 성전을 건축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100조원의 매출액 기록과 세계 100대 기업 안에 들어가 꿈, 고난, 축복, 사랑의 위대한 서희 건설을 만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민족과 열방 가운데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죽지 않게 하셨고 오히려 고난의 눈물을 행복의 눈물로 바꾸어 주셨다고 이봉관 회장은 고백합니다. 자신이 받은 은총을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이봉관 회장의 복된 삶이 증거 되는 자리에 오시는 모든 분들 위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과 은혜가 함께 할 것입니다.